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른다음에 아픈 가슴에 안고 나는 죽게 되리라.
아직도 차가운 강물속에 있는 내 남자아이의 머리칼을.
그토록 부주의 하게 빠져들어갔던 내 생의 깊고 어두운 강물을.
저의 22세는, 기숙사가 있는 중견회사에서 온화하고 무탈하게 지나가고 있었던 날들이었어요.
알람시계에 맞춰 아침에 일어나고 유니폼입고 사무실에 가서 계장님,과장님, 부장님 책상 닦고,
사무실 간단히 청소하고, 창문열어 환기하고,
전화받고, 타이핑하고, 문서작성하고, 어음정리하다가 오후 6시무렵되면 퇴근하는 그런 날들이었어요.
벚꽃이 피어서 창밖세상이 아스라한 핑크빛일때에도,
유난히 노을이 붉게 지는 저녁나절에도,
제 소소하고 담담한 일상은, 변함이 없던 시절이었어요.
유난히 힘들고 가난하고 늘 싸우는 소리가 그치지않던 제 유년시절에 비해서
단조롭고 기계적이었던 그 사무실에서의 제 20대초반은 오히려 편안하기까지 했어요.
이른아침마다 기숙사전체를 가득 메우던 참새소리들로 잠을 깨야 하는게 짜증스럽긴했지만,
준비물을 못해가서 불안한 마음으로 학교를 가야하던 12년간의 정규과정이 확실히 없어진게 얼마나
빛나는 축복입니까.
게다가 적지만, 한달마다 받는 그 월급.
게다가 히스테릭한 여자상사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오줌까지 지리면서 컸던 저같은 사람이
그런 한두명은 과감히 눈감아주고,
열심히 직장생활할수 있는 여건이 있고 편안히 잠들수있는 기숙사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일이에요.
그렇게 모든 일과가 끝난 토요일,
기숙사로 돌아가기전, 맘만 먹고 가보지못했던 도서관에 가봤지요.
그곳에서 처음 만났던 배수아의
부주의한 사랑.
처음 그책을 빌려와 읽으려고 제 책꽂이에 꽂아두었을때
저보다도 먼저 책장을 열어본 제 옆자리 언니.
"흐! 나 정말 놀랐다!!
처음 책을 펼쳤는데 저렇게 써있잖아.
무서웠다, .."
배수아의 소설책속 등장인물들은 저책의 서문처럼 모두가 불온한 편이고,
나약한 편이고, 불행하기까지해요.
그러면서도 그런 등장인물들을 이끌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배수아의
문체는, 사막의 모래알처럼 건조하면서도 비를 머금은 바람결이 가득해요.
지금까지의 그 어떤 소설가들의 문체들보다도 독특하면서도 뭔가 그리움이 잔뜩
배여있어요.
대개의 소설가들이 유년의 기억들을 자연스레 쓰기때문에 대충 성장과정이라던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인지 아는데 유독 배수아소설가는 절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질않아요.
그러면서도 한국문학에서 자리잡고 있지요.
글 제목도 상당히 아름다우면서도 몇번을 생각나게 할만큼 여운이 있어요.
어느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 일까.
모든 저녁이 저물때.
한나의 검은살.
부주의한 사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
지나간 제 20대중, 배수아 소설가외에도 여러 소설가들의 책을 접하긴했지만,
유독 배수아소설가는, 어떤 아련한 그리운 흔적이 있어요.
그사람만의 쓸쓸하면서도 그리운 바람냄새가 있어요.
여류소설가들중에서 가장 짧은 문장형으로 쓰는 편이면서도, 말이에요.
꼭 쓸쓸하게 저무는 어느 저녁날이 생각나요.다시 돌아가고 싶어 고개돌리게 하는 그 어떤 느낌.
82맘님들도 배수아 소설가 좋아하시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