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예멘 입국자들은 난민일까?
1.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당시 정부와 정책에 대한 내 개인의 판단과 지지는 거의 언론 (그 중에서도 한경오로 일컬어지는) 진보언론을 통해 얻은 내용이었다. 내 스스로가 완전한 진보라고 보기엔 애매한 스탠스이지만 8-90년대의 대학 시절을 겪었다면 살아온 환경상 대체로 큰 틀에서 진보진영을 응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당시 진보언론이었던 한경오와 민주노총, 전교조 등은 나에게 있어 절대선이자 우리편이었다.
그 우리편들이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격렬하게 공격하니 당시에는 그가 큰 잘못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도 그 (정책적 비판을 빙자한) 비난에 동참 했었다. 우스개 말 같은 ‘모든 것이 노무현 탓’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비난이 사회현상 모든 것에 적용되었다. 진정한 야만의 시대였다.
그리고 비극적인 그의 죽음 이후 나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각성했다. 그 중 하나가 ‘진영논리에 의한 맹목적인 믿음’ 이야말로 경계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후 나는 어떤 정보나 주장을 진영논리로 맹신하지 않고 사실을 확인한 후에 판단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2.
어제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달구는 이슈는 월드컵 관련한 내용이 가장 많았지만 두번째로 많은 것은 제주도로 입국한 예맨인들의 난민신청 관련한 기사와 그것을 막아 달라는 청와대 청원에 대한 의견이었다.
내 페친들도 나와 비슷한 스탠스의 진보성향이 많은지라 대체로 '인도적 측면의 난민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내용과 '무슬림 난민을 받지 말아 달라'는 국민 청원의 야만성에 대한 분노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상해 임시정부도 결국 난민이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보였다. 대체로 그런 주장은 진보성향의 정치가 혹은 활동가들의 글을 통해 시작되어 여기저기 공유되는 중이다.
나는 그들의 주장에는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그 주장의 근거가 되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3.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난민이란 전쟁이나 철권통치 혹은 정치나 종교적인 억압을 피해 안전한 제3국으로 도피하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또한 그 난민의 대상들은 대체로 어린이와 노인, 여성들 같은 사회적 약자를 상상할 것이다. 베트남 전쟁 직후의 보트피플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인들은 (561명 중에 549명이 난민신청을 했는데) 남성이 504명이고 여성은 불과 45명이다. 91%가 남성인데 20대 남성이 307명, 30대 남성이 142명, 40대 이상 남성은 41명, 18세 이하 미성년자 남성은 14명이다. (출처: 제주 출입국 관리국)
이 모습은 우리가 상상했던 난민과 거리가 먼데 사실 이런 경우라면 인구가 매우 부족해서 난민을 가장 잘 받는 국가로 알려진 캐나다에서도 허락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4.
게다가 그들은 말레이지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다. 제주도는 전 세계에서 11개국을 제외하고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곳이다. 난민이 무슨 돈이 있어 비행기를 타고 입국 했을까? 이 또한 우리 상상과는 다르다.
현재 유력한 추측은 예멘과 제주도에 취업 브로커가 개입 되었을 것이라는 정황이다. 제주도를 벗어나면 바로 불법 밀입국이 되는 것이고 실제 이러한 시도는 중국의 불법 밀입국 브로커들도 많이 사용하는 루트이기도 하다. 제주도로 들어와서 내륙으로 이동하는 동선 말이다.
5.
하지만 한국은 결코 난민에 관대한 국가가 아니다. 탈북자 문제로 국제법에 맞추어 법률을 만들고 공표했지만 실제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난민인권센터라는 곳에 들어가서 통계를 확인해보니) 2016년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1.54%에 불과하다. 이중 결혼과 행정소송 승소로 인정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순전히 법무부 단계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전체 심사를 받은 6,340명 중에 0.42%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 받기는 '매우 빡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인들은 대부분 추방될 확률이 매우 높다.
다만 난민 지위의 심사기간 동안 한국에서 임시로 일할 수는 있다. 여기에 난민 불가 판정에 불복해서 행정소송을 걸고 재심 신청하면 그게 진행되는 2~3년 동안은 체류 및 노동허가를 받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일을 한다면 '결국 이득’이라고 판단해서 (혹은 브로커의 꼬임에 넘어가서) 들어왔을 수도 있겠다. (이 부분은 법의 허점이긴 한데 법치주의 국가에서 그것까지는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여기까지 보면 그다지 큰 사건이 아닌 것 같다.
6.
그런데 '따져 보면 별 일 아닌 문제'를 언론이 적극적으로 다루고 키우면서 큰 문제로 부각이 되었다. 특히 일자리 문제에 민감한 현 사회분위기 속에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를 적극적으로 불러 일으키는 기사가 대량으로 송출 되었다. 여기에 유럽의 무슬림 난민들이 일으킨 사건과 사고 사례와 유럽내 무슬림 인구 증가율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기사까지 나오니 사람들은 두려워졌다. 물론 언론이 의도한 두려움이다.
무슬림은 여성들을 함부로 대하고, 한국인들도 부족한 일자리를 무슬림들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자극하는 기사가 나오니 청와대 청원이 등장한 것이다. 빠른 속도로 서명자가 늘어난 이유는 흔히 말하는 '개독이 이슬람을 혐오해서 올린 청원'이기 때문이 아니라 언론이 두려움을 자극해서 생긴 현상에 가깝다.
내 생각은 이번 혼란의 시작은 언론이 선정적으로 대중들의 정보에 대한 접근과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서 두려움을 부채질한 것이라고 본다. 왜 그런지도 추론할 수 있지만 그런 추측까지 함부로 쓰기는 싫다.
7.
이런 훌륭한 떡밥에는 당연히 진보를 표방하는 활동가(feat. 네티즌)들이 대거 참전하게 된다. 인도주의 측면에서 난민은 받아야 하고, 청와대에 이번 예멘 난민을 받지 말라는 청원을 한 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국민성(정확하게는 무지함과 야만성)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다. '상해임시정부도 난민이었다'는 한국민 입장에서는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주장까지 해 가면서 말이다. 이로싸 온라인은 더 뜨거워졌다.
이 대목에 대한 내 개인적 의견을 말하자면 앞뒤 맥락없이 ‘정의로운 말’만 하기란 매우 쉽다. 책임을 지지 않는 정의로운 말이란 얼마나 편한 말인가? 참여정부때 내 비판이 그러했다. 다시금 반성한다.
본문과 다른 내용이지만 왜 민주노총은 지난 지방선거 내내 민주당만 쫓아 다니면서 (민주당의 선거를 방해해 가면서) 본인들의 주장을 이야기 했는지, 선거가 끝난 지금은 왜 김경수 앞에 가서 남의 출정식까지 방해해 가며 그들의 주장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폐기된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 관련해서는 90% 정의당과 비슷하다고 하면서 막상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고 퇴장하던 노회찬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등등... 새삼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참, 어렵구나, 어려워…
8.
다시 말하지만 이번 예멘 입국자들에 대한 난민 결정은 법무부가 하는 것인데 모두 추방당할 가능성이 높고, 정황상 그들은 난민이라기 보다는 취업 브로커와 결탁된 불법 밀입국자에 가까운데 그것을 제노포비아로 부추긴 것은 언론이며 거기에 공포심을 느껴 청와대 청원에 동참한 것은 일반 국민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이지 외국인을 혐오하고 인도주의와 거리가 먼 한국인이라는 일부 진보 활동가들의 주장도 틀린 것이다.
사실은 내 자신에게 한번 더 하는 이야기지만
"먼저 사실 확인을 하고 난 후에 가치 판단을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