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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소설가의 제목들은 늘 가슴에 와닿아요.

오늘하루 조회수 : 2,350
작성일 : 2019-03-28 18:47:49

시간이 흐른다음에 아픈 가슴에 안고 나는 죽게 되리라.

아직도 차가운 강물속에 있는 내 남자아이의 머리칼을.

그토록 부주의 하게 빠져들어갔던 내 생의 깊고 어두운 강물을.


저의 22세는, 기숙사가 있는 중견회사에서 온화하고 무탈하게 지나가고 있었던 날들이었어요.

알람시계에 맞춰 아침에 일어나고 유니폼입고 사무실에 가서 계장님,과장님, 부장님 책상 닦고,

사무실 간단히 청소하고, 창문열어 환기하고,

전화받고, 타이핑하고, 문서작성하고, 어음정리하다가 오후 6시무렵되면 퇴근하는 그런 날들이었어요.

벚꽃이 피어서 창밖세상이 아스라한 핑크빛일때에도,

유난히 노을이 붉게 지는 저녁나절에도,

제 소소하고 담담한 일상은, 변함이 없던 시절이었어요.


유난히 힘들고 가난하고 늘 싸우는 소리가 그치지않던 제 유년시절에 비해서

단조롭고 기계적이었던 그 사무실에서의 제 20대초반은 오히려 편안하기까지 했어요.

이른아침마다 기숙사전체를 가득 메우던 참새소리들로 잠을 깨야 하는게 짜증스럽긴했지만,

준비물을 못해가서 불안한 마음으로 학교를 가야하던 12년간의 정규과정이 확실히 없어진게 얼마나

빛나는 축복입니까.

게다가 적지만, 한달마다 받는 그 월급.


게다가 히스테릭한 여자상사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오줌까지 지리면서 컸던 저같은 사람이

그런 한두명은 과감히 눈감아주고,

열심히 직장생활할수 있는 여건이 있고 편안히 잠들수있는 기숙사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일이에요.


그렇게 모든 일과가 끝난 토요일,

기숙사로 돌아가기전, 맘만 먹고 가보지못했던 도서관에 가봤지요.

그곳에서 처음 만났던 배수아의

부주의한 사랑.

처음 그책을 빌려와 읽으려고 제 책꽂이에 꽂아두었을때

저보다도 먼저 책장을 열어본 제 옆자리 언니.

"흐! 나 정말 놀랐다!!

처음 책을 펼쳤는데 저렇게 써있잖아.

무서웠다, .."


배수아의 소설책속 등장인물들은 저책의 서문처럼 모두가 불온한 편이고,

나약한 편이고, 불행하기까지해요.

그러면서도 그런 등장인물들을 이끌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배수아의

문체는, 사막의 모래알처럼 건조하면서도 비를 머금은 바람결이 가득해요.

지금까지의 그 어떤 소설가들의 문체들보다도 독특하면서도 뭔가 그리움이 잔뜩

배여있어요.

대개의 소설가들이 유년의 기억들을 자연스레 쓰기때문에 대충 성장과정이라던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인지 아는데 유독 배수아소설가는 절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질않아요.

그러면서도 한국문학에서 자리잡고 있지요.

글 제목도 상당히 아름다우면서도 몇번을 생각나게 할만큼 여운이 있어요.

어느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 일까.

모든 저녁이 저물때.

한나의 검은살.

부주의한 사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

지나간 제 20대중, 배수아 소설가외에도 여러 소설가들의 책을 접하긴했지만,

유독 배수아소설가는, 어떤 아련한 그리운 흔적이 있어요.

그사람만의 쓸쓸하면서도 그리운 바람냄새가 있어요.

여류소설가들중에서 가장 짧은 문장형으로 쓰는 편이면서도, 말이에요.

꼭 쓸쓸하게 저무는 어느 저녁날이 생각나요.다시 돌아가고 싶어 고개돌리게 하는 그 어떤 느낌.

82맘님들도 배수아 소설가 좋아하시나요^^

IP : 121.184.xxx.219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wisdomH
    '19.3.28 6:50 PM (116.40.xxx.43)

    젊을 때 좋아했어요. 공무원이면서 소설가인 그녀를 보며
    나도 2중 직업 될 수 있겠다 꿈꾸었는데 단순직이 아니면 어렵다는 것을 몰랐네요.

  • 2. ㅇㅇ
    '19.3.28 6:51 PM (121.152.xxx.203)

    원글님도 글을 참 잘쓰시네요
    배수아 소설은 한번도 못읽어봤는데
    읽어봐야겠어요

  • 3. ㅇㅇ
    '19.3.28 6:52 PM (121.168.xxx.236)

    제목만 보고 tree1인가 망설이다가 들어왔는데...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네요
    문장 하나하나가 그림으로 다 그려져요
    글 잘 읽었습니다

  • 4. 원글
    '19.3.28 6:53 PM (121.184.xxx.219)

    저는 이렇게 배수아의 초기작 소설들을 맘에 담아둘만큼 좋아하는데
    배수아가 몇년전, 다시 책들을 내놓으면서 그이전의 내가 썼던 책들은 독자들께서 기억속에서
    잊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한 글을 신문 사설에서 읽은적이 있어요.
    그 때의 그 기분, 너무 슬펐어요.

