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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부모되기의 어려움

제이니 조회수 : 2,469
작성일 : 2018-01-24 08:06:37

엊그제, 남편에 관해 우연히 스친 생각으로부터 시작해 두서없는 짧은 글을 쓰고, 예상치 못하게 많은 분들과 댓글 대화하며 살짝 벅찬 기분이 되었어요. 얼핏 저의 친자매와 대화하던 시간들이 연상되더군요. 일면식 없는 분들괴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오래된 일들을  털어놓고 위로받는 일이 이런 온라인 게시판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82가 참 대단한 (어쩌면 이젠 유일무이한) 공간이구나 싶어요. 

조금 더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 후기 아닌 후기를 쓰고 있어요ㅎㅎ  

저희 부모님의 불같은 성정과 엄하고 관용없는 훈육 방식 때문에 제가 성장 중에 고통받기는 했지만, 당연하게도 그 분들이 자식을 맘먹고 학대하는 악당같은 건 아니었어요. 결과가 어떻든, 나쁜 의도는 없으셨죠. 어제 어떤 분이 댓글로 비슷하게 말씀하셨는데, 부모의 성향과 가치관을 자식과 분리하지 못한 게 진짜 문제였죠... 오히려 너무 애착이 강했기 때문일거예요. (당신의 자아를 자식에게 투사했다고 할까요. 문제는 성찰과 객관화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제 부모님은 저를 더 까다롭게 지적하고 억압하고, 심지어 제 존재를 부정하거나 혐오하는 모습조차 보이셨을지 몰라요. 한편 당신의 삶이 너무 고단하고 무기력하다보니 그 스트레스를 푸는 측면도... 없진 않았겠죠. 어릴 땐 너무 힘들었고, 이제와선... 좀 서운하고 억울하긴 해요. 하지만, 뭐 괜찮아요. 부모도 인간이니까요. 엄마아빠도 어렸으니까요. 

그런데 더 어린 저는 당시에 그런 복잡한 결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부모가 나에게 던지는 혐오면 혐오, 지적이면 지적, 그대로 스트레이트하게 제게 박혔어요. 그리고 저는 스스로를 그런 사람으로 규정해버렸어요. 게으르고 산만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실수 잦고 기타 등등. 기준이 너무나 높았던 부모님께 이래도 저래도 지적받고 혼이 났으니까요. 코흘리개 어린애일 때부터 한참 나이를 먹어서까지도 (타고난 성향과 상관없이 제 부모로 인해) 달콤하고 안온한 감정, 칭찬과 인정이 낯설고 어색하다니.. 애정결핍으로 인한 관계중독 시녀병 걱정을 해야하다니.. 비극이죠. 게다가 난감한 건, 부모님이 저의 상처와 불행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의도하진 않았으나, 무심하긴 했어요. 의식주 지원해주시고 공부 시켜주셨으나 정말 중요한 것엔 무심하셨던 거예요. 사회적인 성공만을 성공이라고 여기셨구요. 학대하려는 생각이 없어도 충분히 학대 또는 학대에 버금가는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진짜 무서운 점이고, 모든 부모가 관심 가져야 할 점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는 미숙하여 실수가 많고 또 부모와는 다른 개체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해요. 나 사는 것도 고달파 죽겠는데 내 자식 인생을 성공시키고 좋은 어른으로 키울 훈육의 의무도 있어요. 그렇게 너무 할게 많고 여유가 없으니, 어떤 부모는 쉬운 것부터 포기를 하는 거 같아요. 그건 바로 아이의 기분과 마음이에요... 내가 아깐 심했다. 미안해.. 심하게 혼나고 나서 엄마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네는 장면을 상상하며 펑펑 울곤 했어요. 그 상상은 단 한번도 실현되지 않았지만요.

아이러니하게도, 내 자식에게 난 그러지 않을거야라고 백번 천번 다짐하던 저는 부모가 아니고 앞으로도 영영 아닐 예정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입바른 소리 펑펑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부모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일까요. 사랑을 주고 키운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저희 부모님이 들었던 사랑의 매는 온전히 "사랑"의 매였을까요.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라고 마무리되던 호된 꾸중 속 마음 아픈 말들은 폭력과 다른 걸까요... 부모의 선한 의도는 의심치 않는다 해도, 아이의 온 인생을 지배할 상처와 부정적인 자아는 어쩌나요... 참 어려워요. 
......

