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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역사 1 (독도 편)

길벗1 조회수 : 721
작성일 : 2018-09-17 16:22:15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역사 1 (독도 편)

- 두 인문학(역사학) 강사의 역사 왜곡

 

2018.08.16.

 

우연히 유튜브로 역사 관련 동영상을 보다가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인문&역사 관련 강사들의 독도 관련한 강연(강의) 동영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최진기는 역사, 문화, 경제, 사회, 정치 등 인문사회과학 다방면에서 해박한 지식으로 인터넷 강의를 해 이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는 사람이고, 설민석은 역사, 특히 우리나라 역사 강의에 독보적인 존재로 대중들, 특히 학생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이들은 인터넷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공중파에도 출연해 대중들의 인기를 얻는 것과 동시에 국민들의 역사인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역사 강의가 민족주의적(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우리나라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을 넘어 사실도 왜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객관적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의 역사의식은 극우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최진기는 상대적으로 국수적이지 않고 사실 왜곡을 덜하는 편이지만 진영주의에 경도되어 있고, 설민석은 ‘국뽕’에 취해 있다고 할 정도로 국수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우리 땅이라는 근거가 있는가?>

먼저 설민석과 최진기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설민석이 KBS를 통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XUbCVPMJLA

<최진기가 고려대에서 독도 관련한 특강한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m3_k9r8DNk

둘 다 마치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가 있는 양 말하지만 그 근거를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최진기는 일본이 독도를 러일전쟁 직후 일본 영토로 편입했다며 마치 일본이 조선의 땅인 독도를 강탈하여 일본 땅으로 만든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최진기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는 특강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아마 최진기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일본의 독도 편입을 제국주의적 침탈 형태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회피 기동을 한 것 같습니다. 센카쿠 열도(조어도) 사례를 들며 마치 일본의 독도 편입을 일본이 남(조선)의 땅을 빼앗은 것인 양 청중들이 무의식중에 인식토록 하는 술수를 씁니다.

그래도 최진기는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현재 실효적으로 우리가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가 많다는 주장은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설민석은 아예 대놓고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가 수없이 많다고 사기를 칩니다. 하지만 설민석이 제시하는 근거들이 모두 엉터리라는 것을 설민석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랫말을 읊으며 ‘세종실록지리지’와 ‘삼국사기(삼국유사)’를 들먹이고 있을 뿐입니다. 설민석은 삼국유사(삼국사기)와 세종실록지리지를 들먹이지만 실제는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나오는 구절을 찾아보지도 않았고, 세종실록지리지 오십 페이지 셋째 줄도 읽어 보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이라는 가사는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지증마립간 13년조, 권44 열전 이사부전과 <삼국유사> 권1 기이제 지철로왕조에 나오는 것으로 지증왕 13년(512년) 6월 신라 하슬라주(何瑟羅州: 현재의 강릉) 군주(軍主)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于山國) 정벌했다는 내용입니다.『삼국사기』에 우산국은 명주(溟州 正東)의 해도(海島)로 울릉도(鬱陵島)라 불리기도 했다고 나오고 『삼국유사』에는 ‘于陵島(今作羽陵)’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이사부가 울릉도(우산국)를 정벌했지 독도를 정벌했거나 독도를 신라의 관리하에 두었다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독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이사부는 독도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보여지고, 그리고 당시에는 독도를 관심에 둘 이유도 없었습니다. 이런 판국인데 삼국사기의 이 내용을 두고 우산이 독도를 지칭하는 것이라며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로 삼는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가 됩니다. 어떻게 섬의 크기도 훨씬 크고 사람이 많이 사는 큰 섬인 울릉도를 두고 조그만 한 돌 섬에 사람도 살지 않는 섬 이름을 삼아 나라의 이름인 우산국이라 지었겠습니까?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이죠. 우산국(도)은 울릉도를 이르는 말이지 독도를 지칭할 수가 없지요.

