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명절이 되면 2-3일 전에 통화를 해요. 이번에는 음식 뭐 해갈까요, 하고.
뭐 으레 해 가던 메뉴들 선정하고 나니 문득 시어머니가 이번엔 아구찜을 하려고 아구를 사다놨다 하시는 거예요.
어머니 아구찜도 할 줄 아시냐고, 저는 할 줄 모른다고 했더니 이번에도 역시나, 음식 잘하는 이모님(시어머니의 언니)에게 배워놨다는 거죠. 흠... 뭔가 오묘한 기분으로 시댁엘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이모에게 배워놨다더니 재료 밑준비만 해 놓고(사실 이것만도 감사하죠. 생물 아구 던져주고 아구찜 해라, 하는 것보다는 나은 거 아니겠어요?) 싱크대 저만치 떨어져서 시이모한테 배워놨다, 내가 배워놨다, 배워왔다... 만 반복.
-_- 배워왔으면 하시라구요.
시댁가기 전날 밤새워서 시댁 명절 음식 준비 하고 차에서 몇시간 잔게 전부인 피곤한 몸으로,
결국,
어머니 그러니까, 제가 할까요?
했더니, 아, 그럴래? -_-
제가요.... 음식하는 거 싫어하진 않는데요, 정말 하기 싫더라구요. 그런데 재료만 잔뜩 꺼내서 식탁위에 늘어놓고는, 내가 배워왔다, 배워왔다, 입으로만 반복하면서... 불 앞으로 오지도 않는 거 있죠.
결국 제가 폰으로 아구찜 레시피 찾아서 양념을 만드는데,
고춧가루 주세요, 했더니... 고춧가루를 꺼내 주시는데, 고춧가루에 제피가루(아시나요? 경상도에서는 많이먹는 향신료 중에 하난데요, 추어탕 같은데 넣는 향신료예요. 경상도에서는 김치 담을때도 제피가루를 넣기도 해요. 초피라고도 합니다. 약간 맵고 특유의 톡쏘는 향이 있어요)를 섞어놓은 걸 꺼내시는 거죠. 그래서 어머니 이거 제피가루가 들었어요, 했더니 아니래요, 들었어도 아주 조금 들었을 거래요, 그리고 그거 말고는 고춧가루가 없대요. -_-
그래서 일단 그 제피가루 잔뜩 든 고춧가루를 베이스로 양념장을 만드는데, 마늘을 넣었더니 갑자기 달려와서는
마늘을 그렇게 조금 넣어서는 안된다며(그럼 어머니가 음식 하시든가요!!!!!!!!!!!) 제가 넣은 마늘양의 세배에 달하는 양을 때려 넣으심.(미리 찧어두셨더군요.)-_- 저도 마늘 좋아하지만, 어머니... 레시피라는 게 있잖아요?
마늘에 제피가루 범벅이 된 양념장을 만들어 숙성시키느라 옆에 두고,
아구를 익히려는데, 아우 진짜.... 조갯살은 왜 그렇게 좋아하시는지, 또 바지락 살을 잔뜩 넣어서 하래요.
제가 미더덕(없으면 만득이라도...)을 찾았더니 미더덕은 없대요. -_-(경상도 아구찜엔 미더덕이 꼭 들어가요.)
바지락이랑 아구 익히고, 콩나물을 찾았더니 내 주는데,
아니 찜에 넣는 콩나물을 대가리를 하나도 안 따놓은거예요.
그래서 어머니, 콩나물 대가리를 안떼셨네요, 했더니 이번에도 그 이모님 말씀이 등판
이모가 말하길, 급하면 콩나물 대가리 안떼고 넣어도 된다, 하셨대요.
그래서 콱 질렀죠. 어머니 대체 뭐가 급하셨길래 콩나물 대가리를 못떼셨냐고.
그랬더니 막 민망하게 웃는데, 시어머닌 콩나물 대가리를 떼기가 싫었던 거예요. 대가리도 나름 영양가가 있을 건데 넣고 싶었던거죠. 아놔... 이건 아구 찜인데. ㅠ.ㅠ 찜인데...............
대가리 안 뗀 콩나물 넣고 한김 쐬어 익힌 다음 양념장을 넣는데... 제피가루가 워낙 향이 강한 향신료라,
이건 뭐... -_- 찜에서 제피향만 풀풀....
마지막으로 이제 전분물 넣으려고 전분을 찾으니
내가 준비해 놨다! 하면서 가져오는게... 믹서에 간 찹쌀. 그래요, 찹쌀가루 넣어도 되죠. 근데 색깔이 이상해요.
찹쌀 간 거라는데 황토색이야. 이게 뭐냐 물었더니 땅콩도 넣으면 맛있다고 또 이모가!!! 그래서 땅콩도 같이 넣어서 갈았대요. 그러면서 그 찹쌀땅콩가루에 물을 넣어서 개는데... 양이 너무 많은 거예요. 제가 한 2/3만 넣고 마지막으로 미나리 파 넣어서 뒤적거리려고 하는데 또 저만치서 달려 오더니, 남은 찹쌀땅콩가루물을-_- 남기면 아깝다며 한꺼번에 다 때려 부음. 아 놔.............
완성해놓고 보니... 아구찜인데 일단 색깔이 -_- 노오란색 콩나물 대가리들이 반짝반짝 고개를 들고,
강렬한 제피향에 희한한 땅콩향 가득한....
그래도 간이라도 보시라고, 국물 조금 떠서(볶음주걱으로 뜬거라 숟가락으로 뜨면 두숟가락도 안 될 양) 접시에 부어드렸더니, 간을 보시곤, 그래 간이 맞네, 하고는 그 접시에 남은 국물을! 도로!!!!! 찜솥에 부으심. 아 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전 막 면박도 주고 할 말은 다 하는 며느리라,
아니 어머니 그 국물을 거기다 다시 부으시면 어쩌냐고!!!!! 막 그랬더니,
또.... 아깝잖아... -_- 두숟가락도 안되는 그 국물이요?
집이 작은지라 음식하는 과정을 온 가족이 다 지켜본 참이라 다들 뭐라 말은 못하고...
제피향과 땅콩향으로 범벅이 된 그 찜을 콩나물 대가리와 함께 우적우적 씹었죠... 뭐 다들 먹다 말다...
우리 시어머니 말씀... 우리 애들은 찜도 싫어하나 보다. -_-
아놔....... 제가 그랬죠. 앞으로 명절에 개운하게 찜요리가 먹고 싶으시거들랑,
얘야, 이번엔 아구찜도!!! 해 오너라, 하면 제가 해가지고 올 게요, 했더니
우리 시어머님 말씀. 너 아구찜은 할 줄 모른다며? -_- 오늘 아구찜은 누가 했나요, 어머니?
재료 준비를 정말 희한하게 해 놓으시고는, 내가 다 준비해 놨다, 넌 준비할 거 없다, 하시더니,
에휴....... 너도 아구찜은 잘 못하는 구나. 이러기 있기 없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