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삼간택에서 떨어지면 시집 못갔다는 속설이 있는데....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삼간택까지 갔다면
이미 조선 시대 명문가라는 말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국회의장 딸 삼숑가 딸 이 정도일 텐데
대체 어느 왕실이 이 집 딸들 시집 못 보내는 법을 만들겠습니까?
이들이 등돌리면 왕실 운명이 어찌 될 듯인지는 불 보듯 뻔한데...
실제 조선 야사에도
왕실 간택에서 눈새짓 하고
명문가 시집가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야사도 있고
인현왕후 삼간택에 참여했던 여인들의 족보를 추적하니 좋은 집에 시집갔다는 연구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조선 극초기라면 모를까
시간이 흐르면 이미 사주단자를 받을 때 왕비 내지는 빈궁 감은 정해져 있고
그저 그 여자가 우리가 아는 여자가 맞는지 싶은 요식행위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중록에도서 혜경궁은 자신의 빈궁 간택을 회상하면서
그저 궁궐 구경이나 하러 간다 싶은 마음으로 갔는데 상궁 나인들이 벌써부터 빈궁 대접을 해서 놀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이미 빈궁이나 왕비 후보자는 정해져있고 다 요식행위였다는 말입니다
다만 명문가에서 왕비 자리를 선호하지 않은 것은 맞습니다
자기 딸이 갑이거나 최소한 시댁과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는 혼처도 널렸거늘
자신이 처신 조금만 잘못해도 욕 바가지로 먹는 자리로 가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요
남편이 슈펴 갑이라 부인 집안 없애려면 없앨 수도 있는 위치인데다
후사 번성을 이유로 애첩들을 봐야 하고 때로는 자신이 애첩을 손수 골라주기도 해야 하는 자리에
자기 딸을 보낼 명문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