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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비틀어 생각해 보기(이순신장군이 이렇게만 하셨더라면?)

꺾은붓 조회수 : 580
작성일 : 2018-09-14 10:16:16

역사 비틀어 생각해 보기(이순순장군이 이렇게만 하셨더라면?)

 

지난 6여 년 동안 조선천지에서 피눈물이 그칠 날이 없었으련만 무심한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1598년도 그럭저럭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6년의 전란동안 조선백성 600~700만 중 200만 이상의 조선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어 조선반도를 시산혈해로 만든 왜구도 7년 가까운 전쟁에 군수품의 고갈과 전투력이 날개 부러진 매 꼴이 되어 앉은 채로 떼죽음을 하기 직전이었고, 거기에 더불어 왜구두목 풍신수길이 뒈지자 그의 명에 따라 조선을 침공하였던 왜구도 철군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급박한 처지가 되었다.

 

정사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야사의 이면에 감추어진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건대 철군하는 왜구를 명색이나마 조선의 지원군으로 출정하였던 명나라군 수뇌부는 왜군과의 더러운 뒷거래로 철군하는 왜구에게 퇴로를 터준다는 밀약이 성립되어 조선군의 사실상 최고사령관인 이순신장군에게 왜구에게 퇴로를 열어줄 것을 개뼈다귀만도 못한 명나라 황제인지 황새인지의 명으로 포장을 하여 장군께서 거역하기 힘든 압력을 넣었지만, 이순신장군은 뒷감당이야 어찌 되었건 쫓겨 가는 왜구를 단 한 놈이라도 살려 보낼 의사가 전혀 없었다.

 

이미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고 이순신장군이 우유부단하고도 지질이도 못 난 조선왕 선조나 조정의 추잡한 당파싸움을 생각하건대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짓고 승전장군이 한양으로 개선하여도 조선조정에서 전공에 상당하는 예우를 받기는 고사하고 장군에게 어떤 허물을 뒤집어 씌워서라도 역적으로 몰아 생명을 빼앗을 것은 불을 보듯 빤하니, 노량앞바다에서 조총을 쏘아대는 왜선 앞에서 갑옷마저 벗으시고 지휘를 하시다 왜구의 총탄에 맞아 자의반 타의반도 아닌 자결에 가까운 순국을 하신 것으로 되어있다.

당시 어지러웠던 조선조정의 상황을 살피건대 승전장군인 이순신장군으로서는 왜구의 총탄을 빌려 표면적으로는 전사를 하여 순국을 하시는 것이 그나마 7년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은 위명과 가문마저 위태롭게 하지 않을 가장 깨끗하고 무난한 죽음으로 여기시고 전사를 가장한 순국을 택하신 것으로 되어있다.

 

전쟁이 끝난 당시부터 현재까지도 정사의 기록이나 야사의 이면에 함축된 무언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있어 서로 대립되거나 회의를 품는 몇 가지 추론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떤 이는 이순신장순이 왜구의 씨를 말리려고 앞장서서 싸우시다 뜻밖의 전사를 하시었다고 주장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전사를 가장하고 어디론가 점적하여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이나 오지에 묻혀 은둔하여 사시다 천수를 다 하시고 돌아가신 것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소형어선 한 척에 그를 아버지같이 따르는 부하군졸 몇 명과 함께 당시 왜의 영토가 아니고 조선조정에 조공을 바치면서 조선조정과 끈끈한 군신관계를 유지하였던 유구(오늘날의 오키나와)로 가셔서 실화인지 소설인지도 불분명한 홍길동의 후손들과 어울려 사시다 천수를 다하셨다는 설 등 여러 가지 그럴듯한 소설이 난무하고 있다.

정사의 기록에 다소 과장되거나 축소된 부분이 있고 정사의 기록에 재미를 덧붙여 전해 오는 야사라고 하더라도 그 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시고 전 조선백성의 통곡 속에 치러진 장군의 묘지가 엄연히 존재하거늘 어찌 정사와 정사에 조금 과장을 석은 야사가 완전 거짓이기야 하겠는가?

 

그거는 그렇고!

<역사 뒤집기 ; 가상의 가정>

노량앞바다에서 철군하는 왜구의 씨를 말리다시피 섬멸하여서 전쟁의 뒷설거지까지 깨끗하게 한 뒤, 한양으로 개선해서 지질이도 못난 왕 선조에게 부복하여 승전보고를 하여도 선조는 “수고했다.”는 칭찬인지 트집인지 모를 말 한마디 내뱉고 본체만체하는 대접을 받고 퇴궐을 하여 잠시 집에 들렀다가 조정에서 장군의 든든한 울타리역할을 하셨던 유성룡대감댁에 감사 겸 인사를 하러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고, 며칠 뒤면 당치도 않은 올가미를 씌워 장군을 옥에 가두고 혹독한 고문을 해서 대역죄인으로 다스리려 들 것이고,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함은 물론 장군을 집안으로 맞아들여 주안상을 앞에 놓고 시국토론을 했던 유성룡대감마저 대역죄인으로 몰려 끝내는 유대감은 물론 그 가문마저 멸문지화를 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고민 고민하시다 장군이 모든 병사들이 잠든 깊은 밤에 장군을 따라 종군 중이던 아들을 몰래 불러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밤새도록 이른다.

