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같이 봄맞이 청소하는데...
냉장고 털고, 집안 쓰레기도 싹 모았더니 일반쓰레기 10l하나 꽉 차고 음쓰 3l 2개 나왔는데
남편이 화장실 두 개를 넘나 열심히 청소 중이라 오늘은 내가 갖다 버려야겠다 생각했어요.
근데 잠깐 딴짓하는 사이에 남편이 또 갖다 버렸네요..
이전에 전세 살던 아파트에서는 복도 중앙에 음식물쓰레기, 일반쓰레기 바로 버릴 수 있어고
지금 사는 아파트는 키 들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서 공동으로 버려요.
결혼하고(4년차) 한번도 쓰레기를 갖다버린 적이 없어요. 남편이 늘 했어요...
그러기가 참 어려울 같은데 새삼 남편이 고맙고 반대로 생각하면 저도 반성하게 되네요.
(그런데 또 저 나름대로 저만의 집안일이 있으니까요 ^^;;)
저희 아버지는 좋은 분이시지만 정말 집안일에서만큼은 손하나 까딱을 안 하셔서(마실 물조차도 네버)
엄마가 늘 고생하시는 모습 보면서 많이 속상했어요.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당신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셨죠.
이사같은 큰일부터 장보고, 전구 나간 것까지 다 엄마가 하셨더랬네요.
(우리집은 정말 일방적인 엄마의 희생으로 버텨온 거예요.. 사무치게 슬프네요)
결혼하고 남편 가정을 보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시아버지께서 식사 차리는 거 도우시고, 제 침구도 손수 바꿔주시고, 과일도 깎아주시고,
만두 속 다 만드시고, 송편도 예쁘게 빚으시고, 장도 혼자 봐오세요 ㅎㅎㅎ
집안일이라는 것이 정말 신체적인 힘이 많이 필요한 일이고, 남자, 여자 남편, 아내 따질 것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는 걸 공감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당연한 것임에도) 문화충격이었어요.
(대신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시집살이를 호되게 하셨다고 들었어요ㅠㅠ
저한테는 전화 한통 바라지 않을 정도로 편하게 해주셔요..어머니 존경해요...또르르...)
결혼하고 남편이 제가 말하면 말떨어지기가 무섭게 뭐든 척척해주고
"커튼 달아야 하는데" -> 줄자를 가져와서 창문 사이즈를 척척 잰다, 커튼을 주문한다, 단다
"싱크대 수전에서 자꾸 물이 튀어" -> 새 수전을 사온다, 바꾼다
심지어 말로 안 하고 생각만하고 있어도 '액자를 걸고 싶은데...' -> 레일 액자걸이 주문 설치
그리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존중해주는
몸에 안 좋은 것들 너무 싫어 -> 남편이 직접 에탄올, 소주, 레몬껍질 섞어서 소독제품 만들어 사용함
섬유유연제 대신 식초를 사용하는데 말리고 나서 식초 냄새가 미약하게 날 때
"수건에서 식초 냄새 살짝 나는 것 같아.. 미안해;ㅁ;" 하면 "그래도 이 냄새가 인공향보다 좋아~~나쁘지 않아~~"하네요.
남편을 보면서 정말 같이 사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 동생도 결혼해서 저랑 비슷한 말을 해요.
제부가 진짜 요리하는 걸 너무 좋아하고 세상에 둘도 없는 깔끔쟁이거든요.
가장 친한 친구 남편도 아이를 어찌나 잘 돌보는지
자주 가는 쇼핑몰에서 아이 유모차에 태우고 둘이만 놀러 나온 모습 종종 마주치고,
친구는 이번 주에 남편한테 아이 맡기고 해외여행 가 있네요...
인터넷에는 주로 힘들고 위로 받고 싶을 때 글을 쓰고,
평범하고 소소한 일들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써봤자 뻘쭘해지잖아요.
살림꽝인 두 사람이 그래도 열~~~~심히 움직였더니 깨끗해진 집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평화롭게 지나가는 일요일 오후에 기분이 좋아져서...
남성성 여성성이 마구마구 혼합되어 별일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문득 하고 싶어졌어요.
아, 저는 대학생 때부터 82를 했구요 (가입은 좀 늦게 해서 2008년도네요..)
82 통해서 배운 것이 정말 많아요.
우리 엄마, 우리 시어머니 82의 많은 어머니들...
고생 많이 하셨지만 그 부조리함을 물려주지 않으시려고 애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들, 딸 각자에게 좋은 남편과 아내가 되는 좋은 사람으로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