 

다음은 “세종실록 지리지 오십페이지 셋째줄”에 무어라고 나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 稱于山國 一云鬱陵島>

<해석 : 우산과 무릉이 현의 정 동쪽 동해에 있다. 두 섬은 거리가 멀지 않으며,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 또는 울릉도라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 오십페이지 셋째줄 역시 독도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우산이 독도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는데, 우산과 울릉은 거리가 멀지 않다고 기술하고 있어 현재의 울릉도와 독도가 200리나 되는 먼 거리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산을 독도라고 하는 것은 억지이지요.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은 울릉도를 동해안(울진)에서 보면 보인다는 뜻이지,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고 한 말이 아니지요. 울릉도에 살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내륙(울진)에서 울릉도를 바라보고 쓴 글입니다. 내륙에서 울릉도를 바라보면 절대 울릉도와 독도를 동시에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날씨가 청명하고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도 울진에서는 독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울진에서 울릉도를 바라보고 기술한 것이라는 근거는 "우산과 무릉이 현의 정 동쪽 동해에 있다"고 말한 것으로도 알 수 있죠. 그리고 독도는 울진현에서 보면 정동쪽이 아니라 동남쪽이고 울릉도와 동시에 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산과 무릉 중 한 곳이 독도라고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산과 무릉은 울진에서 울릉도를 바라보니 두 섬으로 보여 저렇게 기술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울진에서 울릉도를 바라보면 두 섬으로 보일까요?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울진에서 울릉도는 300리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울진의 제일 높은 곳에서 청명한 날 울릉도를 바라보면 울릉도가 보이기는 하지만 울릉도의 하부는 보이지 않고(지구가 둥글고 울릉도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중간이나 상층부 부분만 보이게 됩니다. 중간이나 상층부만 보이면 울릉도는 2~3개의 섬으로 보일 수 있지요.

부산 앞 바다에 있는 오륙도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오육도는 실제 5개 섬이지만 동쪽에서 보면 6개, 서쪽에서 보면 5개로 보인다 하여 오륙도라 부릅니다.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으로 불러 6개로 보이지만, 방패섬과 솔섬은 실제 하나의 섬인데 동쪽에서 보면 두 개로 보이기 때문에 6개의 섬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육지에서 불과 수 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이렇게 부르는데 삼 백리나 멀리 떨어진 울릉도가 두 개의 섬으로 보이는 것은 무리가 아니지요.

제 해석이 올바르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증명합니다. 그러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부분이 어떻게 나와 있는지 볼까요?

<외교부 독도>의 “우리 땅 독도“ -> ”지리적 역사적 근거“로 들어 가시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우산도/울릉도를 언급하는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http://dokdo.mofat.go.kr/page.do?page=0020101

원문을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두 섬이 고을 바로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 세 봉우리가 곧게 솟아 하늘에 닿았는데 남쪽 봉우리가 약간 낮다. 바람과 날씨가 청명하면 봉우리 머리 수목과 산밑의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으며, 순풍이면 이틀에 갈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똑같은 문구인 “風日淸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울진에서 울릉도를 바라보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봉우리의 수목과 산 밑의 모래톱은 독도의 형상과 맞지 않고, 세 개의 봉우리 중 남쪽이 낮다는 것도 역시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의 모습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우산도/울릉도 설명은 울진을 설명하는 가운데 나오고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의 저 문구도 “강원도 울진현조”에 나오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관점도 울진에서 울릉도를 본 것이지,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고 이른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증거를 보여드리지요. 조선시대 운곡선생의 시에 이와 관련되는 시가 있는데, 이 시를 보면 울진에서 울릉도를 볼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운곡선생 영해방문 행로기>의 1-158 “지현에서 울릉도를 바라보다”라는 부분을 보십시오. http://cafe.naver.com/shmj68/320

우산국이라 칭하고 울릉도라 부른 것은 우산국이 울릉도이고 무릉은 울릉도 부근에 있는 부속 섬으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르지요.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는 전혀 없으며, 애초에 독도 존재 자체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런 지경이니 역설적이게도 신라장군 이사부가 이 노래를 듣고 웃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군요. 물론 전두환 정권이 이 노래의 가사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전혀 증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에게 되치기 당할 수 있는 소재가 된다고 하여 금지시켰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 그랬는지 모르지만 독도 논쟁에서 우리에게 절대 불리한 노래임은 사실입니다.

