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으로 (먹는)여행 간다고 문의하는 글 올리고 약속한 후기예요^^
지지난 토요일에 3박4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출발지는 서울이구요
첫 날은 군산으로 가서 짬뽕 한 그릇 먹고 전주로 갈 예정이었는데 시간관계상 군산은 생략하고 대신 완주에 있는 ‘아원고택’을 들렀습니다
작은 갤러리와 호텔을 운영하는 곳인데, 인근에 사시는 분들께 강추 합니다
산기슭 조용한 곳에 작은 갤러리를 짓고 그 위는 오래된 고택을 옮겨와 지었는데 주변 풍경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립니다
관람료 1만원을 내면 차 한 잔을 주는데 갤러리(그림은 몇 개 없는데 임팩트 있어요) 구경하고 위로 올라가니 별천지가 있더군요
그 날이 해가 아주 쨍쨍하고 엄청 뜨거운 날이었는데 한옥 대청마루에 앉으니 바람 불고 어찌나 시원한지요. 옆에 있던 청년이 천국이 따로 없다고 하던데 진짜 그랬습니다.
하늘이 쪼개질 듯 푸르고, 하얀 구름이 군데군데 떠다니는데 잘 관리된 한옥 마루에 앉아 있으니 일어나기가 싫었어요
위의 한옥은 호텔 투숙객이 아니면 4시까지만 개방한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여긴 장소의 특성상 사람이 많은 시간은 피하는 게 좋아요. 가실려면 평일 낮에 가서 고즈넉한 시간을 즐기시는 게 좋습니다.
어디 가서 한 시간 이상 머무르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가족들 재촉에 마지못해 일어나서 전주로 바로 갔어요. 숙소는 ‘왕의 지밀’이라는 한옥 호텔이었습니다. 널찍하니 괜찮았어요
전주에서 저녁을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전주인데 싶어서 전주친구는 먹지 말라고 말렸던 한정식을 먹었어요
1인당 5만원이었는데 맛은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5만원 주고 먹기엔 좀....
다음에 다시 가면 1인당 1~2만원쯤 하는 전주 가정식 백반을 먹겠어요
저녁 먹고 한옥마을 산책하고, 가맥으로 유명한 전일슈퍼 가서 황태포 포장해서 숙소에서 맥주랑 먹었어요. 갑오징어도 먹고 싶었는데 오래 기다려야 한 대서 포기..
둘째날은 중화산동 현대옥 본점에 가서 아침을 먹고(콩나물국밥 안 좋아하는 아들도 맛있게 먹었어요) 임실 옥정호쪽으로 갔습니다.
옥정호에 ‘애뜨락’이라는 카페가 있는데 전망이 와~~~~~ 옥정호가 발 아래 쫙 펼쳐져요. 가물어서 수위가 많이 낮긴 했지만 속이 다 시원하고 멋있었어요
그 다음 코스가 저와 남편이 꼽은 이 여행의 백미였는데요
저는 20년 전쯤에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이야기’를 읽고 시인의 고향인 진메마을에 대한 동경을 하게 되었답니다. 빨간머리 앤의 프린스에드워드섬과 더불어 마음 속에 아름다운 로망, 언젠가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어요
그런데 임실이란 곳이 일부러 가기 쉽지 않고, 제 동선과는 맞지 않아 계속 로망으로만 남아 있었어요.
이번 여행을 출발할 때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은 안했는데, 애뜨락에서 혹시나 검색해 보니 15분밖에 안 걸리더라구요.
가족들에게 진메마을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고 함께 가보자고 했어요.
가면서도 가는 게 맞나 계속 망설였는데, 왜냐하면 제 마음 속에 진메마을은 정말 아름다운 강가 마을인데 지금 어떤 모습인지 모르잖아요. 김용택 시인도 섬진강댐 만들어진 후에 마을 앞의 섬진강이 예전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 했는데 막상 가보고 오랫동안 아름답게 간직했던 로망이 와장창 깨질까봐 걱정 되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일부러 시간 내서 가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잘 포장된 시골길을 따라 진메마을에 들어서고는 정말 예쁜 느티나무 한 그루를 봤을 때 벌써 알았어요. 내가 생각했던 딱 그대로의 모습이었어요.
길가에서 한 4~50미터 들어가면 김용택 시인의 생가가 있어요. 강변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정말 멋진 곳이었는데 작고 소박한 한옥집이 어찌나 정갈하게 보존되어 있던지요. 누구나 들어와서 볼 수 있게 개방되어 있었고, 툇마루에는 전기주전자와 커피까지 있었어요. 마음이 너무 따뜻했다는..
한옥 옆에 자그마한 단층짜리 양옥이 있던데 아마 김용택 시인의 거처인 듯 싶어요
툇마루에 앉아 섬진강을 바라보니 왜 김용택 시인이 섬진강을 그리도 사랑하고, 그런 아름다운 시들을 썼는지 정말 이해가 확 가더군요
그리고 김용택 시인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아름다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 근방에서 계속 교편을 잡고, 고향마을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니요. 거기다 오래전 자신의 글을 읽은 어느 이름 모를 독자가 일부러 먼 길을 찾아와 생가에 앉아 감동에 흠뻑 젖다니 그 분은 정말 행복하실 거예요^^
강가에 내려가 잠시 발을 담궜는데 신선이 되면 그런 기분일까요?
