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할머니.
손주손녀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우리 할머니.
우리 할머니에게 가장 고마운 점은
첫손녀인 나를 끔찍하게 귀여워해준 것보다도
맏며느리인 우리 엄마 고생 덜 시키고 돌아가신 점이예요..
할아버지는 아빠 고3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맏아들인 아빠, 유일하게 대학 공부 시켰다고
아래 열살차이 삼촌부터 고모셋까지
아빠를 남편 삼아 공부시키고 결혼시켜
그래도 너희가 한 게 뭐 있냐, 그럼 동생들은 죽으란 말이냐 하면서 엄마 원통하게 만들던 할머니.
서울대 나온 아빠는 알아서 잘 산다고
시골 땅은 아빠 몰래 다른 자식들에게 다 나눠준 할머니.
그래도 죽어도 맏아들 집에서 죽지 내가 내 집 놔두고 어디가냐 하고
우리 집에서 드러누우셨지요.
본래도 일년에 수차례 지내던 제사도
제사상 다 차려놓으면 나타나고
자기 아버지 제삿상에 돈 한번 낼 줄 몰랐던 고모 삼촌이라
보탬되는 건 없었네요.
77세에 백두산 여행까지 다녀올 정도로 정정하시다가
78세에 갑자기 기력이 없다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시고
병상에 눕자 아래 네 형제들은 찾아보지도 않더군요
엄마 아빠가 집 근처 병원에 입원시키고 6개월 간병했지요.
병원에서 해 줄 것이 없다고 모셔가라 하셔서 퇴원 후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거리 요양원에 모셨는데
그때서야 찾아와 고모들이 찾아와 우리 귀한 엄마 요양원에서 죽으란 말이냐
울고 불고 난리.
요양원 계시다가 한 달만에 돌아가셨어요.
호랑이 기운이라 백살은 거뜬하지 싶던 지병하나 없던 우리 할머니
평생 골골하고 온갖 병 달고 살던 우리 엄마보다 더 오래살지 싶었는데
병명도 없이 곡기를 끊고 음식을 못 드시더니 며칠 만에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시 전에 처음으로 엄마한테
네가 수고가 많았다 하셨다네요.
우리 엄마는 그 한마디로 많은 한이 풀리셨던 모양입니다.
장례식장에서는 고모들은 요양원에서 엄마 죽었다고 서럽다고 통곡하고
효자도 그런 효자가 없고 이후로 인연 끊었답니다.
그와중에 부의금은 다 빼돌렸는지 나중에 정산해보니 아버지앞으로 들어온 부의금은 90프로.
다른 형제 앞으로 온 부의금은 얼마 안 되더군요.
어릴 땐 마냥 나를 예뻐하고 사랑을 베풀던 할머니가 따뜻했고
철이 들면서부터 양가감정이 들어서 미웠던 할머니.
그래도 마지막은 우리 엄마 아빠 편하라고 편히 가주셨나
우리 엄마가 그 복은 있네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