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선생님이셨어요. 어렸을 때는 봉순이언니같이 일하는 언니가 있었지요. 시집가고 나서는 도우미 아줌마가 가끔 계셨지만 도난사고가 연이어 나서, 엄마가 혼자 집안일도 다하셨어요. 그때는 토요일도 일하셨고 저희들 도시락도 싸야 하셨기 때문에 항상 바쁘게 일하셨던 기억이 나요. 어린 마음에도 크면 엄마 호강시켜 드려야겠다 다짐하곤 했어요.
이제 저희들이 다 결혼하고 나서 얼마 후에 엄마는 퇴직을 하셨고, 지금은 자원봉사활동을 활발히 하시고 친구들도 만나시고 여전히 바쁘시네요. 저는 아이들을 키울 때도 엄마도움을 받지 않았어요. 다행히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고, 베이비시터를 구했지요. 한순간도 엄마가 우리 애를 봐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엄마가 이제야 편안해지셨는데 또 엄마한테 손 벌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동생도 같은 의견이어서 우리는 둘 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 아이가 아픈 경우- 엄마한테 아이를 맡긴 적이 없어요. 그리고 엄마도 아이 봐주시겠다고 하신 적 없구요. 저는 고소득직장이었지만, 오히려 엄마는 직장 그만두고 아이를 보라고 하시는 편이었어요.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크셨으니까요.
그런데 딸이 직장다니면서 친정엄마한테 자연스럽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를 보게 되네요. 어쩔 수 없어서 그러겠지만, 옆집 아줌마는 아예 딸 옆으로 이사오시고, 새벽에 딸네 집에 가서 밥을 차려주고, 아이들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안일 해주시고, 그리고 운동가신다고 해요. 그리고 나서 3시쯤 아이들을 데리러 가서 수영장에 데려다 주고, 집에 와서 씻기고 저녁밥 해 놓으면, 딸과 사위가 와서 저녁먹고 아이들을 데려간대요. 매일같이 저녁 반찬거리를 걱정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이제는 둘째딸도 이 근처로 이사와서 아이 맡길 예정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아줌마는 행복하신 것 같았어요. 아직 건강해서 딸들과 손주들들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신지도 모르겠어요.
저희 시댁도 그래요. 남편에게는 여동생이 둘 있는데 어머니와 하루에도 전화통화 3~4통은 기본이예요. 수시로 전화하고 사소한 일까지 어머니와 공유해요. 어머니는 일주일에도 여러날씩 딸들 집에 가 계시고 이런저런 반찬이며 살림을 하셔요. 딸네 집에 뭐가 부족하고 뭐는 버릴 때가 되었고...훤하시죠. 딸들은 전업주부인데 친구모임이라고 알바한다고 아이들을 매일같이 어머니께 맡기고, 어머니는 힘들어 하시면서도 싫다고는 못 하세요. 지금 한명은 주재원으로 다른 나라에 있는데 두세달에 한번씩은 어머니께서 이민가방으로 짐을 보내십니다. 아이들 옷이며 책이며 온갖 식료품.... 김치는 항공편으로 보내시구요. 시누이들은 어머니를 끔찍하게 생각하면서도 툭하면 어머니께 이것저것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어머니는 아이고 내가 너무 힘들다 하시면서도 다 들어주시구요. 물론 이것은 딸들 한정입니다.
사실 저는 엄마에게 살가운 딸이 아닙니다.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날정도로 애틋하긴 한데 전화도 일주일에 한두번...찾아가는 것도 두어달에 한번 정도...그런 면에서 시누이들처럼 다정한 딸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 엄마, 옆집 아줌마와 딸들, 시누이와 어머니. ..모두 사랑하는 친정엄마인데도 살아가는 방식이 많이 다르네요. 시댁식구들이 보기에는 제 친정식구들은 좀 잔정이 없어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리광부리고 조르고 하는 일이 없거든요. 시누이들은 누구에게나 성격이 살가운 편입니다. 저도 딸이 있어서 걱정입니다. 어떤 친정엄마가 되어 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