요전 글에 댓글 많이 주셔서 깜짝 놀라고 감사하기도 하고 뒤늦게 나중에 주신 댓글 읽으며 눈물 글썽이고 주책을ㅎㅎ 부리다가 사족글 하나 써버리네요ㅜㅜ 이런 감상적 넋두리를 쏟아낼 용기라니, 82분들 덕에 외롭지 않아요ㅎㅎ  


IP : 121.133.xxx.52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8.1.24 8:23 AM (221.139.xxx.166)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런 생각까지 하고 애를 낳지는 않는데, 어디선가 가르치면 좋겠어요.
    제 아이도 엄격한 저 때문에 힘들어 했고, 그래서 오히려 자기 아이 낳아 잘 키우고 싶나봐요.

  • 2.
    '18.1.24 8:31 AM (211.219.xxx.39) - 삭제된댓글

    고정닉 고마워요.
    이 넓은 82에서 다시 알아보게 되어 반갑네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제 부모님의 지독한 사랑이라는 숨어 있는 알맹이를 항상 새겼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린마음에 그렇게 가치를 정해 두어야 나 자신을 지킬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몰라요. 덕분에 그들도 어렸고 미숙했고 부모라는 역할은 처음이었다고 품는 마음으로 치유하는 중입니다.

    그러나 내적투쟁은 내가 부모의 역할극이 시작되고 부터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느 순간에는 내 엄마 아빠의 다른 모습이 더라는 겁니다. 그렇게 한 번씩 원래 그대 모습을 아이에게 들키고 나면 더 큰 상실감이 와요. 내 부모들은 끝까지 그들이 올랐고 일관성이 있었는데 내 아이는 나의 가끔씩 보이는 주머니속의 송곳 같은 모습들을 어떻게 기억 할까 두렵습니다.

  • 3.
    '18.1.24 8:34 AM (211.219.xxx.39)

    고정닉 고마워요.
    이 넓은 82에서 다시 알아보게 되어 반갑네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제 부모님의 지독한 사랑이라는 숨어 있는 알맹이를 항상 새겼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린마음에 그렇게 가치를 정해 두어야 나 자신을 지킬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몰라요. 덕분에 그들도 어렸고 미숙했고 부모라는 역할은 처음이었다고 품는 마음으로 치유하는 중입니다.

    그러나 내적투쟁은 내가 부모의 역할극이 시작되고 부터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느 순간에는 내 엄마 아빠의 다른 모습이 더라는 겁니다. 그렇게 한 번씩 원래의 내모습을 아이에게 들키고 나면 더 큰 상실감이 와요. 내 부모들은 끝까지 그들이 올랐고 일관성이 있었는데 내 아이는 나의 가끔씩 보이는 주머니속의 송곳 같은 모습들을 어떻게 기억 할까 두렵습니다.

    작성

  • 4. 원글님
    '18.1.24 9:02 AM (1.238.xxx.192) - 삭제된댓글

    지난번 글도 읽어봤어요.공감 되는 내용이 많더라구요. 저도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것은 아이는 부모의 넉넉한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 진리.
    저도 큰 아이에게 넘 많은 실수를 했어요.
    첫 아이라 서투르고 저의 상황도 여유가 없었던거죠.ㅠ 좀 참고 살아야 한다고 느꼈어요. 세상 모든 일에
    근데 지나고 보니 참고 기다려야 했던건 아이가 아니라 부모인 저 자신이었던거죠.
    저의 친정부모님은 너무나 부드러운 분이었는데ㅠ
    시댁에 적응하고 이해하려다 보니 저 스스로가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마음이 큰 아이에게 그대로 적응이 된 거죠. 여튼 지금은 저희 두부부 엄청 반성하며 저희 아이에게 넉넉한 부모가 되려고 애쓰고 있어요

  • 5. 공감
    '18.1.24 9:04 AM (1.238.xxx.192) - 삭제된댓글

    지난번 글도 읽어봤어요.공감 되는 내용이 많더라구요. 저도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것은 아이는 부모의 넉넉한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 진리.
    저도 큰 아이에게 넘 많은 실수를 했어요.
    첫 아이라 서투르고 저의 상황도 여유가 없었던거죠.ㅠ 좀 참고 살아야 한다고 느꼈어요. 세상 모든 일에
    근데 지나고 보니 참고 기다려야 했던건 아이가 아니라 부모인 저 자신이었던거죠.
    저희 친정부모님은 너무나 부드러운 분이었는데ㅠ
    시댁에 적응하고 이해하려다 보니 저 스스로가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마음이 큰 아이에게 그대로 적응이 된 거죠. 여튼 지금은 저희 두부부 엄청 반성하며 저희 아이에게 넉넉한 부모가 되려고 애쓰고 있어요

