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시(詩)의 평을 부탁드립니다.
에밀레종→봉덕사종→성덕대왕신종(공식명칭)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 선생님의 에밀레종의 전설에 대한 열강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결론은 독실한 불자이지만 집이 너무 가난해서 “보리쌀 한 톨도 시주할 것이라고는 없고, 우리 집에 있는 것이라고는 이 어린 딸아이 하나뿐이니 목구멍 하나라도 덜 겸 해서 이 애를 시주하겠습니다.”였다.
선생님의 그 강의를 들으며 같은 가난한 집 아이로서 소녀와 내가 하나로 생각되어 얼마나 속으로 눈물을 흐렸던지!
그리고 6~7년을 뛰어넘어 고등학교 3학년 때 돈이 없어 어머니가 이웃집에서 꾸어온 돈으로 수학 여행비를 내고 경주로 눈물겨운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여러 곳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경주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그 박물관 한편 담자락 밑 잡초가 우거진 속에 에밀레종이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습니다.
왜놈들이 천년문화재 에밀레종을 약탈 해 가려고 그 무거운 종(18.9톤)을 조선백성을 수도 없이 동원 우마차로 종을 끌고 가다 우마차가 논두렁에 처박히는 바람에 도둑질을 포기하여 해방될 때까지 종이 그 논에 누워 계시다가 해방이 된 한참 후에 간신히 종을 인양하여 박불관 한편에 모셔 놓았던 것입니다.
그 종을 대하는 순간 초등학교 때 배웠던 에밀레종의 전설과, 나와 같이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종의 불쏘시개가 된 어린소녀의 모습이 겹쳐(요샛말로 오버랩)떠 오르며 나도 모르게 속으로 시한 수를 읊조렸습니다.
<시주-ㅅ 바랑 속의 아기보살이 너무 고와서 서러운 울음소리 쇳물에 어리어
즈믄 해를 두고 울어도 그 설움 더해라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라>
그리고 또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한전중부지점(남산 밑 전철 명동역출구 앞)에서 말단 간부로 있을 때였습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내가 가장 혐오하는 인물 중의 하나인 전두환을 뒷바라지 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내가 전두환의 뒷바라지를 할 줄이야 꿈엔들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전두환이 청와대를 나와 어디를 갈 때는 청와대경호팀의 한 부서가 거기에 2~3일 전에 나가 그 건물과 주변지역을 샅샅이 이 잡듯 뒤지고 확인을 합니다. 그런데 경호원들이 전기에 대하여는 잘 모르니 제가 전기담당으로 같이 따라가 그 지역의 한전직원들을 동원하여 전기설비를 이 잡듯 확인하고 점검과 보수를 합니다.
만약 전두환이 거기에 있는 동안 전기가 0.01초라도 깜빡을 하거나 전기 때문에 행사에 차질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몽땅 저에게로 돌아와 그 즉시 엮여 들어가 감방 안에서 콩밥을 똥 만들다가 전두환 세상이 끝나면 그 감방을 전두환에게 인계하고 저는 자유의 몸이 되어 수차례의 재판을 거쳐 한전에 복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게 1980년대 초이니 전기사정도 지금보다 훨씬 나빴으니 거기에 따라다니는 동안은 항상 초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행사 중 비바람이라도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치면 행사가 끝나고 전두환이 거기를 떠날 때까지는 저는 영혼이 없는 골이 텅 빈 인간이 되었었습니다.
전두환이 포항제철인지 어딘지의 방문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경호실팀과 함께 경주박물관을 찾아 갔습니다.
고등학교수학여행 때 보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단청도 고운 훤칠한 종루를 지어 잘 모셔져 있던 것입니다.
내가 움막집이나 다름없는 왕십리 무허가 판잣집을 벗어나 어엿한 집을 장만하였듯이, 종도 고대광실 같은 단독주택을 장만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집을 키워간 것 같이 흡족했습니다.
그리고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가슴 속에 써 두었던 시의 뒤-ㅅ편이 또 떠올랐습니다.
<가난의 잔혹함인가 부처의 이끄심인가, 제 배불려 토해낸 딸 새끼를 끓는 쇳물에 집어 던지는 어미의 심중을 헤아릴 길이 없어라,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라-
즈믄해를 두고 우는 울음이 뒤에-ㅅ사람 가슴을 적시는 구나>
시의 제목은 <에밀레라>로 붙였습니다.
<에밀레라>
시주-ㅅ 바랑 속의 아기보살이 너무 고와서 서러운 울음소리 쇳물에 어리어
즈믄해를 두고 울어도 그 설움 더해라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라
가난의 잔혹함인가 부처의 이끄심인가, 제 배불려 토해 낸 딸 새끼를 끓는 쇳물에 집어 던지는 어미의 심중을 헤아릴 길이 없어라,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라-
즈믄해를 두고 우는 울음이 뒤에-ㅅ사람 가슴을 적시는 구나
이것도 시 축에 들어가겠습니까?
가혹한 평을 부탁드립니다.
<에밀레종 전설에 대한 필자의 소견>
몇 년 전 에밀레종의 시편을 분석해 봤더니 인골의 흔적인 인(燐)이 검출되어 전설이 실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필자의 소견
모든 것을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해야 했던 그 먼 옛날 저렇게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종을 그 당시 주조하지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겠습니까?
그리고 그것도 한 번에 주조가 된 게 아니라 여러 차례 실패를 반복한 연후에야 간신이 종의 주조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이 되었겠습니까?
수많은 남성들이 동원되어 쇳덩어리(구리)를 자르고 나르고, 한 편에서는 산더미 같은 황토를 반죽해서 종틀(용광로와 거푸집)을 만들고, 한편에서는 장작을 날라 쇠를 녹일 연료를 준비하고
그 한편에서는 큰 움막 같은 집(오늘날의 함바)을 짓고 수많은 부인네들이 방아 찢고 밥하고 지지고 볶고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는 종 만드는 일 어머니는 거기서 밥 하는 일로 동원되니 어린 것을 혼자 집에 남겨 놓을 수가 없어 엄마를 따라 나섰을 것입니다.
그 어린 것이 거기서 뛰어 놀다 그만!
그 뒷얘기는 차마 할 수가 없어 생략하렵니다.
그 <실제로 있었던 일>과, <신라 사람들의 부처님에 대한 독실한 믿음>과, <종소리의 처연함>이 어우러져 세월이 흐르면서 다듬어지기를 반복 해가며 저런 슬프고도 애잔한 전설이 만들어 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과학이 지금보다도 훨씬 발전하고 종의 성분분석과 인골이 석인 것이 확실하고 그 인골의 주인공은 어린 소녀의 인골이 확실하다고 판명이 되면 전설은 전설이 아닌 실화인 야사의 한 줄거리가 될 것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