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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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보샤의.추억
먹었던 새우와 식빵 튀김이 알고보니 멘보샤였더라구요.
지난 30여년간은 무슨 이유에선지 명절때도 자취를 감춘 음식이라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요즘 이연복 쉐프가 런칭한
음식점이나 몇몇 중식당 메뉴 중에 멘보샤라는
생소한 메뉴가 보여서 이게 뭔가 찾아봤더니
제가 어렸을때 먹었던 바로 그 음식이길래 신기했어요.
개성 집안이라더니 무슨 곡절이 있길래
우리 집안은 명절 모임에 그런 중국 메뉴를 했을까.
조상의 정체가 알고 잡다.
대체 집안 어른 중 누가 그런 음식을 하셨을까.
이번 설에 큰고모님댁에 세배 드리러 갔다가 의문이 풀렸어요.
제가 혹시 멘보샤 드셨던 기억 나시냐고 말 꺼내니
"맞다~ 우리 한동안 그거 참 많이 해먹었는데" 라며 반가워하시길래
대체 숙모님 중 어느분이 그런 요리를 하셨냐고 여쭤봤더니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저희 엄마셨다고 ㅠㅠ
1남 7녀 집안 막내로 응석받이로만 커서 밥 지을 줄도 모르고
시집온 저희 엄마가 절대 살림과 음식 서툰거 티 내기 싫으셔서
명절마다 그렇게 생뚱맞은 요리를 많이 하셨데요 ㅎㅎ
요새 기준으로 보면 차라리 독약을 마시는게 낫다 싶겠지만
호일에 한입 크기로 싸서 쪄냈던 떡갈비며 멘보샤며
다 엄마의 괴작이었다네요 ㅋㅋ
특히 멘보샤는 그 당시 여고 가사시간에 실습으로
많이들 만들던 요리였기에 친척 모두 엄마 요리 솜씨 밑천이
딱 여고 가사 수준인거 알았지만 하도 안 들키려고 노력하는
우리 엄마의 노력이 가상해서 다들 그냥 묵묵히 먹어주셨는데
어느 해엔가 도저히 명절에 기름 줄줄 흐르는 멘보샤는
이제 그만 먹고 싶다며 반기를 드신 막내 작은아버지의 반항 덕분에
그 이후로 자취를 감췄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더라구요 ㅋㅋ
오늘 엄마 모시고 병원 가는 날이라 오후에 엄마집에 가서
혹시 멘보샤 기억하시냐고 물어보니
이 년 전 치매 판정 받은 엄마는 당연히 기억을 못하시더군요.
엄마가 새댁일때 그렇게 자주 해줬었데.
식빵 사이에 새우 다져놓고 튀긴거 기억 안나?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겠다는 엄마를 보니 그만 너무 마음이 아파버렸어요.
엄마. 내가 오늘 멘보샤 해줄게.
이름은 잊었어도 드셔보시면 기억날지도 모르쟎아.
큰소리 치고 바로 마트에 가서 재료 사와
식빵 한봉지를 다 튀겨드렸어요 ㅎㅎ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드셔보신다며
(요즘 순두부찌개 포함 모든 음식 드실때마다 하시는 말씀 ㅜㅜ)
저녁 밥상 미처 다 차리기도 전에 예닐곱개나 맛있게 드시는 엄마 모습 보며
그래.....이제 엄마는 기억 못해도 괜찮아.....
나 키우느라 얼마나 많은 음식을 하셨을까.
이젠 내가 해주면 되지.
혼자 생각하는데 왜 이리 마음이 저미듯 아픈지 ㅜㅜ
근데 저도 첨 해보는거라 양조절에 실패해서
산더미 같이 튀겨진 멘보샤를 꾸역꾸역 먹었어도
너무 많이 남아 집에 싸들고 왔는데 어찌 처리할지 난감해요.
튀긴거라 냉동 시킬수도 없고
사이다 내지는 맥주를 격하게 부르는 기름진 맛 때문에
앞으로 몇 달간은 먹고 싶지도 않을 것 같은데 저걸 다 어쩌져?
이래서 다들 에어프라이어에 열광한건가 싶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하나 사야하나 싶기도 한데 이거 하나 데워먹자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거 참......ㅠㅠ
1. 으앗 멘보샤
'18.2.20 11:16 PM (211.177.xxx.4)완전 기름먹은 스폰지죠..기름과 빵과 새우가 만나니 막 튀겼을 땐 더없이 환상적인 맛이지만 그것도 먹고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내가 먹은 기름양을 알아챈 위장이 뒤늦게 항의를 해오죠 늬글늬글늬글늬글
남은 멘보샤는..오븐에 구우면 어떨까요?2. 아아앙
'18.2.20 11:17 PM (212.88.xxx.245)밥 잘 먹고 아이처럼 울뻔했네요.
