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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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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사랑, 그리고 음식의 상관관계

집밥 조회수 : 4,630
작성일 : 2018-01-14 21:36:56

엄마가 음식 솜씨가 좋으셨지요.

이상하게 어릴 적 기억하거나

먹었던 음식 기억할 때 그 무렵의 분위기가 색깔로 느껴져요.

엄마가 우리 남매에게 도너츠도 튀겨주고, 케잌도 구워주고

사라다빵도 만들어주고 나름 신경썼을 나의 유년시절은

연두빛.노란빛. 무지개빛

열심히 살고 우리 남매도 열심히 쓰다듬어 주고 하시던 그 때,,,


세월이 흘러,

엄마와 아빠가 별거를 하고 엄마는 다른 것에 미쳤을 때,

엄마 음식은 뜨문 뜨문 해지고

점점 바빠지던 엄마,

밖에서 엄마가 대충 불러 사주던 돈까스나 우동 생각나요.

맛있게 먹으면서도 엄마의 짜증을 한 켠으로 받았던게 기억나요.

그 때는 그냥 울그락 푸르락 하네요..기억들이


엄마는 어느 날 우리를 뒤로 하고 말 없이 떠나고,

덩그러니 남겨졌던 오빠와 나는

얼마 후 아빠에게 넘겨져서 새엄마와 함께 살았어요.


새엄마는 단정하고 음식도 차분히 잘하던 분이셨는데

그 오랜 시간 15년 넘는 세월동안 먹었던 음식들이

전혀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늘 목에, 가슴에 뭔가 걸려있는 느낌으로

새엄마의 시선과 냉랭함 속에서 음식을 먹었고..

그때부터 저는 음식을 숨어 먹는 버릇이 생겼어요.

생각하면 회색빛. 저기압에 잔뜩 가라앉은 먹구름빛이에요.


20대 때에는

식이장애로 폭식과 토하는 것을 반복하는 몇 년간의 시간이 있었네요

정말 자신이 혐오스럽지만 멈출 수 없었던 그 때..

집앞 마트에서 잔뜩 한 봉다리 몰래 사들고 들어와

문을 잠그고 더 이상 숨을 못쉴 때 까지 꾸역꾸역 밀어넣었어요

맛도 못느끼는데도 뭔가로 나를 꽉 채우고

또 그것을 못견뎌서 바로 토하고 나서야

눈물과 함께 하아..하고 나를 놓아줄 수 있었던 그 때.


몇 년을 지속되었던 폭식증은

신앙을 만나고, 또 바로 두 달 뒤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거짓말처럼 사라졌어요.

음식으로 채워지던 결핍과 허기가 자연스럽게 채워졌고

아무리 다이어트해도 내려가지 않던 몸이

다시 고등학교때의 적당한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15 여년간 변하지 않는 남편의 사랑만큼

제 몸은 변하지 않게 계속 유지되고 있어요.


십 여 년만에 다시 만난 친엄마는

그 새 음식이 너무 낯설어 졌더라고요.

지금도 음식장사를 하실만큼 솜씨도 좋지만

나와 헤어지기 전의 그 엄마의 손맛은 절대로 나지 않아요.


한 때, 집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집에서 내가 정성껏 차려도 보고(제가 음식 좀 합니다)

집밥 잘한다는 백반집도 가고, 한정식집도 가고

음식 잘하는 친구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도 먹었는데

혀의 즐거움만 채워질 뿐,

만족감이 전혀 없고 집밥에 대한 허기가 안채워 지더라고요.

그 때 알았습니다.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밥'이 아니라

나를 한 번도 버린 적 없는  엄마가 그립다는 걸..

그리고 이제 그것은 다시는 돌이켜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고나서야

그 허기가 멈췄지요.


제가 대학원에서 심리학 공부를 하던 시절

폭식증 파트를 공부하는데

음식이 엄마의 사랑을 상징한다는 구절이 나오더군요.

무릎을 쳤습니다.

저에게는 정확히 적용되더라고요.


나 보고 어릴적 먹었던 밥을 한 끼만 골라 다시 먹을 수 있게 해 준다면,

국민학교 시절,

고열을 며칠 앓고 난 후

내 옆에 가깝게 붙어앉은 엄마가

입맛없는 나에게 김치를 길게 손으로 쪽쪽 찢어

물 말은 밥그릇에 척척 걸쳐주셨던 그 한 끼를 맛볼래요.

며칠 간  옆에서 나를 극진히 병간호 해주던 엄마의 마음이

내 마음에 고열을 이기는 만족감을 남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엄마, 사랑, 음식의 상관관계라는 거창한 이 글 제목의 결론은 모르겠지마는,

음식을 타고 사랑의 에너지는 전해진다는 것,

그리고 엄마의 사랑은 집밥 속에 고스란히 남겨진다는 것....

