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상 최고의 외교적 승리를 거둔 인물로 흔히 고려 성종 대의 서희를 꼽습니다. 고려 땅을 침입한 거란군 본진에 찾아가서 적장을 ‘설득’하여 스스로 물러가게 했을 뿐 아니라, 영토까지 얻었죠. 거란 장수 소손녕은 바보라서 서희의 ‘설득’에 넘어갔던 걸까요? 사료에는 둘의 '대화 내용'만 전하지만, 둘 사이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게 오갔을 겁니다.
‘설득(說得)’. ‘말로 상대의 마음을 얻다’라는 뜻입니다. ‘말로 이득을 보다’로 해석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겁니다. 설득은 논리로만 가능하지 않습니다.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게 ‘설득’이라면, 글로 써서 보내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설득에는 논리뿐 아니라, 인간이 말과 표정, 몸짓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동원됩니다. ‘설득’에서는 교감과 공감이 먼저이고, 논리는 나중입니다. ‘말하는 동물’인 인간은, 끊임없이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서로 설득하기 위한 대화 과정에서 표정 짓기와 손 동작법 등도 학습합니다.
대북 특사가 평양에서 회담 중이라는 기사에 “조공 바치러 갔다”는 둥 “나랏돈을 얼마나 퍼주려고 갔느냐”는 둥의 댓글이 ‘최다추천’입니다. 저런 자들은 최상의 외교 수단이 ‘설득’이라는 걸 모를뿐더러, ‘설득’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설득’과 대립하는 말이 ‘매수’입니다. 남을 설득할 진심도 지식도 없고, 설득당할 사리 분별력도 없는 자들은 ‘매수’밖에 모릅니다. ‘설득’하러 간 특사들을 ‘매수’하러 갔다고 모욕하는 자들이야말로, 돈에 영혼을 파는 게 습관이 된 자들입니다.
https://www.facebook.com/wooyong.chun/posts/2180026872069590?notif_id=1536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