  • 5.
    '19.3.28 6:59 PM (211.54.xxx.232)

    원글님 글이 참 좋아요.
    저는 신경숙 소설을 참 좋아했어요, 신간이 나오면 점심시간에 을지서적으로 뛰어가서 사 오고
    읽고 싶어서 퇴근 시간을 너무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신경숙씨의 행보는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나의 한 시절을 함께 한 소설들은 참 좋았습니다.

  • 6. 하, 배수아
    '19.3.28 6:59 PM (183.96.xxx.83)

    초기작들 너무 좋죠. 최근작들은 물론 예전작품들 계속 변주하면서 쓰는 것보다 낫지만..
    너무 실험정신이 투철하셔서 읽기가 좀 힘든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초기작들을 잊어달라는 건, 자신의 일부인 작품과 그 작품을 사랑하던 독자들에게 예의가 아니죠.
    전 그래서 좀 실망하고 그랬는데....

    하여간 초기작들 너무 세련됐고, 지금 읽어도 너무 좋아요.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이 작품이 수록된 심야통신의 단편들은 하나하나가 다 좋아요.
    푸른 사과~, 이거 예전에 우희진 주연의 베스트셀러극장? 단막극으로 나왔었는데
    몽환적인 느낌이 참 잊혀지지가 않네요.
    전 스키야키 식당 이후로 그녀의작품은 거의 안봅니다만...
    최근에 악스트에 실린 단편을 보았는데... 역시나..ㅠ

  • 7. 원글
    '19.3.28 7:09 PM (121.184.xxx.219)

    이런 이야기를 82에서 할수있고, 제글에 진심으로 댓글달아주셔서 고마워요^^
    제 글에 이렇게 답해주는 82맘님들, 사랑해용~

  • 8. 솔솔라라
    '19.3.28 7:37 PM (203.226.xxx.186)

    우아 저도 스키야키식당이 마지막 배수아작품이었는데ᆢ
    배수아하면 저도 원글님처럼 이십대가 떠오르네요.
    저 73인데 왠지 비슷할것같아요.나이가.
    저는 전경린한테도 푹 빠졌더랬죠. 바닷가마지막집이란 단편집이 떠올라요. 90년대후반에 이런 단편들이 붐이었죠. 가난하고 부주의하고 헤매고 떠도는 인생에대한 낭만이 있었어요. 내가아닌 나로 살고팠던 시절ᆢ이젠 이런소설들이 안읽히네요. 세월이 많이 흘렀어요.

  • 9. 원글
    '19.3.28 7:43 PM (121.184.xxx.219)

    저는, 현재 75년생이에요^^.
    맞아요,
    솔솔라라님처럼
    배수아하면 저도 이십대가 떠올라요,
    맞아요, 솔솔라라님처럼,
    세월이 많이 흘렀어요..

  • 10. 배수아
    '19.3.28 8:13 PM (14.35.xxx.110)

    본문이 배수아 소설의 일부인줄 알았어요.
    요즘의 배수아 모습은 본 적 없지만
    예전에는 외모도 멋졌죠.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앞머리는 늘 일자.

    그나저나
    원글님 정말 글을 잘 쓰시네요.
    원글님이 소설 쓰시면 꼭 읽어보렵니다. ^^

  • 11. 노노
    '19.3.28 8:31 PM (175.117.xxx.67)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이 책을 시작으로 한때 저도 찾아가며 읽었었어요 그때의 그 감정이 제 감정인듯 정말 좋았었는데...최근 책들은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원글님 이야기가 어떤 기분인지 알듯해서 반가워요~도서관가서 안읽은 책들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감사해요

  • 12. ditto
    '19.3.28 9:11 PM (220.122.xxx.147)

    원글님 글이 그 작가의 글과 닮아 있어요 아, 물론 저는 그 작가님을 모릅니다만, 묘사하신 분위기가 원글님의 글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요. 원글님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어요

  • 13. 너트메그
    '19.3.28 9:18 PM (211.221.xxx.81)

    원글님 글이 참 예쁘네요.
    단편소설을 읽은 기분이예요.

    배수아님 글 한번도 읽어본적 없었는데..
    꼭 읽어볼게요.

    전 은희경에 빠져있었어요 ㅎㅎㅎ

  • 14. 사라잼
    '19.3.28 9:26 PM (223.53.xxx.161)

    초기작 철수 정말 좋아했어요 저도 배수아가 정말 특별해요

  • 15. 원글
    '19.3.28 9:39 PM (121.184.xxx.215)

    배수아의 문체는 만연체도 아니면서 그 특유의 짙은 쓸쓸함과 모른척 지나칠수없는 그 어떤 그리운색깔이 있어요.
    신경숙이나 은희경ㆍ조경란.하성란소설가와는 다른 그 분위기가있어요

  • 16. 저의
    '19.3.29 12:47 AM (112.168.xxx.234)

    저의 페친이신데 이렇게 유명한 분이셨군요!
    꼭 읽어봐야겠어요^^

  • 17. 저도
    '19.3.29 8:34 AM (175.223.xxx.218)

    제 20대를 배수아 하루키와 같이 보냈는데
    저랑 같은 연배인가 봅니다
    저는 아직도 신간 나오면 꼭 사 봐요
    여러번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고
    가끔 옛모습 보여주면 반갑죠
    우리가 변하듯 작가도 세월따라 변하는게 자연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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