우리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서 그 것을 직관적으로 느낀다는 것.



이렇게 주절거려봤습니다...비슷한 주제가 자게에 보이길래.

IP : 180.69.xxx.24
2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rosa7090
    '18.1.14 9:44 PM (222.236.xxx.254)

    잘 읽었습니다. 아이들 힘들더라고 웃으면서 맛있어 하는 것 해주도록 노력해야겠네요. 딸이 대학생 되니 해주는게 귀찮아서 짜증도 났는데..이글 읽고 반성합니다.

  • 2. 하~
    '18.1.14 9:46 PM (222.233.xxx.7)

    우너글님 지나온 시간들이 늘 좋지만은 않지만,
    찰라적인 순간이라도 있다는거...
    힘겹게 지내오신 그시간들...
    다 잊으시고...
    늘 행복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심리적인 공복감...
    이해해요.
    사랑이 더해진 밥 한끼가
    세상을 견딜만하게 해주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저도 음식을 좀 하는데,
    그 이유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 하지 않고도 전해줄수있는 애틋함이 있기 때문이예요.
    기회가 닿으면,
    엄마밥이 고픈 누군가에게
    소박한 밥 한상 차려내고싶네요.

  • 3. ㅇㄱ
    '18.1.14 9:53 PM (180.69.xxx.24)

    그러네요
    짧지만 저에게도 그런 무조건적 사랑의 순간이 있었다는 게
    새삼 감사하네요.

    그러고보니
    저도 음식으로 마음이 많이 표현되네요.

    예전에 인정욕구가 크던 조금 더 어렸던 시절
    사람들 집으로 많이 초대해서
    이거저거 해주고 즐거워 했었어요
    시댁 식구들에게도 상다리 부러지도록 해내고요.

    음, 지금은요...
    저에게 소중한 소수의 사람들과 집으로 오가며
    소박한 한 상 해먹어요.
    요새 꽂힌 품목은 수타 칼국수에요
    특별한 기술 없어도
    정성? 마음이 있으면 밀가루 빚어서
    뜨끈한 국물 내서 호호하하 먹으면 참 좋더라고요.

    수타면은 사랑입니다~~

  • 4. 사랑
    '18.1.14 9:53 PM (172.56.xxx.74)

    글을 맘에 와닿게 잘쓰셨어요. 원글님은 신앙과 남편의 사랑으로 치유되고, 유지하시고 사신다니 승리하셨네요.

    전 어렸을때 먹을것이 없어 늘 긍긍대어서인지, 뭔가 음시이 있음 다 먹어없애야해요...

    문제는 음식이 먹어도 맛있다는 맘이 안들어요. 누가 맛있는 음식을줘도... 맛있는곳이나, 맛있는 음식 먹고 싶은것도 생각이 없는데, 항상 뭔가 먹고있는 나를봐요..

    저도 체중이 많이 늘으니, 건강을 위해 빼야하는데, 또 그냥 보면 먹는 나를 봐요. 원글님은 치유가 되셨다니 축복입니다. 난 나이 60인데도, 아직...

  • 5. ..
    '18.1.14 9:54 PM (49.170.xxx.24)

    잘 읽었어요. 음식을 색으로 표현한게 인상적이예요.
    이제 계속 행복하시길...

  • 6. 이팝나무
    '18.1.14 9:58 PM (114.201.xxx.251)

    맞는말 같아요.
    음식의 맛은 그 기저에 어린시절 정서. 애정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란걸 주위사람들을 보면서 느껴요.
    정서의 허기가 음식에대한 갈증.또는 폭식으로 나타나는걸
    많이봐요.
    그래서 개개인이 느끼는 음식의맛도 지극히
    주관적인 정서에 기인한다고 생각해요.

  • 7. ㅇㄱ
    '18.1.14 10:02 PM (180.69.xxx.24)

    김창완의 곡이 이제야 와닿네요..

    "나는 참 바보다..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 걸...(어머니와 고등어 중)"

  • 8. 이팝나무
    '18.1.14 10:06 PM (114.201.xxx.251)

    개인적으로 저는 어릴때 가난하게 큰지라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어요.
    밥과 고구마외엔....
    그래서인지 미각이 아주둔해요..
    별로 먹고싶은 음식도없고 좋아하는 음식이라곤
    커피가 전부네요.
    음식은 그냥 생존하기 위한 수단.
    딱 그기 까지에요
    가끔.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러울때가 있어요

  • 9. ...
    '18.1.14 10:16 PM (125.186.xxx.152)

    마음이 허전할 때...
    맛도 못 느낄만큼 배부른데도
    꾸역꾸역 음식을 말어넣기를 멈추지 못하는 그 심정..
    저도 잘 알아요....