 

설민석은 또 안용복이 독도를 지켰다며 영웅시 합니다. 역시 설민석은 조선왕조실록 숙종편(실록)을 읽어보지도 않고 주워들은 이야기를 마치 진실인 것처럼 대중들을 호도합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강의하는, 더구나 우리나라 제일의 역사 선생으로 대접받는 자가 해당되는 사안에 대해 원천 자료(조선왕조실록)를 찾아 읽어보지 않고 함부로 말하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그러면 설민석이 말하는 것처럼 안용복 사건이 독도와 관련있는 사건이고 안용복이 독도를 지켜낸 역사적 인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조선(한국), 에도(일본)시대의 울릉도 분쟁은 조선 어민이 울릉도에 넘어와 일본측이 문제 제기를 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상당히 다르지요. 지금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마당에 당시에 울릉도를 일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분쟁을 했다니 믿기지 않지요? 그러나 이건 사실입니다. 당시 조선은 울릉도의 空島化, 無人化 정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죄를 짓고 울릉도로 도망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고 울릉도가 멀고 험해 별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이런 조선의 정책 때문에 일본인(倭)이 울릉도로 들어와 살고 고기도 잡았습니다. 숙종 때 안용복이 조선의 울릉도 공도화 조치를 위반하고 울릉도에 密漁를 하다가 일본인에게 붙잡히게 되고 이를 일본이 조선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 안용복 사건입니다. 당시 조선은 일본에 사과하고 안용복을 죄인으로 다루고 처벌까지 하였지요. 그러다 조선의 정책이 바뀌어 울릉도가 동해안에서 보인다는 이유를 들어 울릉도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일본은 조선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조선은 울릉도 무인화 정책을 유지합니다. 이런 사이 안용복은 가벼운 처벌로 풀려나 안용복은 다시 울릉도로 밀어를 하게 되고 또 일본에 붙잡히게 됩니다. 대마도를 통해 안용복을 인수받은 조선은 안용복을 취조하게 되는데, 이 때 안용복은 자기가 일본으로부터 울릉도를 조선 땅으로 인정받고 왔다고 진술합니다. 안용복은 일본으로부터 마츠시마(松島)를 조선 땅으로 인정 받았다고 했는데 당시 마츠시마는 일본에서 독도를 칭하고 있어 현재 우리는 이를 들어 일본이 독도를 양허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우리의 주장도 신빙성이 매우 부족합니다. 안용복의 진술내용은 조선실록에 기록되어 있는데, 내용을 더 상세히 들여다 보면 이 중에 안용복이 마츠시마(松島)에 살고 있다는 일본인과 대화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를 보면 안용복이 마츠시마를 이야기하는 것은 울릉도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마츠시마를 독도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더 곤란해 지게 됩니다. 안용복은 마츠시마에 산다는 일본인과 대화했다고 했는데 마츠시마가 독도라고 하면 일본인이 이미 그 때(숙종)에 독도에 살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다투는데 일본인이 숙종 때 그 곳에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하게 되는 것이죠.

앞서 살폈듯이 안용복 사건은 안용복이 독도를 우리 땅으로 만든 사건이 아니라 안용복이 조선 법령을 위반하고 울릉도에서 밀어를 하다 일본에 잡혀가게 되고 조선-에도 막부간에 외교분쟁으로 비화한 사건일 뿐이며, 조선은 안용복을 죄인 취급하였던 사건입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두고 볼 때 독도에 “안용복 길”을 만든 것은 낯 뜨거운 일이지요.

