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적어봅니다.-
순진?
왜 순진?
뭘 모르니까.
왜 뭘 모름?
사막에 혼자 떨어짐.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막에 홀로 던져진 존재와 다르지 않음.
뭐 도시에서 태어나면 다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낯선 것 투성이.
보행부터 자전거 타기, 버스 타기, 지하철 타기, 비행기 타기 다 배워야 함.
순진?
사막에 혼자 떨어진 순간 순진.
살기 위해 모래도 알고 하늘도 알고 별도 알고 그 모든 운행 원리를 알면 순진에서 탈피.
인간관계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함.
자본주의 메커니즘 알아야 내 돈 지킴.
나한테 달콤한 말하는 걸 바라보며 '나한테 달콤한 말 하는구나'라고 시큰둥하게 받아들여야 순진에서 탈피했다고 볼 수 있음.
물론 겉으로는 고맙다고 반응할 수는 있지만.
타인의 언행에 제어되지 않는 주체성이 본질.
세상은 아름다워?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건 태어날 때부터 겪잖아?
온갖 못볼 꼴 보며 성장하는 게 인간임.
인간의 역사란 결국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 아님.
가정은 완전함?
아빠랑 맞벌이 하는 엄마가 주로 가사 하는 게 아름다움?
비혼 부모가 양육자면 아동을 짓밟고 자빠진 게 아름다움?
세상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이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세상 떠남.
그럼 남은 사람은 뭐임?
안 떠나고 뭐하고 있음?
스스로 세상 떠난 사람한테 우월감 느끼며 그걸로 버텨봄?
순진하지 않게...굳이 '살아야' 하는 이유?
아무렇게나 살다가 가면 되지 않음?
찰나인 게 인생인데?
어차피 죽으니까 능동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거까지 있나?
그렇다면 언제든 인간은 길 위에서 죽는 거.
언제든 세상 뜬다고 생각하고 재미있게 살아본다?
모험이나 실컷 해봐?
멋진 삶을 왜 꿈 꾸지?
죽으면 가루될 거.
신의 자리가 필요해.
신 포지션 제끼면 소피스트되는 거.
정답 따위 없는 게 돼.
삶의 유의미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을 소환?
신을 소환해서 야무지게 살아보자?
여기서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 하나님을 말하는 건 아니구요.
인류의 역사를 볼 때 폭력이 줄었다.
더 아름다워졌다?
인간의 노력으로?
거기에 기여한 인간, 아름다운 인간이자 기억될 인간
3.1 운동을 기억하는 이유.
4.19를 기억하는 이유.
5.18을 기억하는 이유.
6월 항쟁을 기억하는 이유.
순진?
나치 치하에서 독가스실에 독가스 주입하는 버튼 성실하게 눌렀던 거 순진?
난 그저 성실한 노동자였을 뿐이다?
내가 집에서도 얼마나 내 자식을 예뻐한 사람인데?
내 이웃들은 나보고 인사 잘하고 애들하고 잘 놀아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2차 대전 후 이런 사람들한테 면죄부 줌?
인생은 실전이고 모든 건 자기 책임이야.
타인에 대한 의존성을 낮춰갈수록 순진성도 낮아지는 겁니다.
울면서 나한테 돈 빌려달라는 사람.
나 이 사람한테 돈 빌려줄까, 말까?
모든 사람이 울면서 그러면 돈 빌려 줄거야?
못받아도 사는 데 지장없을 만큼만 주든지.
사실 사회안전망 구축은 정부의 의무.
제대로 투표하자.
내가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투표는 엉뚱한 데 하고 적금 깨서 가난한 사람 돕는 거 순진?
그 가난한 사람 알고보니 알부자.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중에 외제차 끌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던데?
세상은 그렇게 속이고 속고.
연쇄살인범은 법이나 도덕도 넘어서니 안 순진?
순진한 나보다 연쇄살인범이 낫나?
법도 잘 지키고 도덕책에서 시키는 대로 사는 나는 연쇄살인범보다 하수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 게임은 성립.
삶의 고수가 되자.
칼 한 자루 가지고 유유히 살아가는 무림의 고수처럼 살아보자.
타인과 연대할 뿐, 타인에게 의존하진 않는다.
병들고 나이들면 어차피 요양원 가잖아.
100년짜리 드라마에서 의존의 순간은 짧을수록 좋지.
입구만 보고 출구는 못보는 사람은 순진하다.
늘 언제나 전모를 봐야지.
그래야 뒤가 안뚫리지.
도망을 쳐도 퇴로는 확보하고 달려야지.
열심히 달렸는데 퇴로 없어.
망했다.
순진은 그런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