 

그 다음날 장군은 몸이 불편하셔서 누워계시니 장군막사로는 누구도 출입을 삼가라는 방문을 써 붙이고, 장군의 아들과 그를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는 조선수군 몇이 포로로 잡혀있는 왜군 중에 장군과 키(신장)도 비슷하고 용모도 비슷하게 생긴 왜병 한명을 끌어내어 장군의 군복을 입힌 후 조선수군의 병선에 태워 철군하는 왜군의 배 앞으로 갈 터이니 왜선을 향하여 너를 데려가 달라고 소리치라고 이른다.

왜포로는 이제 죽는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장군복장으로 갈아입고 황홀한 기분에 조선병선에 올라 퇴각하는 왜군을 따라가며 왜말로 나는 조선군에 포로가 되었다가 도망쳐서 이렇게 왔으니 어서 빨리 나를 데려가라고 목이 터져라 왜말로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탕! 탕! 탕!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왜병은 그렇게 장군행세 잠간 한 값에 삶을 마감했고, 그 즉시 장군의 아들과 조선병사들이 죽은 왜군의 시신에 면 포를 씌워 장군의 고향으로 옮겨져 장군대신 장군의 묘지자리로 잡아 놓은 곳에 안장되었다.

장군의 아들과 그를 목숨을 걸고 따르는 몇몇 병사이외에 장군이 아직 살아계신 것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 장군과 아들 그리고, 장군을 아버지 같이 따랐던 조선병사들 수십 명을 골라 병선 한 척에 태우고 장군은 노량부터 변산반도 앞바다까지 남해와 서남해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을 샅샅이 뒤져 낙오병으로 숨어 지내던 조선병사들을 다 불러 모았다.

 

낡은 어선도 여러 척이 되었고 그렇게 불러 모은 낙오병이 줄잡아 천여 명은 되었다.

장군은 병선 10여척에 이들을 나누어 싣고 노량앞바다에서 우선 왜의 영토도 조선의 영토도 아닌 부산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대마도를 향 하였다.

그리하여 대마도에 상륙하여 우선은 대마도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며칠 지나자 대마도에 조선수군, 그것도 조선수군 사령관 이순신장군이 직접 오셨다는 소문이 퍼지자 온 대마도 사람들이 매일 같이 장군이 거처로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식량을 날라 와 장군과 병사들이 끼니 걱정을 안 해도 되게 되었고, 그 동안 시도 때도 없이 대마도 사람들의 재물과 양곡을 약탈해 가던 왜구가 얼씬도 못하게 조선병사들이 지켜주니 대마도사람들이 장군과 그 부하들을 조선왕 같이 받들었고, 대마도 젊은이들이 앞을 다투어 장군의 휘하 군영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여기서!

장군에게 조선조정에 반기를 든다거나 조선조정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역심 같은 것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장군은 한양으로 가서는 목숨을 부지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왜가 물러갔어도 왜가 다시 조선을 침략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해서 대마도-제주도-유구(현 오키나와) 3개 섬을 근거지로 조선조정에 조공을 바치는 조선조정에서 공인하는 영주의 수장으로 조선왕의 충직한 신하가 되어 다시 왜구가 침입을 하더라도 이를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수륙 양군을 양성한 다음 세 섬을 조선의 알토란같은 영토로 귀속시킨 뒤 조선의 남해안을 철벽같이 지키겠으며, 3개섬이 안정되면 조선조정에서 장군을 100%신뢰할 수 있도록 장군의 아들 중 한 명을 한양조정으로 올려 보내겠다는(일종의 볼모) 서신을 조선조정에 띄웠다.

 

서신을 받은 조선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전란으로 불탄 궁궐도 제대로 복원하지 못 하고 왕실마저 오두막살이 신세를 면하지 못 하고 있는 상태에서 왜구의 재침이라도 있으면 그때는 조선과 이씨왕조는 끝나는 판인데, 전사하신 줄만 알았던 장군께서 살아계시고 또한 남해바다를 든든하게 지켜주겠다는 약속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도 조선에 대하여 충성을 하겠다고 하며 남쪽이 안정(대마-제주-유구)되면 장군의 아들을 인질로까지 보내겠다고 까지 하는 데에야 장군의 충성심을 100%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부터 한양조정에도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우유부단한 선조는 자신보다 100배 천배 나은 영의정 유성용대감에게 대부분의 실권을 일임하고 유대감이 하자는 대로 국정을 이끌어가니 짧은 시일내에 조선조정이 몰라보게 일신되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양을 비롯한 조선백성들의 입에서도 장군에 대한 감탄과 찬사의 목소리기 그치지를 않았다.