어머님도 칼로리대마왕님도 너무 아름다우세요.3. 멘보샤
'18.2.20 11:20 PM (134.147.xxx.157)재밌게 읽었어요. 어머니가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멘보샤의 추억.. 멘보샤에 담겨있는 잔잔하고 찡한 인생을 보는것같아요
저는 한번도 먹어본적이 없어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꼭 먹어봐야겠어요4. 착한님아
'18.2.20 11:20 PM (123.254.xxx.248)올한해 복많이 받으시고 어머님과 행복한시간들 가족들과 즐거운시간보내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5. 막내 작은아버지 화이팅!
'18.2.20 11:28 PM (219.115.xxx.51)총대 매고 형수님 요리에 반항함으로써 다른 가족분들을 기름 세례로부터 구해주신 막내 작은아버지 화이팅!
친척분들도 좋으신 분들 같습니다.6. 코바늘
'18.2.20 11:34 PM (219.254.xxx.109)저 정확히 8살때..그때 주공아파트로 이사를 갔거든요.우리집 첫 장만..ㅋㅋ 새 아파트로 이사가니깐 너무 좋았거든요.근데 엄마가 그 시기에 요리학원을 다녔어요.거기서 한식 중식 다 배웠을거잖아요.집에오면 배운거 요리를 복습을 하셨는데..우리집이 튀김요리자체를 안먹었어요.저는 고추튀김도 대학들어가서 남친이 먹어보라고 권하는바람에 처음 먹어봤던 사람이거든요.아무튼 그때 엄마가 기름에 튀긴 뭔가를 주는데.처음으로 그걸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더라구요.우리가 또 달라고 하고 난리나니깐 엄마가 계속 그걸 만들어줬어요.근데 그게 한두번 먹을땐 무슨 이런맛이 다있냐 하면서 먹었는데 자주 먹으니깐 느끼함의 극치를 느끼게 되더라구요.완전 기름먹는 도둑이잖아요.그뒤로 정떨어져서 절대 안먹는 음식이 멘보샤..저한테는 이상한 추억의 음식이네요..성인이 되서도 잘 안먹게 되더라구요.
7. ㆍ
'18.2.20 11:43 PM (175.116.xxx.126)원글님도 어머님도 친척분들도 모두 좋으신분들같습니다
마음 한켠이 찡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멘보샤라는 음식 티브이에서나 봤는데 한번 먹고싶어지네요
저에게는 멘보샤같은 추억의 음식이 뭘까 생각해보고싶은 밤이네요8. ㅜㅜ
'18.2.21 12:02 AM (125.180.xxx.240) - 삭제된댓글눈물이 찔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건강하시길.. 복 많이 받으세요!
9. 원글
'18.2.21 12:29 AM (116.34.xxx.84)저희 막내작은아버지를 당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ㅎㅎ
독거노인이라 오븐도 없다는게 문제네요 ㅜㅜ
이미 식어버려서 기름 줄줄 흐르는 빵쪼가리일 뿐인데 누구 나눠줄 수도 없고
죄다 버려야 할지 정말 난감해요 ㅜㅜ10. 글
'18.2.21 1:03 AM (115.41.xxx.111)글 넘 잘 쓰세요 한편의 수필처럼 읽어내려가다
마지막에 기승전에어프라이어인가요 ㅋㅋㅋㅋ11. 원글
'18.2.21 1:11 AM (116.34.xxx.84)하도 82의 최애템이다보니 항상 에어프라이어를 사야만 하는가 갈등에 시달리고 있었나봐요 ㅋㅋㅋㅋ
12. 아.... 가슴이.
'18.2.21 1:47 AM (211.178.xxx.192)찡하고 마음 아픈 이야기네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어머니가 착한 치매에서 머무시고 오래 건강하시길 빕니다.
저는 그 인기 많던 베니건스의 몬테 크리스토도 한두 입 먹고 못 먹겠단 생각 했었는데요 ㅎㅎ 샌드위치 튀긴 거잖아요, 그게.
아니 누가 식빵같이 스폰지스러운 걸 튀길 생각을 하나 했는데 (베니건스 창작이라고 생각) 아예 그런 비슷한 메뉴가 있기도 했군요.
에어프라이어보다 오븐이 나은데요,
오븐 없으면 그냥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맨 프라이팬을 살짝 달궈서 데우고자 하는 음식을 놓고 뚜껑 덮어 두세요. 타지 않게 살피면서 옆면 윗면 골고루 뒤집어 주면 오븐 효과 나고 기름 좀 빠지고 바삭해져요. 후라이드 치킨도 이렇게 데우면 괜찮아요.
핵심은 기름을 또 두르지 않는 거!
그리고 약한 불에 뚜껑 덮고 열을 골고루 가해 주는 거~
기름이 쫙~ 빠지지는 않지만 괜찮아요 이것도.ㅎ
원글님 행복하시길......13. 아
'18.2.21 6:16 AM (39.115.xxx.158)저도 박완서님의 글 느낌처럼 읽어졌네요.
기ㅡ승ㅡ전ㅡ에어프라이기에서 빵터짐..
고도의 광고 기법아닌가요?ㅋㅋㅋ 농담입니다.14. 새벽
'18.2.21 6:44 AM (1.226.xxx.162)이른아침 잘 읽고 갑니다
좋은분이신거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