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가을하루

중년 조회수 : 1,188
작성일 : 2018-10-21 16:31:37

아이들은 다 커서 한 명은 서울로 대학,  한 명은 군대.

직장생활 하지만 시간이 엄청 남습니다. 더구나 남편과 대면대면 한데다 요새 엄청 바쁘기도 해서

9월 주말부터 10월 개천절, 한글날, 주말 들이 시간이 엄청 많았어요.

다들 바쁘게들 사는데 정말 궁극의 외로움이 밀려왔고 살기위해 동네 얕은 산을 등산하고 둘레길을 산책하며

이 외로운 가을을  보내던 중..

내가 이렇게 외로운데 시골에 홀로 계시는 80넘은 노인 우리 친정엄마는 얼마나 외로우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정에야 기본적인 왕래야 한다지만 그저 쉬는 날 하루 얼굴 내비치고 오기 바쁜 날들이었죠.

게다가  그 즈음 엄마 핸드폰을 새로 해야 해서 한 일주일 정도 제가 가지고 있는데

세상에나.. 우리 엄마 핸드폰에 전화 한 통 오지 않더라고요. 오빠, 올케, 동생도 다들 자기 살기 바쁘니까요.

내가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끼니 엄마의 외로움 역시 깊이 공감이 가더군요. 더구나 전화라는게,

서로 안부를 묻기 위해 장만하고 있는건데  정작 엄마에게는 이렇게나 무심했구나 싶었어요.


어제는 하루 가서 엄마와 시간 보내고 왔습니다. 서로 외로운 사람들끼리.

감도 따고, 고구마도 캐고, 호박도 썰어 말리고, 감도 썰어 말리고...

언제까지 건강하게 계실지 갑작스럽게 걱정되고, 돌아가셔서 안 계실 상황을 생각하면 눈물이 막 나고..

예전엔 안 그랬어요.  마냥 좋기만 하고 잘해주기만 하던 엄마가 아니기에  잘 한다고는 하지만 내 진심을 다했던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동네에는 효녀 딸이라고 소문은 나 있지만요.  내가 하나를 하면 둘 이상 자랑을

하셨기 때문이겠죠.

다음주에는 모시고 와서 국화축제 구경 갈거에요. 한사코 나 부담된다고 거부하시지만 자꾸 우겼어요.

엄마, 국화축제 날마다 하는 것도 아니고 이 때 아님 안된다고. 내년에는 무릎이 더 아프셔서 더 못볼수도 있다고.

엄마에게도 자꾸 소소한 즐거움을 더 드리고 싶네요. 평생 농사만 짓느라 시골집을 별로 떠나본적 없는

시골 할머니 엄마. .


예전에는 받아온 농산물, 물론 감사히 먹었지만 감당 못해 많이도 버렸어요. 김치도 막 버려버리고.

근데 지금은 여기 82쿡의 수많은 조언대로 이리 저리 갈무리 하고 저장하고 어떻게 해서든 잘 해서 먹고 있답니다.


오늘 햇볕이 이렇게 좋은데 , 오늘은 시간을 이렇게 쓰면서 나의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아침, 호박 된장국을 정성스레 끓이고, 새 밥을 해서 먹고,

쌀 벌레 생기려는 쌀 한통을 햇볕 잘 드는 베란다에 큰 보자기를 찾아 깔고 거기에 잘 말렸습니다.

점심은 또 예전에 엄마가 주신 것 잘 씻어서 김치통에 넣어뒀던 부추 버무리고, 부추 전 한 장 붙여서 먹고,

어제 가져온 감 몇 개 깍아서 말리고, 그러면서 햇빛 쐬던 쌀도 뒤적여 주고, - 근데 쌀을 벌이 이리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벌이 수십마리 와서 먹느라 바쁘니 걔들 좀 쫓아주고 -

오늘이 아들의 음력생일이라 아들은 못 먹지만, 미역국 끓여 찰밥 하려고 팥 불리고 삶고, 찹쌀 불리고, 미역 불리고..이러고 있네요.


예전 바쁠때는 청소도 일이고, 음식하는 것도 일이어서 얼른 해치울 생각과 짜증과 바쁨과

이런거에 허덕였다면

이제는 이 많은 시간, 청소도 외로움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밥을 하거나 하다못해 고추장물 반찬을 하나 만들더라도 시간을 보내고 외로움을 보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가 왜 그리 김치를 자주 담그셔서 주는지 이해가 됐어요. 지난 9월에 알배추 2개로 김치를 담그다 보니

이게 참 재미지더라고요. 시간도 가고 뭔가를 하는 행위 자체가 참 좋았어어요.

