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 가지를 염려합니다. 첫째, 청탁금지법 시행령의 개정으로 앞으로 공직자에게 하는 선물은 무조건 10만원씩을 해야 되는 풍조가 될 것을 염려합니다. 김영란법의 목적은 청탁이 될 수 있는 상대방에게는 ‘선물 아닌 선물’을 안해도 되는 사회, 청탁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선물 아닌 선물’을 거절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현실을 고려해 ‘3, 5, 10’의 상한을 두어왔지만 이 법의 의미가 공직자에게 ‘3만원, 5만원, 10만원씩 밥사주고 선물주고 경조사비 내어주라’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직무와 관계있는 사람들 간에는 안 주고 안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탁금지법의 어머니이신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께서도 얼마 전 청탁금지법의 정신은 ‘3, 5, 10’이 아니라 ‘0, 0, 0’이라고 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 개정은 그런 정신과는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염려하는 것은 이것이 과연 우리 농업, 축산업, 수산업을 살리는 근본 대책인가 하는 점입니다. 농축수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점,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 농업, 축산업, 수산업은 김영란법 시행 전부터 이미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정말 농어민들을 살리고 농축수산업을 잘 되게 하려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선물 상한액을 올린다고 해서 농축수산업이 살아나고 그것으로 만사형통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명절에 쌀을 선물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지 않습니까. 청탁금지법 시행령을 개정해 선물 상한액을 올린다고 모든 농어민, 축산인들이 형편이 나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농축수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할지, 방역체계를 어떻게 개선해서 매년 AI와 구제역으로 반복해서 축산인들이 손해를 보는 문제를 해결할지, 채산성이 낮은 작물에서 수익성이 높은 작물로 업종을 바꾸는 것을 어떻게 지원할지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농어민, 축산인들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정부가 선심쓰듯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으로 생색을 내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는 소홀할 것이 우려됩니다.
셋째, 앞으로 청탁금지법이 또다시 후퇴하여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을 염려합니다. 식사, 선물, 경조사비의 상한액은 부득이하게 정한 것이지 ‘이만큼을 줘라’, ‘이만큼은 받으라’고 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에 선물 상한액을 올렸으니 그 다음에는 식사 상한액을 올리자고 할 것입니다. 3만원이 5만원이 되고, 5만원이 10만원이 되고, 100만원(연간 금품 한도액)이 200만원이 되고, 결국에는 김영란법이 누더기가 될 것이 우려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분들께서 이 점 염려하고 계십니다.
저는 최근 몇 년 간 우리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안 중 가장 우리 사회에 기여한 법이 바로 청탁금지법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법이 제정되면서 철마다 때마다 ‘선물 아닌 선물’, ‘접대 아닌 접대’를 해야 했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선물과 접대의 부담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그것이 후퇴하게 되면서 나오는, 평범한 시민 여러분의 많은 우려와 분노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9대 국회에서 김영란법이 제정될 당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던 이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앞장서서 노력했습니다. 당시 다른 당의 유승민 원내대표를 직접 찾아가 김영란법 통과 협조를 부탁하고, 국회 본회의에서는 유일한 찬성 연설로 김영란법의 제정을 호소했습니다. 그때의 일들을 밤새 되새겨 보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에게 농어민, 축산인들 표를 잃게 되니 입장을 섣불리 내지 말라고도 하십니다. 또 어떤 분들은 청탁금지법 한도 상향에 반대하면 선물받는 대상자들이 좋아하겠느냐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는 것은 정치인이 할 도리가 아닙니다.
저와 국민의당은 청탁금지법이 본래의 목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청탁금지법 개정안(이해충돌방지법), 그리고 농축수산업을 근본적으로 살릴 수 있는 대안을 함께 준비하겠습니다. 오늘날 수구와 개혁, 적폐와 신진은 낡은 이념의 잣대로 규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청탁받는 자들, 청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 청탁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수구이자 적폐입니다. 청탁의 길이 열리면 마지못해 ‘선물’을 갖다바쳐야 하는 사람들, 공정하게 경쟁하고자 하는 사람들, 청탁 없는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입니다. 손해보더라도, ‘선물 아닌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선물 아닌 선물’의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입니다. 앞으로 그런 보통 사람들의 편에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