  • 6. 공감
    '18.1.24 9:07 AM (1.238.xxx.192)

    지난번 글도 읽어봤어요.공감 되는 내용이 많더라구요. 저도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것은 아이는 부모의 넉넉한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 진리.
    저도 큰 아이에게 넘 많은 실수를 했어요.
    첫 아이라 서투르고 저의 상황도 여유가 없었던거죠.ㅠ 좀 참고 살아야 한다고 느꼈어요. 세상 모든 일에
    근데 지나고 보니 참고 기다려야 했던건 아이가 아니라 부모인 저 자신이었던거죠.
    저희 친정부모님은 너무나 부드러운 분이었는데ㅠ
    시댁에 적응하고 이해하려다 보니 저 스스로가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마음이 큰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이 된 거죠. 여튼 지금은 저희 두부부 엄청 반성하며 저희 아이에게 넉넉한 부모가 되려고 애쓰고 있어요

  • 7. ..
    '18.1.24 9:38 AM (116.32.xxx.71)

    게다가..난감한건 부모님이 저의 상처와 불행을 의도하지 않았다는거예요. 222
    님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구구절절 가슴에 박히네요...의도하지 않은 정서적 학대라는걸 알기에 마음껏 비난하거나 원망도 못해요. 죄책감 들어서..속은 곪아 썪어나가도 겉으로는 번듯한 직장 가질 수 있도록 키워주셨으니까요. 원망하고 자책하는 것들의 반복..힘들었어요. 그래도 참다참다 아직도 변하지않는 엄마에게 힘들다고 몇년간 울부짖었더니 이젠 후회도 조금 하시는 듯 해요. 그리고 제가 받고 싶었던 정서적인 보살핌들을 적극적으로 내 아이들에게 표현 해주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미안해하시더라구요. 니네 엄마아빠는 어째 쪼그만 니들 스트레스 받을것까지 미리 걱정하냐 하며 신기해하시고.. 네..이해합니다. 먹고살기 바빠 정서적인 케어를 해줘야한다는 개념자체도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제가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이 제게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스트레스를 푸시는 모습들을 보고..이건 습관이고 성향이구나..싶어 이젠 강하게 대처합니다. 그런데 본성이 강하지 못한 저는 엄마에게 대차게 받아치고 난 후의 후유증도 그대로 반복해서 겪고 있어요. 그래도 감정을 꾹꾹눌러담았을때 보다 지금이 훨씬 건강한것 같네요.

  • 8. 음.
    '18.1.24 9:49 AM (220.123.xxx.111)

    님은 아이를 안 낳으실 거라구요?
    안타깝네요~
    좋은 엄마가 되실것 같은데...

  • 9. 나물
    '18.1.24 10:34 AM (211.202.xxx.107)

    안녕하세요
    저도 같은 이유로 부모가 아니고 앞으로도 부모가 아니길 선택했습니다.
    결혼 9년차.. 차라리 결혼을 하지말걸 하는 생각도 들어요.
    결혼을 하고보니 부모의 행동들이 더 이해가 안되고 내 존재가 가슴아플뿐입니다.
    생일이 돌아오는게 너무 싫어요. 축복받지 못한 탄생을 상기하는 날일뿐...

  • 10.
    '18.1.24 11:03 AM (222.238.xxx.117)

    제일 힘들고 어려운게 부모도 아니고 엄마라는 자리같네요. 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 같습니다.

  • 11. ~~
    '18.1.24 11:14 AM (121.190.xxx.3)

    구구절절 공감백배하며 읽었어요
    관용 없음에서 오는 인색함 차가움..
    '니가 그렇지 뭐~'라는 말에서 오는 무시
    난 잘 하는게 없구나 움츠러든 마음으로 성장
    나이 마흔되서 깨달았어요
    뭐든 잘 하는 사람이란 것을.
    그런데, 어린 시절 눌린 마음으로 무기력이 있어요
    원글님 덕분에 자녀들에 대한 관용을 새기게 되어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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