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음이 괜히 심난한 것이 집중이 잘 안되길래
좋은 소설책에 푹 빠져보고 싶어서 몇 권 읽었어요.
여기 게시판에서 추천받고 읽은 책도 있고요.
좋은 책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다시 앞장을 들춰보게 되는 책이라지요?
세 권 읽었던 얘기를 할 건데, 세 권 모두 1. 남은 책장이 자꾸 줄어드는게 아까웠고 2. 마지막 장 덮자마자 다시 앞으로 돌아간 책입니다.
1. 찬호께이 - 13.67
홍콩누와르영화의 축축하고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읽었어요.
제목은 2013년에서 1967년을 의미하는데, 시간의 역순으로 진행됩니다.
홍콩 반환기에 걸쳐진 시기의 홍콩 경찰 두 사람의 이야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둘이 콤비라기보다는 각 에피소드에서 각각 비중이 달라요. 주인공은 한 사람이라고 보시면 될 듯)
홍콩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작품에 설명된 내용만 가지고 충분히 따라갈 수 있고요.
허를 찌르는 반전이나 충격적인 추리 결과가 있다기보다는,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독특하고
우울하고 답답하면서 살짝 슬프기도 하고요.
어떤 서평에서 '한 인간의 일생을 관통하는 거대한 아이러니'라고 되어 있는데 다 읽고 나면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첫 번째와 마지막 에피소드가 서로 맞물리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셜록 홈즈 식의 친절한 수사물도 아니고..헉 하는 반전소설도 아니지만
읽어볼만한 추리소설이었습니다.
2. 마음-나쓰메 소세키
일본문학에 문외한인 같이 사는 남자가 '소새끼? 캬캬캬'라고 읽는 내내 방해했던 책입니다.
읽는 내내 왜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역시 반전이랄 것은 없지만, 마지막에 밝혀진 '선생님'의 과거사를 읽고 나면
소설 앞부분에 그에 관하 묘사된 부분들을 다시 들춰보고 싶은 책입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100년전에 쓰여졌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문체나 분위기가 꽤 현대적이거든요.
3.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엄청나게 유명한 책이었는데 저는 마흔을 앞두고서야 읽어보네요. 나름 한 문학하는 여자였는데.. ^^;;
헝가리 소설이고요. 제2차세계대전,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지대가 배경입니다.
전쟁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잘 몰라도 이해가 되고..
지금까지 읽어본 소설 중에 가장 강력한 소설이었다는 누군가의 평이 와닿습니다.
작가가 여성인데 정말 '강렬하다'라는 느낌이 들어요.
원래 5년에 걸쳐 발표된 세 편의 소설인데 한 권으로 합본해서 출판되었더라고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은 한국에서 번역하면서 붙인 제목인지 원래 원작자가 붙인 제목인지 몰라도
각 세 편의 번역된 제목(비밀노트-타인의 증거-50년간의 고독)과 함께 참 잘 붙인 표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 읽다보면 살짝 멍해져요. 너무 끔찍한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쭉 나열되니까
원래 이렇게 덤덤한게 정상인가? 이 나라에선 그런가? 하는 착각이..
나도 덩달아 감정도 판단도 없는 무생물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다 주인공이 희노애락을 느끼면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다 읽고나면 뭔지 모를 철학적인 물음과 답들이 머릿속에 가득찬 느낌이 됩니다.
(서로 연결지어 말과 글로 설명을 못한다는게 함정;;;)
인간 본성이 지니고 있는 도덕이란? 규범이란? 사람사이의 교감이란?
무엇보다 전쟁이 완전히 파괴시킨 인간들의 삶이라는 게.. 그 어떤 잔인하고 사실적인 묘사보다도 깊게 와닿아요.
역시..마무리가 안됩니다.
세 권 모두 여기 게시판에서 보고 읽었어요.
추천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