 

지금부터는 안용복 사건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안용복이 진짜 독도를 지킨 위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래는 우리측(설민석)이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조선왕조실록 숙종편에 나오는 안용복이 비변사에서 진술한 내용입니다.

 

“저는 본디 동래(東萊)에 사는데, 어미를 보러 울산(蔚山)에 갔다가 마침 중[僧] 뇌헌(雷憲) 등을 만나서 근년에 울릉도(鬱陵島)에 왕래한 일을 자세히 말하고, 또 그 섬에 해물(海物)이 많다는 것을 말하였더니, 뇌헌 등이 이롭게 여겼습니다. 드디어 같이 배를 타고 영해(寧海) 사는 뱃사공 유일부(劉日夫) 등과 함께 떠나 그 섬에 이르렀는데, 주산(主山)인 삼봉(三峯)은 삼각산(三角山)보다 높았고, 남에서 북까지는 이틀길이고 동에서 서까지도 그러하였습니다. 산에는 잡목(雜木)·매[鷹]·까마귀·고양이가 많았고, 왜선(倭船)도 많이 와서 정박하여 있으므로 뱃사람들이 다 두려워하였습니다. 제가 앞장 서서 말하기를, ‘울릉도는 본디 우리 지경인데, 왜인이 어찌하여 감히 지경을 넘어 침범하였는가? 너희들을 모두 포박하여야 하겠다.’ 하고, 이어서 뱃머리에 나아가 큰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본디 송도(松島)에 사는데 우연히 고기잡이 하러 나왔다. 이제 본소(本所)로 돌아갈 것이다.’ 하므로, ‘송도는 자산도(子山島)로서, 그것도 우리 나라 땅인데 너희들이 감히 거기에 사는가?’ 하였습니다. 드디어 이튿날 새벽에 배를 몰아 자산도에 갔는데, 왜인들이 막 가마솥을 벌여 놓고 고기 기름을 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막대기로 쳐서 깨뜨리고 큰 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들이 거두어 배에 싣고서 돛을 올리고 돌아가므로, 제가 곧 배를 타고 뒤쫓았습니다.'

 

위 안용복의 진술에서 “松島는 자산도(우산도)로서, 그것도 우리 땅”이라고 안용복이 말했다는 이 단 한마디가 우리측이 내세우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근거입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안용복과 박어둔의 진술은 범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피하고자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진술했다고 보고, 안용복의 진술을 믿지 않았으며, 현재의 (역사)학자들도 안용복의 진술에는 거짓이 섞여 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안용복 사건은 조선과 일본간의 울릉도 분쟁이지 독도 분쟁이 아닙니다. 조선은 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이나 그 이후에 일본측에 독도(일본의 송도)에 대해 우리 땅임을 요구한 적도 없으며, 그것을 적은 서계를 일본에 보낸 적도 없습니다. 일본은 당시에 독도(송도)는 언급조차 없이 울릉도도 자기 땅이라면서 조선이 울릉도에서 물러갈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일본(에도막부)으로부터 울릉도(죽도)를 조선 땅으로 인정한 서계를 받았다는 안용복의 진술은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안용복은 일본으로부터 받았다던 서계를 빼앗겼다고 하여 가지고 올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있으며, 조선 조정도 안용복의 이 진술을 믿지 않았고, 일본의 기록 어디에도 서계를 주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또한 안용복의 도일 일정을 살펴보아도 물리적으로 에도막부에 갈 수 없는 상황임이 드러나 안용복의 서계는 거짓임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우리측 논리는 안용복은 자산도(우산도)를 일본이 당시에 독도로 칭하던 마쓰시마(松島)라고 하였고, 우산도는 독도를 의미함으로 따라서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안용복은 1차 도일 전 울릉도에 머물 때 우산도를 2번 보았다고 했음으로 이 때 이미 우산도를 인식하였습니다. (이 때 우산도는 독도, 죽도, 일본이 말하는 마쓰시마 등 어디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현재 존재하는 어느 섬일 것이지만)

또한 이 때까지 안용복은 마쓰시마(松島)에 대한 인식은 없었으며, 일본이 독도를 마쓰시마라고 부르는 줄 몰랐습니다.