  • 10. ㅇㅇㅇ
    '18.1.14 10:18 PM (117.111.xxx.35)

    윗분 말마따나 색깔로 표현한 글이 인상적이고
    글쓰는 이의 욕심도 분노도 없이 담담한 영혼이 담긴거
    같아..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쓰셨네요..
    새어머니의 밥이 목에 걸렸다..는 표현을 들으니, 저로썬
    열심히 밥해주는 엄마는 있었지만, 그 사랑을 잘 느낄 수
    없었던터라.... 글쓴님이 마치 제 친자식인양 가슴이
    미어지고 울컥하게 되는거 같아요.
    처지는 다르지만 결핍에 대해 참으로 공감가는 구절이 많습니다.
    혀끝의 충족을 원해 마구 먹는게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허기가 되었던 것....
    사람은 영적인 존재라서 직관적으로 그 사랑을 느낀다는것도요.

  • 11. ....
    '18.1.14 11:08 PM (221.139.xxx.166)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12. 아까 그 글
    '18.1.14 11:29 PM (121.160.xxx.222)

    엄마 음식 맛있는줄 모른다는 그 글 제가 썼어요
    원글님과 저는 정 반대이기도 하고... 공통점이 있기도 하고 그러네요.

    엄마의 음식이 사랑과 통해있다는 말씀 정말 대 공감해요.
    언제나 화려하고 풍성했던 엄마의 식탁....
    하지만 그걸 씹는 제 기분은 모래알 같을 때가 많았어요.
    중요한게 빠져서 그랬던 거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 13. 호호호
    '18.1.14 11:31 PM (110.13.xxx.194)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14.
    '18.1.14 11:50 PM (175.223.xxx.133)

    심리학 공부를 하면 글도 이렇게 잘 쓰는 건가요? ^^
    너무 잘 읽었습니다..
    원글님 앞날은 항상 아름다운 색채로 채워지시길 바랍니다..^^

  • 15. ㅁㅁㅁㅁ
    '18.1.15 12:10 AM (119.70.xxx.206)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밥'이 아니라

    나를 한 번도 버린 적 없는  엄마가 그립다는 걸..

    *****************

    그 마음 알 거 같아요... ㅜㅜ

  • 16. 와아
    '18.1.15 12:41 AM (114.178.xxx.102)

    글이 긴 시네요
    마음 속이 아려오네요

  • 17. ..
    '18.1.15 12:45 AM (59.18.xxx.167)

    좀 길어 꼼꼼히 보진 못했지만

    구조가 살아있고 가슴 저린 수필이네요.

    우리 딸에게도 맛있는 음식 해먹이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요.:

  • 18. ...
    '18.1.15 1:08 AM (92.108.xxx.194)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엄마가 보고싶어지네요.

  • 19. 민들레홀씨
    '18.1.15 3:03 AM (107.209.xxx.168)

    세아이를 키우면서 힘들때 내마음을 안정시키던 한 신념은...
    내가 해준 밥 먹고 자란 우리애들은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잘못 가더래도 분명이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었어요.
    다행히 크게 어긋나지않게 잘 자라주었고, 지금도 함께 모이면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이야기, 엄마가 재미있게 잘라줫던 과일 모양이야기하며 꼭같이 먹고 싶어해요.

    저는 쌀 씻을때마다 애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맘이엇어요.
    엄마의 음식은 사랑입니다.

  • 20. 원글님 웬만한 작가보다도 글 잘 쓰셨어요
    '18.1.15 4:17 AM (121.167.xxx.243)

    앞으로는 항상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 21. 역시
    '18.1.15 8:14 AM (123.111.xxx.10)

    집밥은 사랑..
    잘 이겨내셨어요.
    아침부터 눈물이 주르륵...

  • 22. 라일락84
    '18.1.15 9:04 AM (175.223.xxx.32)

    오늘도 이런 좋은 글을 읽을수 있어서
    알바가 난장판을 쳐도 82를 사랑해요^^

  • 23. 원글
    '18.1.15 9:11 AM (180.69.xxx.24)

    함께 맘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가끔씩은 채워지지 않은 모정에

    세상 고아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이런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주고, 매일 용서해주는

    아이들과 남편과

    작고 소박한 행복 누리며 살아요.

    자꾸 마음의 구슬이 이미 길이 난 우울 쪽으로

    빠지려 할 때, 퍼뜩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똑같은 일상을 달리 살아보려 합니다.

    오늘 하루

    가까운 사람들과 많이 웃는 하루 되시길...^^

  • 24. 응원합니다
    '18.1.15 11:55 AM (117.111.xxx.253)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유년의 추운 한 때를 모두 상쇄시킬만큼
    지금의 소박한 하루하루를 즐기시길
    바랄게요.
    응원합니다
    그리고 글도 계속 써보심이 어떨지....
    가족여행을 온 아침에 님의 글을 읽고
    소중한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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