짧았지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어요. 그냥 평범한 시골마을이라 일부러 가시면 실망하실텐데 제게는 오랫동안 마음에 두던 곳이라, 그리고 뜨거운 여름날 나른한 오후의 강가 시골마을 풍광이 정말 좋았답니다.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성질 급한 가족들 재촉에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마치 부모님 계시는 시골집을 떠나는 것처럼 발길 떼기가 쉽지 않았어요
남원을 거쳐 구례로 와서 섬진강변 경치 끝내주는 국수집에서 재첩국수도 먹고, 부산으로 갔어요
부산 해운대 숙소에 도착해서는 나가서 대충 보이는 곳에서 저녁 먹고 들어와 쉬었어요
셋째날에 추천해 주신 ‘밀양돼지순대국밥’에 갔다가 원래 있던 자리가 비어서 깜짝 놀랐는데, 바로 근처에 새로 건물을 올렸더군요
덕분에 깨끗한 장소에서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아들이 집 근처면 1주일에 두 번은 가겠다고 했어요 ㅋ
날씨가 너무나 화창하여 태종대 바다 보러 갔는데 뜨거워서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어요 ㅎㅎㅎ
괜히 영도 한 바퀴 돌고 개금시장에 있는 ‘개금밀면’에 가서 밀면 한 그릇씩 뚝딱! 역시 먼 길 후회없이 맛있었구요.
비프광장에서 이승기 씨앗호떡 사서 다시 해운대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부산분들은 영도쪽에서 부산항대교 진입하는 램프요.. 그 하늘 높이 360도 돌면서 진입하는 램프 괜찮으신가요?
멋도 모르고 네비가 시키는대로 갔다가 우리 네 식구 아주 식겁을 했네요. 대교 진입하는 몇 십초동안 다들 모골이 송연했다는.. 운전하는 남편이 마침 또 고소공포증까지 있는데다가 왜 시선이 차단되도록 벽을 안 치고 그대로 뚫어 놨을까요?
남편은 어떤 변태가 저리 설계했냐고 ㅎㅎㅎㅎ
서울 같으면 그런 램프는 시민들 항의가 빗발칠 것 같은데 부산분들은 괜찮으신가요?
사고가 없더라도 운전자나 탑승자들이 상당히 겁날 것 같은데 말이죠.
호텔에 돌아와서 혼비백산한 마음들을 낮잠으로 진정시키고 저녁 먹으러 나갔어요
여기서 가족들이 식성대로 나눠졌는데요.
남편과 딸은 추천해 주신 ‘버거인뉴욕’, 저와 아들은 ‘양가네 양곱창’으로 갔어요
양곱창은 재료는 쏘쏘한데 양념맛이 좋아서 잘 먹었어요.
(원래 이 날 저녁으로 예약했던 ‘마라도’는 취소했어요. 지난번 글에 어느 분이 비추라고 하셔서.. 저랑 아들은 10만원어치 본전 뽑을 수 있는데 다른 가족들은 안되거든요 ㅎㅎ)
다시 만나서 더베이101 가서 맥주 한 잔 했구요. 근데 저 마린시티 주민들에게 서운했어요.
왜 다들 불을 꺼서는 마린시티 야경이 아주 형편 없었어요. ㅎㅎㅎ
다들 더위 피해 떠나신 건지, 일찍 잠자리에 드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다음날은 새아침식당(이 곳도 건물 새로 올리고, 새아침맛집으로 이름 바꿨더라구요) 가서 아침 먹었는데 맛있었지만 이제 다시 안 갈 거예요.
고등어구이 2인분 30,000원(고등어 한 마리였어요. 그래서 1인분은 주문 못해요), 생선구이 2인분 28,000원 이렇게 58,000원 나왔는데 비싸도 너무 비싸죠.
몇 년 전에 갔다가 새아침식당 노래를 불렀던 아들도 가격 보더니 이제 오지 말자고....
그런데 이 날 미포에서 바라본 해운대 바다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오륙도가 선명하게 내다보이고, 광안대교, 마린시티 등과 어울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멋있더군요. 지난번 여행은 날이 흐려 부산 바다가 이렇게 멋있는지 잘 몰랐는데 역시 여행은 날씨가 80%입니다.
기장쪽으로 드라이브 하면서 로쏘에 들러 피자랑 커피 마시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로쏘에서는 제가 평생 본 바다 중에 제일 예쁜 바다 색깔을 보았어요.
여기선 날씨(하늘색깔, 바다색깔)가 90%였다는..
3박4일 여행 모두 좋았구요. 물론 남편이랑도 삐걱거리고, 아이들과도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어요.
옥에 티는 해운대 인근의 하수도냄새였어요
해운대 길을 걸을 때마다 하수도 뚜껑에서 냄새가 심했는데 동백섬 입구는 정말 참기가 어려울 정도였어요. 왜 그럴까요? 그렇게 최신식 건물이 즐비한 아름다운 곳에 하수도냄새가 진동을 하니 어이가 없던데 해운대구청이 잘 관리해서 악취를 해결하길 바랍니다.
부산은 다음에 좋은 계절에 일주일쯤 시간을 내어 여행하려구요. 센텀시티나 해운대, 영도, 기장, 시내 등등 갈 곳이 너무 많더군요. 참 멋진 도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