 

그리고 조선조정에서 장군에게 답신이 내려왔다.

내용을 요약하면 장군이 왜란 중에 세운 공이 조선과 조선백성을 살렸고, 장군의 충절을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빠른 시일 내에 3개 섬을 평정하여 조선의 든든한 영지가 되도록 하고, 제주도는 이미 제주목사에게 장군의 군대가 상륙하면 기꺼이 그 연합이 되어 모든 편의를 제공하라는 지시와 군령을 내렸으니 구태여 제주와는 싸움을 할 일이 없을 것이고, 그곳이 안정되면 구태여 장군의 아들을 한양으로 보낼 것이 없이 장군의 아들이 한양에 한번 와서 그곳의 상세한 상황만 보고받으면 그것으로 대만족이라는 내용이었다.

왜구는 물러갔어도 빈사상태를 헤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조정에서는 그 이상의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런 해결책도 충직한 애국자이자 백성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유대감이 있어서 그나마 가능했다.

 

그로부터 1년 안팎

대마도가 장군의 근거지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자 병선 한척에 병사 수십 명을 싣고 조선 수군의 깃발을 휘날리며 제주도를 향했다.

장군이 보낸 병선이 제주를 향하여 다가오고 있다는 급보를 받은 제주목사가

가마고 군졸이고 다 뿌리치고 말에 올라 말 옆구리에 채찍을 휘두르며 단신으로 허겁지겁 제주 동쪽 함덕해변으로 달려와서 장군의 함대를 영접했다.

모든 지시는 조정에서 이미 제주목사에게 내려졌고, 장군진영에서도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느니 충돌이라는 게 있을 레야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제주목사가 집무하는 동헌마당에는 장군의 수군 깃발이 높이 결렸고 제주목사가 한양조정에 비치는 세비 중 일부를 대마도에 계신 장군께 바치겠다는 것을 딱 잘라 거절을 했다.

 

한편 제주목사는 3개 섬의 중간에 자리 잡은 제주로 장군의 본 진영을 옮기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에는, 목사의 배려가 감사하기는 하지만 대마도가 위치한 부산앞바다는 항상 왜구가 출몰하는 길목이고 또 언젠가는 왜구가 다시 조선을 침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감사하지만 그 제의는 받아들이기가 곤란하다고 거절이 아닌 현실적인 이류를 들어 사양을 하였다.

제주백성들도 장군을 하늘 같이 존경해 마지않았고 그에 더불어 제주백성들도 살판이 났으니, 대대로 제주목사나 큰 읍의 현령으로 내려오는 것들은 하나 같이 그렇잖아도 힘든 제주사람들의 가죽을 벗기다 시피 수탈을 하여 한양에 뇌물 좋아하는 대감놈들에게 진상품이라는 뇌물을 바치기 위해 쇠갈퀴로 긁듯 긁어 대었는데 제주가 장군의 휘하로 들어오자 그런 게 일시에 싹 옛일이 되어버렸으니, 제주 들녘에서도/ 말과 소를 기르는 초원에서도/ 물질을 하는 바닷가에서/ 그물질을 하는 바다가운데 어선에서도 장군을 존경하고 칭송하는 격양가가 그칠 날이 없었다.

 

그로부터 몇 달 지나자 서울 한양에서 조선조정에 진상품을 갖고 왔던 유구에서 보낸 사신이라는 사람과 조선관리가 같이 대마도로 찾아왔다.

그 얘기는 들어 볼 것도 없이 유구도 제주와 같이 무조건 장군의 군대를 환영으로 맞아들일 것이고 바로 유구도 장군의 휘하로 편입되기를 바라니 하루 빨리 장군의 함대가 유구를 방문해 주시기 바란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뒤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여 조선의 해안과 중국(명나라)의 동남해안을 쑥 밭을 만들던 왜구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하여 명나라에서도 장군에게 감사하다는 명황제의 서신과 함께 수많은 물품을 싣고 대마도에 명나라 사신이 도착했다.

 

자나 깨나 골칫거리였던 조선의 해안이 안정되니 조선조정이 걱정할 일이 없었고, 장군의 위명을 알고 있는 명나라에서도 조선에 대하여 과거와 달리 평등한 관계를 스스로 자처하고 나오니 북방도 걱정할게 없었고, 또한 조선조정도 장군이 3개 섬 백성들로부터 사람으로서는 받을 수가 없는 추앙을 받고 있으니 조선조정에도 연이어 세종치세가 펼쳐졌다.