안용복을 울릉도에서 일본 오키섬으로 잡아간(안용복의 1차 도일) 오야가의 배는 독도(마쓰시마)를 거쳐 갔음이 일본의 기록에 나옵니다. 그러나 안용복이나 박어둔은 독도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본 우산도가 독도라고 생각했다면 잡혀갈 때 우산도를 거쳤으며 보았다고 했을텐데 그런 진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안용복은 “도중에 바다 한가운데 섬을 보았는데 죽도보다 자못 컸다”는 진술만 했습니다. 안용복이 보았다는 이 섬은 죽도(울릉도)가 독도보다 318배 정도 큰 것을 감안할 때 아무리 착각을 한다 하더라도 결코 독도가 될 수 없습니다. 아마 오키섬이나 일본의 어느 섬일 확률이 높습니다. 안용복이 보았다는 이 섬을 독도라고 주장하는 박병섭의 논문은 잘못이라 여겨집니다.

안용복이 1차 도일(잡혀간 사건)하고 조선으로 송환된 다음의 조사에 나타난 진술로 보면, 마쓰시마(松島, 독도)에 대해 인식했다는 내용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1차 도일 후 조선에 와서도 아직 독도에 대한 인식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2차 도일 전 울릉도에서 왜인을 만나 “송도는 자산도로서 우리 땅”이라고 한 말에서 안용복이 말한 송도가 과연 독도를 의미하는지는 의문입니다. 독도에 대한 인식이 잡혀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산도(우산도)를 독도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안용복은 2차 도일시에는 조선팔도지도를 소지하고 갔으며, 일본 관리들에게 이 지도를 보여주며, 울릉도(죽도)와 우산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용복이 2차 도일 전이나 그 이후 1900년까지 우리나라 고지도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를 표기한 지도는 있으나, 독도를 나타낸 지도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안용복이 소지해 간 조선팔도지도는 울릉도, 우산도만 표기된 지도이고 독도를 나타낼만한 섬을 표기한 지도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안용복이 2차 도일하여 일본관리가 심문한 기록에는 <이것을 松島라고 한다는데, 이것도 팔도의 지도에 쓰여 있습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안용복이 조선팔도지도의 어느 섬을 가리키며 松島(마쓰시마)라고 말했다고 보여집니다.

우리측이 안용복 사건을 독도는 우리 땅의 근거라고 주장할 때 넘어야 할 과제들은 다음의 5가지가 됩니다. 이 중에 단 하나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안용복 사건을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하는 근거로 내세울 수 없습니다.

 

1) 안용복의 진술은 당시의 조선 조정도 믿지 않았으며, 지금의 역사학자들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또 안용복이 받았다던 일본(에도막부)이 울릉도를 조선 땅으로 인정한 서계는 없었던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렇게 조선 조정도 믿지 않았고, 지금의 우리나라 역사학자들도 안용복이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안용복의 진술에 나온 단 한마디를 근거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증거로 삼을 수 있는가에 답해야 합니다.

 

