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도서관에 앉자 주저리 주저리 요즘 드는 생각들을 적어봤어요.
다른 쉰둘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요.
쉰둘의 일상은 왜 이리 지루한건지.
난 가끔 혼자 있을 때 내 나이를 되뇌어 보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언제 이런 나이가 되었을까?
오래전 난 절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나이가 오늘이라니.
요즘 자꾸 두둑해지는 뱃살 탓에 꼭 끼어가는 청바지와
중학생 딸내미가 싫증이 나 던져 놓은 티셔츠를 꿰맞춰 입고 온 것이 의식이 된다.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내 자신에게 조용히 물어본다.
‘넌 혼자 있을 땐 너를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20대까지는 한 번도 이 나이를 떠올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막연히 나이 마흔이 넘으면 아주 의젓한 어른이 돼있어서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따위는 더 이상 고민안하고 살 줄 알았다.
최소한 난 뭘 좋아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 했던 것 같다.
이젠 그때 상상하던 마흔을 훌쩍 넘겨 무려 쉰둘이다.
그런데 청춘의 나에게 한 없이 민망하고 미안하게도 난 아직도 그때의 고민을 해결하지 못했다.
30대 40대에는 직장으로 육아로 한창 바쁠 때라서 그런 물음 따위는 이젠 껌이라도 되듯이 짝짝 씹어 간단히 뱉어 버리고
하루를 사는데 여념이 없었다.
마치 답을 다 알고 있는 듯이.
그때도 가끔은 이게 맞나하는 불안이 스칠 때도 있었지만 이내 그 불안을 직면할 필요 없는 분주한 일상이 내 두려움을 잊게 했다.
그런데 이제 쉰둘이 되니 그때의 물음이 다시 고개를 든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낳은 아이들 탓에 쉰 다 되도록 막내인 초등생 뒷바라지에 전전긍긍했었다.
아내 노릇 엄마노릇 잘 해보겠다고 수학이며 영어며 머리 싸매고 가르쳐도 보고, 한 동안 동네 아이들까지 모아 공부방도 하며 옆집 누구네 같은 슈퍼맘 노릇을 했다.
그러다가 작은 아이 6학년에 ‘엄마 나도 학원가고 싶어’하는 소리에 냉큼 보내고 나니 돈 생각은 잊을 만큼 학원이 고마울 지경으로 홀가분하다.
더불어 능력밖에 버겁기만 하던 공부방도 접어 버렸다.
그러나 해방감도 잠시 왠지 편할 수가 없다.
모처럼 여유있는 틈을 타서 그 예전 고민들이 다시 스멀 스멀 내안에서 올라온다.
아직도 난 여전이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모르는 애송이 같은 모습이다.
답답하게 시리.
이제 머리 싸매고 수학문제를 풀 일도 없고
아이들 어질러놓은 장난감을 치울 필요도 없다.
그러나 난 그 시간들을 금전으로 치환되지 않는 여백으로 두는 게 한 없이 맘이 불편했다.
‘살림과 육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난 잉여인간인가?
여전히 치열하게 일하는 남편 앞에서
벌써 한가해지고 벌써 은퇴하는 자세를 취해버린 내가 한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그런 내 마음이 옳고 그른지. 그래도 되는지 안되는지. 난 잘 모르겠다.
그냥 며칠전 남편에게 이런 마음이 든다고 말하고 시간을 달라고 했다. 6개월만.
내가 날 좀 돌보고 살피고 키울 시간을 달라고.
백세시대라 하지만 맑고 온전한 정신으로 여든까지 살 수 있다면 이제 남은 시간은 30년.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부끄러울 이유는 없다.
결혼 18년 가정을 가꾸고 아이를 키우며 내동댕이 쳤던 ‘나’를 거울 앞에 앉혀 놓고 찬찬히 뜯어본다.
먼저 퍼머가 다 풀려 부스스하고 윤기 없는 머리를 다듬어야겠다.
두둑한 뱃살도 한달 3만원하는 동네 헬쓰클럽에가서 고백하고
‘내일하지 뭐’하던 도서관 책읽기도 출석부르는 선생님 계신 듯 성실히 다녀보자.
벼르던 컴퓨터도 배워보고 독서 동아리 인도법도 배우고 한국사도 공부해보고 싶다.
아참 수영도 해볼까한다.
난 혼자 있으며 내 나이를 떠올린다.
쉰둘인데 이런 저런 상상을 할 땐 스물도 되었다가 서른도 되고 아니 어떨 땐 마흔 셋도 된다. 마흔 셋 된 아이 친구 엄마가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고 해서.
아주 가끔 가끔은 여든이 되기도 하는데 그땐 참 슬프다.
그래도 가장 떠올리고 마주 하기 힘든 나이는 쉰둘이다.
앞으로 6개월의 시간을 잘 보내면
아직도 소화가 안되서 목이 매이고 가슴이 퍽퍽한 것 같은
쉰둘 나이가 편안해질까.
나의 도전에 기대를 해본다.
다른 쉰둘은 어떤 마음으로 사는 건지.
더 어른으로 더 아이로 아님 더 청춘으로 사는 이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ps : 쉰 둘이나 먹어선 애들같은 감상에 젖어 팔자 편한 소리 한다고 매질하시면 아파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