 

그리고 얼마 뒤 장군은 천수를 다 하시어 정성스럽게 염을 한 뒤 향리 아산(온양)으로 모셔져 잠시 왜구가 더럽혔던 곳에 장군의 운구를 모셨다.

국상보다도 더 엄숙하고 장대하게 치러졌고, 장군의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조선과 3개 섬에서는 통곡이 그칠 날이 없었다.

장군이 돌아가신 뒤로 장군의 아들들이 대를 이어 장군과 같이 3개 섬에 강력한 수륙양군이 진을 치고 왜구를 완전히 왜 열도에 가둬버렸으니 동북아 나아가 동남아가 태평세월을 맞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광해왕 시절)
한양조정에서 장군(아들)과 상의할 급한 일이 있으니 장군의 손자께서 한양을 한번 다녀가시라고 해서 장군의 아들은 대마도를 근거로 3개 섬을 지키고 있고 장군의 큰 손자가 한양을 갔다.

한양에는 북방에서 새로 일어나는 신흥세력(여진→후금→청나라)의 사신이 와 있었다.

폐 일언하고, 광해임금이 어찌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 말에 장군의 손자께서는 여진은 우리와 4촌지간이나 다름없으니 우리와 여진이 연합하여 다 쓰러져가는 명나라 정벌에 나서서 우리는 옛 고구려영토를 수복하고, 여진은 중원을 차지하자며 어서 빨리 여진의 사신에게 그런 답신을 띄우라고 했다.

그리고 장군의 손자께서 대마도로 내려가는 즉시 3개 섬을 지킬 최소의 군사만 남겨놓고 모든 군사를 명나라 정벌군으로 한양으로 올려 보내겠노라고 했다.

 

길고 복잡한 얘기는 생략하고!

조선을 그렇게도 못 살게 굴던 더럽고 아니꼬운 명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동북아를 조선, 여진-후금-청, 그리고 남서쪽 조그마한 변방으로 쫓겨 간 중국(국호를 “명”에서 “후명”으로 개명) 4개국이 동북아를 4등분하여 나눠갔게 되었다.

 

얼마 지나 제주에 얼굴도 낯선 서양인 36명인가가 탄 배가 표류하여 들어왔다.

바로 하멜일행이었다.

이들을 극진히 대접하여 그들의 앞선 조선기술과 거북선을 만든 기술이 합해져 세계가 부러워하는 거북선의 후신인 인류최초의 완전 무장된 철갑선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되었고, 하멜 일행을 융숭하게 대접하며 인도(서인도)까지 실어다 줘 그들이 무사히 그들의 조국(네덜란드)으로 귀국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로부터 전 유럽에는 지구 동쪽에 최강대국으로 조선이라는 문명된 나라가 있다는 게 쫙 퍼졌고, 모든 나라가 앞 다투어 대마도와 한양을 방문 조선과 원시적인 국교를 텄다.

 

그로부터 2~300여년 뒤!

서양에서는 오늘날 ‘1차 세계대전’대전으로 일컫는 전쟁이 일어났으나 그건 그들의 집안싸움이었고 조선이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동아시아에서는 강 건너 불이었다.

 

그 뒤 독일에 지금 미국 트럼프의 대 선배격인 히틀러라는 작자가 나타나 다시 세계를 불바다를 만들려 들었지만, 삼면(북-남-서)의 포위망에 갇혀 있고 겨우 망망대해 태평양으로 통하는 길만 틔워진 왜는 원시적인 삶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그 전쟁에 끼어 들 엄두도 못 냈고, 2차 세계대전은 유럽에서 치고받다 그친 1차 세계대전의 후속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이하 생략-

 

이순신장군이시여!

우리 후손들에게 그런 나라를 물려주시었어야지요!

왜 그렇게 서둘러 돌아가셨습니까?

하지만 장군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장군을 하나님보다도 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장군이 아니셨으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 뒤 어찌 명맥인들 유지하였겠습니까?

그 때 장군이 아니셨으면 조선천지는 왜의 식민지도 아닌, 완전한 왜 나라가 되어 지금 배달겨레 1억은 완전한 왜구가 되어 게다짝을 딸각거리는 <쪽바리>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이어 한양과 평양에서도 버섯구름이 피어올랐을 것입니다.

장군은 세종대왕과 더불어 우리 배달겨레의 영원한 <태양>이십니다.

 

 

<뒷얘기>

장군께서 살아계셔서 그렇게만 했더라면 지금은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 공화국도 아닌 <대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앞선 과학문명국이 되어 미국 러시아와 더불어 당당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앞장서서 세계평화를 이끌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국민들이여!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머지않아 제2의 이순신이 나타날 것입니다.

IP : 119.149.xxx.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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