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자키 토요코의 '하얀거탑'을 최초로 영상화한 영화 '하얀거탑'입니다.
연출을 담당한 이는 이치카와 라이조 주연의 '시노비'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야마모토 사츠오 감독인데 '하얀거탑' 이외에도 '화려한 일족'과 '불모지대' 등을
영화화하면서 야마자키 토요코 원작의 영상화에 대한 인연을 이어갑니다.
이 영화는 이후 만들어지게 되는 '하얀거탑' 드라마들과는 뚜렷한 차별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별점은 원작 소설에 얽힌 당시 사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원작자
야마자키 토요코는 '하얀거탑' 소설을 애초 권선징악 식의 마무리가 아닌 의료사고를
일으킨 자이젠의 의료 소송에서의 승리(그와 동시에 사토미의 의료계에서의 추방)로
매듭 지으려 했습니다. 결말을 접한 독자들의 거센 반발을 감내해야했던 야마자키
토요코는 1965년 본편 '하얀거탑'을 완성하고 2년이 지나(1967년) '속 하얀거탑'이라는
타이틀로 자이젠의 죽음까지 그려낸 현재의 '하얀거탑'을 집필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한다면 66년에 제작된 영화 '하얀거탑'이 2부격에 해당하는 '속 하얀거탑'의
내용을 담고 있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짐작이 가능합니다. '하얀거탑' 1부의 분량이 적지
않은데 충실하게 다루기엔 150여분이라는 상영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영화의
진행 속도가 빠른 감마저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하얀거탑' 다이제스트판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출세욕으로 내달리는 자이젠의 거침없는 모습은 여전하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만나는 '하얀거탑'이라는 점만으로도 흥미요소는 다분하다고 여겨집니다.
*이야기의 진행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이진 않지만 두세가지의
다른 점은 있습니다. 의료사고로 죽게 되는 환자의 사망시기가 다르고 (출장으로 인한
공백으로 죽는게 아닌 과장 선거와 함께 맞물려 발생), 의료 소송에서 증언을 하는
인물이 변경되었습니다.
*자이젠 고로 역을 연기한 배우는 바로 타미야 지로(본명은 시바타 고로). 최초 영상화된
영화에서 자이젠을 연기한 타미야 지로는 '하얀거탑'이 완간된 후 소설의 주인공 자이젠과
비슷한 연령이 되자 자이젠의 최후까지 그려낸 드라마 '하얀거탑'에 대한 열망을 내비칩니다.
몇번의 무산 끝에 방송사에 거듭 제안하여 성사시킨 드라마화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또 한번
자이젠 역을 맡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1978년 후지TV의 '하얀거탑'은 세상에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촬영 내내 우울증에 시달리던 타미야 지로가 급기야 최종회 방영을 2화 남겨
두고서 자살하게 되면서 여러면에서 화제작으로 남게 됩니다.
지난 2007년 한국에서 드라마화된 '하얀 거탑' 주인공을 맡은 김명민은 타미야 지로를 언급하며 "우울한 역할을 맡으면 정신병처럼 번지는데,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하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