이상, 온전하게 나의 시간을 알뜰하게 쓰고 있는 중년 아짐의 근황입니다.

외롭다고 느끼시는 분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 햇볕이 하루 종일 비추는 날,

어디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고들 계신가요?


IP : 120.29.xxx.53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8.10.21 5:02 PM (117.111.xxx.180) - 삭제된댓글

    쓸쓸하면서 따듯한 글이네요.
    가을 햇빛이 좋습니다. 건강하세요.

  • 2. ㅇㅇㅇ
    '18.10.21 5:35 PM (122.35.xxx.174)


    맑은 수필같은 글이에요 좋아요
    전 요즘 늙은 홀로계신 친정아버지께
    우리의 궁극적 본향인 하늘나라를 알려드리고 있어요
    친정 아버지랑 대화가 많아졌어요

  • 3. .....
    '18.10.21 5:37 PM (1.245.xxx.91)

    팔순이 넘어 총기도 사라지고 고집만 세진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왔는데,
    원글님 글을 읽으니 뜨끔하네요. ㅠㅠ
    고맙습니다.

    오늘의 평온이 주욱 이어지시길 바래요.

  • 4. 진진
    '18.10.21 5:38 PM (121.190.xxx.131)

    그래요 우리 다같이 중년의 삶을 응원해요.

  • 5. 아름다운
    '18.10.21 6:34 PM (211.248.xxx.216)

    통찰이시네요..저도 생각이 많아집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865380 갈라치기 실체가 드러나다. 30 자한당소멸 2018/10/22 2,145
865379 82 왜 이리 조용합니까? 2 유치원 2018/10/22 1,298
865378 국산 vs 중국산 고춧가루 맛 차이 많이 나나요?? 2 복잡미묘 2018/10/22 2,565
865377 남자 의사, 약사 있는 병원, 약국의 여직원들의 태도가 아리송 16 ... 2018/10/22 5,680
865376 남녀가 사랑하면 닮아가나요? 5 궁금 2018/10/22 2,036
865375 선물 받은 꿀 한 통 있는데....그냥 피부에 바르면 되나요? 4 .... 2018/10/22 1,712
865374 이런 쓰레기는 미국 눈치 볼 것 없이 잡아넣어야 하는데....... 4 아직도 2018/10/22 935
865373 갑자기 유방통증이 있어요 11 ........ 2018/10/22 5,943
865372 송유근, 심경 고백 "어디 두고보자" 49 ㅇㅇㅇ 2018/10/22 26,181
865371 고양이 키우시는 분들 계신가요? 좀 도와주세요. 25 글쎄요 2018/10/22 3,198
865370 부드러운 유동식 2 ... 2018/10/22 618
865369 교회 다니시는 하나님 믿는분들만 봐주세요 9 에휴 2018/10/22 1,297
865368 강아지 예방접종과 눈물자국 문의드립니다. ㅇㅇ 2018/10/22 726
865367 당신들 극문을 잘못 봤습니다. 58 명문입니다 2018/10/22 2,698
865366 우리 형님때문에 미쳐요. 9 어쩌나 2018/10/22 6,404
865365 손 못대는 멍멍이 발톱 어떻게하면 좋을까요? 5 차츰 2018/10/22 944
865364 어서와..알바고투어 왠만한 한국사람보다 개념있고 좋네요... 14 조선폐간 2018/10/22 2,680
865363 미혼남녀가 여행가는데 여자는 집에 얘기하지 않고 남자는 얘기하고.. 4 음,, 2018/10/22 2,341
865362 제약회사 다니는 지인이 카드 영수증 모아 달라고 하는데 저한테 .. 14 영수증 모아.. 2018/10/22 4,540
865361 공개처형이 부활했으면 18 ........ 2018/10/22 1,874
865360 어떻 조언을 해야 할까요? 자식교육 2018/10/22 383
865359 매트리스 방수커버 다들 사용하세요? 5 침대 2018/10/22 1,433
865358 겨울되니 효리네 민박 그립네요 2 겨울 2018/10/22 1,927
865357 공무원은 생각할수록 좋은 직업이네요 22 ㅇㅇ 2018/10/22 7,879
865356 남편이 알바를 다녀왔는데 12 ... 2018/10/22 4,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