2) 안용복이 말한 송도가 독도를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안용복의 말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안용복은 송도는 자산도(우산도)라고 하면서 우리 땅이라고 주장했음으로 우산도가 독도라는 것을 우리측이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문헌이나 고지도에 나타난 우산도는 울릉도나 죽도를 나타내는 내용은 많으나, 독도를 의미하는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우리측은 우산도가 독도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3) 안용복이 2차 도일시 갖고 간 조선팔도지도에 독도로 생각될만한 섬이 그려져 있지 않다면 안용복이 말한 송도(마쓰시마)를 독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안용복은 일본관리에게 조선팔도지도에 그려진 섬을 가리키며 松島(마쓰시마)라고 했음으로 우리 고지도에 독도를 나타내는 섬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야 안용복이 말한 마쓰시마는 독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고지도에는 우산도까지만 그려져 있지 독도를 나타내는 고지도는 없습니다. 우산도를 마쓰시마(독도)라고 주장하려면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참고로 안용복 사건(1694년, 1696년) 뒤의 1711년에 조선 조정이 수토관으로 보냈던 박석창이 울릉도를 둘러보고 그린 울릉도와 그 주변 섬들의 지도를 링크합니다. 제가 첫 번째 링크하는 글의 필자는 박석창의 지도에 나오는 우산도를 독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지도를 잘 보시고 우산도가 독도인지 죽도인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박석창의 지도는 우산도가 아래쪽에 위치해 있어 우산도가 울릉도 남쪽에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지도 오른쪽에 子北, 아래쪽에 東卯가 표기되어 있음을 상기하시고 통상 우리가 북쪽을 위쪽으로 놓게 보게 되면 우산도는 울릉도의 동쪽에 위치한다는 것을 유념하십시오. 이에 따른 설명은 두번째 링크로 걸어 드립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ms1530&logNo=10032700058

http://theacro.com/zbxe/free/624041

위의 박석창의 지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우산도는 현재의 죽도임이 확실하며, 독도는 명백히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수토관 박석창이 안용복 사건이 있은 지 10여년 뒤(1711년)에 울릉도를 찾아가 그린 지도에 나타난 우산도가 죽도임을 나타내고 있는데,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본(1696년) 우산도가 독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4) 당시의 조선 조정은 독도에 대해 거론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일본측에 독도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일본에 보낸 서계에는 울릉도만 나오지 독도는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문서에는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용복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울릉도 공도화 정책을 유지했고, 독도를 관리했다는 기록은 커녕 독도를 인식했다는 기록조차도 없습니다.

 

5) 안용복이 말한 松島가 독도를 의미한다고 한다면, 안용복의 진술에는 왜인이 松島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나옴으로 우리는 일본이 먼저 독도를 이용하고 관리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안용복의 진술에 따르면, 울릉도에 왜선이 많이 정박한 것을 본 것으로 볼 때 송도에는 왜인이 수십명은 살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들은 본디 송도에 살았다고 말하고 있으며, 가마솥을 걸어놓고 기름을 다렸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것은 적어도 왜인들이 송도를 근거지로 어업활동을 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일본은 이미 수십명이 독도에 살면서 울릉도까지 어업활동을 했다는 뜻이 되는데, 만약 일본이 이것을 독도에 대한 점유 혹은 이용의 역사적 증거로 제시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안용복이 말하는 송도가 독도라고 우리가 주장하는 순간, 일본은 독도에 대한 확실한 역사적 증거를 우리측으로부터 확인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용복 사건 이전에 독도를 이용했다거나 관리한 기록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독도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우리 스스로 일본에게 헌납하게 됩니다. 이건 완전한 자폭이지요.

 

* 독도 해저 지형 (국립해양조사원의 독도 해저지형 3D 영상)

http://www.khoa.go.kr/user/bbs/selectBbsList.do?bbsMasterSeq=BOARD_MST_000000...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도서라는 우기는 우리의 주장이 국제 사회에 먹힐지 독도 해저 지형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독도는 우리나라 내륙이나 울릉도와 연결되어 있기 보다 일본 열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구글 지도로 독도 해저 지형을 봐도 일본 오키 섬의 해저 지형과 연결되어 있지, 울릉도 해저 지형과는 단절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 아래의 독도 관련 만화를 보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독도 만화>

https://www.ilbe.com/index.php?document_srl=10725775772&page=1

 

 

IP : 118.46.xxx.145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8.9.17 4:28 PM (106.240.xxx.43)

    이 인간 배가 배밖에 나왔네. 버젓히 일베를 링크해났네. 헐~

  • 2. 나옹
    '18.9.17 9:15 PM (124.111.xxx.149) - 삭제된댓글

    헐.. 일베 글을..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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