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올림픽이었던 서울올림픽 때 나는 무려 직관도 했으며 배구선수 장윤창의 팬이었고 3살 주제에 굴렁쇠 소년 태웅앓이도 했다고 한다. 황영조와 김기훈의 금메달부터는 기억이 난다. 올림픽 매니아로서 아쉬움을 주체할 수 없어 글로 달래본다. 정작 시작은 냉담했다.
*2011년 7월 6일은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발표하는 날이었고 나는 수습을 뗀지 100일쯤이었던 사회부 기자였다. 총회는 남아공 더반에서 열렸다. 즉 마감시간이 끝나고 발표된다. 캡은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될 경우와 선정되지 않았을 경우로 나눠서 미리 시민들의 반응 기사를 써 놓으라 했다. 그렇게 기사를 만들어 일단 마감을 하고 최종 결과 나오면 빠르게 손보는 것이다. 캡은 말했다. “나는 2002년 월드컵 때 이길 경우/질 경우/비길 경우 나눠서 기사를 써봤어. ㅠ.ㅠ”
강원도 출신인 대학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나는 올림픽 개최에 시큰둥했다. 올림픽의 경제적 효과는 과장돼 있다고 생각했고, 국제대회를 통해 민족주의적 정서를 과열하는 것이 싫었으며, SOC 투자 등 소위 토건사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기 때문에 더욱 토건은 서울에서 진보적 관점으로 글을 쏟아내는 그룹에서는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이고 부패한 투자로 간주돼 있었다.
많은 이슈에서 나와 생각이 비슷했던 이 친구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강도로 올림픽 유치에 찬성했다. “나는 강원도 출신으로서 올림픽이 꼭 됐으면 좋겠어. 강원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 너무 열악해.”
평창올림픽 유치 소식에 시민들이 환호한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쓰고 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의문을 품었다.
내 관점은 인프라와 문화 여건에 부족함 없는 수도권 시민의 편향된 시각 아닐까. 올림픽 경제효과 만큼 편향된 시선 아닐까. 가라왕산의 문제를 떠올리면 더 혼란에 빠진다.
*경북 의성군은 2016년부터 언론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 인구는 약 5만 명. 65세 이상 인구 100명 당 20~39세 가임기 여성 17명이라는 신박한 지표로 ‘지방소멸’ 1순위 지역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그 드물다는 의성 출신 20대 여성들이 주축이 된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을 보면서 감동한 동시에 씁쓸한 상상을 했다.
의성에 컬링센터가 지어졌을 때 내가 알았더라면 예산낭비라고 생각했을까 안 했을까. ‘지방소멸’은 일본에서 2015년 책이 출간되고 2016년 한국에 번역됐다. 2017년에는 지방소멸에 소개됐던 ‘압축도시’란 개념이 보다 부상했다. 모든 지자체를 다 지키려다가는 다 망하는 수가 있으니 선택과 집중을 해서 지역마다 핵심 거점도시를 살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될놈될과는 좀 다르다. 이 관점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으나 바로 의성컬링센터 같은 것이 복병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가성비’의 관점에서만 보면 올림픽 은메달 배출하자고 수백억 들여 센터를 짓고 유지하는 것은 비합리적 지출일 수 있다. 그러나 비합리적 지출 때문에 발견할 수 있었다.
팀 킴은 여러모로 지금까지 우리가 살았던 방식을 뒤집는다. 우리 스포츠계에 엘리트란 국가가 조기 발굴해 집중적으로 관리시키는 태릉선수촌 모델이거나, 부모의 헌신적 희생과 열정으로 재능 있는 아이를 글로벌 스타로 만드는 박세리/김연아 모델 두 가지가 있었다. ‘팀 킴’은 다른 모델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줬다. 서울에서 또 다른 사교육 아니냐고 비난받는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생각지도 못하는 데까지 확장시켰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놀 게 없어서 컬링을 선택한 건담 좋아하는 누나야와 영미는 본인들이 새로운 모델의 엘리트가 됐다기보다 엘리트와 비엘리트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지방정부와 학교가 그 중심에 있었다. 한 번쯤 만들어보고 싶었던 모델의 가능성이 이미 여기 있다. 가장 낙후됐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고다이라의 경우와 더불어 사람과 시스템의 관계에서 감동을 먹은 건 오랜만이다.
팀 킴을 보면서 어쩌면 나에게 뉴요커보다 먼 존재일 수 있는, 의성에 사는 사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하는 원문에서 보세요. 나머지 글도 너무 좋아요)
https://www.facebook.com/eunha.park.9406/posts/1488154824630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