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가 여태까지 이책을 못읽어봤을까 궁금해하면서 출판일자를 보니까.
2013년 7월 30일날 출판된거였네요.
오년전 그해, 그 7월 30일을 기준으로 정확히 12일전에 저는 39세의 다소 늦은 나이로 아기를 낳았었어요.
이미 열살된 큰애가 있었는데도 9년이나 지난뒤의 출산은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초등생이 된 얌전한 외동딸아이를 키우는 그 호젓한 일과는, 우리집에 찾아온 둘째의 등장으로
뭔가 어수선하고, 실미도 부대원같은 고달픈 나날로 순식간에 바뀌었지요.
잠도 아껴가면서 이유식을 만들어야 하니, 그 상황에 책을 읽을 틈이 전혀 없었어요.
바로 길 건너편에 도서관이 있었는데도, 책한권 빌릴 여유조차 나지않고.
아기를 업고, 잠을 재우는 조용한 한낮, 창밖으로 자동차 경적소리가 울리면 왠지 바깥풍경이 보고싶어져서
얼른 베란다창문에 다가가 얼씬대던 기억도 살며시 떠오르네요.
초봄 어느날, 박범신이 도서관에 온다는 날짜가 도서관건물에 적혀있고, 그 프랭카드를 보면서 많이 아쉬웠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박범신소설가가 급한 발걸음으로 도서관정문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우연히
아기를 안은 채 창가에서 보고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류근시인은 이책을 쓸당시 무척 가난했나봐요.
연탄값에, 월세값을 늘 걱정하면서 살아요.
분명 산문집인데 글귀가 시인의 문장이라 역시 정갈하네요.
그리고, 가난이 처절하게 묻어있는데도 순백의 빨래처럼 빛나고있는 일상들.
중간중간 욕이 많이 써있는데 처음엔 저도 많이 놀랐어요.
시인들은 두 부류가 있는것 같아요.
어쩔수없이 가난과 함께 살아가는 시인들은
산문집속에서도 집을 방이라고 하더라구요.
나의 외로운 단칸방으로 간다는 식으로 쓰고 자신에게도 무척 겸손해요.
그런데 또 이런 시인도 있어요.
시인으로써 어느정도 사회적인 지위도 확보되어 있고
명예도 있고 안정적인 직업도 있는 분은
자신이 쓴 시들을 나열하면서 이건 어디 현판에 걸려있고
이건 어디 교과서에 실려있다고 구구절절 길게 자랑하고
어느 나라에 갔더니, 이름만 듣고서 그냥 여권발급을 해주었다고하고
나의 시를 암송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고.
어떤시인은 겨울에 보일러를 못때어서 밥통을 안고 잤다는 시인도 있는데
어떤 시인은 얼마전 교장선생님에서 은퇴하고 편안히 여생을 보내게되었다고
베란다에 있는 꽃들도 내가 산게 아니다, 어디서 얻었거나 주워온거라고 쓴 글들은
저절로 눈쌀이 찌푸려져요.
은근히 자기자신의 글솜씨에 대해 자화자찬하거나 박경리선생님이 허리춤을 붙들면서
다른데로 안가게 붙들어달라고 다른 문인들에게 말했다는 작가들,
류근시인의 겸손함을 좀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젠 류근시인 지금은 좀 괜찮게 사나요.
장가도 못간것 같은데,
오래전 자취방에 몰래 들어온 도둑고양이가 무서워 내쫒지도 못하고
도둑고양이 옆에 살그머니 쪼그리고 앉아만 있었다는 예전의 그 누군가도 생각나네요.
일방적으로 저를 좋아해주던 불쌍할정도로 말랐던 그 나이도 많던 노총각이 류근시이의 책을 읽고 있는데
불현듯 생각나고, 류근시인은 책에서는 옛날애인들도 자주 만난다고 적어놓긴했는데 (주로 밥을 옛애인들이 사준다고)
어떻게 하면 헤어지고도 다시 만나 이렇게 편안하게 밥도 먹고 유쾌한 농담도 하는 퍼펙트한 인간관계를 구성할수 있는걸까요.
한동안 역사저널에도 잘 나왔었는데 얼마전부터 나오지도 않고.
더 내놓은 책도 없는 듯하고, 밥은 굶지않고 잘 사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