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0년대에 태어나 장국영 세대라고 할 수도 없고,
당연히 홍콩 영화의 전성기에 청춘을 보내지도 않았고,
평소에 영화를 많이 보지도 않았어요.
영화라는 매체가 저하고는 좀 안 맞는건지, 드라마는 참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영화는 재미도 감동도 덜하더라고요.
화양연화 보다가 졸 뻔하고, 트랜스포머라는 요상한 영화는 보다가 실제로 잤다는..ㅠㅠ..
그래도 제가 인생 영화로 뽑는 영화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패왕별희입니다.
이미지 중심의 영화에는 적응을 잘 못하는데,
패왕별희는 이미지 보다는 서사 중심이고 기승전결이 분명한 영화라서 그런지,
영화에 몰입을 잘 못하는 저도 빠져들어서 봤었지요.
장국영을 보며 연기의 신이 내렸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 사람은 정말 배우구나..
영화 개봉당시에 전 아직 어렸었고, 나중에 추석특선인지, 설 특선인지 tv에서 해줄 때 봤었어요.
그 이후 비디오 가게가 사라지기 전에 비디오로 한 번 더 빌려봤었네요. (비디오.. 옛날 사람.ㅠㅠ)
그 이후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장국영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왔고,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지만 그걸로 끝이었어요.
호감을 갖고 있는 배우였지만 팬은 아니었으니까요.
나 자신의 문제가 더 중요했고, 내 인생을 사느라 바빴으니까요.
장국영의 죽으면서 한 시대가 막을 내렸고, 더불어 내 청춘도 끝났다고 느꼈다는 분들이 계시던데,
그때 저는 청춘의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홍콩의 잘생긴 배우 아저씨가 자살했다고
내 청춘이 끝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사실 제 청춘이나 제 인생과는 별 상관없는 일이었죠.
그저 잠시 안타까웠고, 그걸로 끝이었어요.
그러다가 얼마 전 월량대표아적심을 부르는 장국영의 콘서트 영상을 보았습니다.
아.. 따스하여라. 달빛이 진짜로 내 마음을 적시는 듯..
어쩜 이렇게 따스하고 감미로울 수가 있는거죠?
그의 목소리도 따뜻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그의 눈은 어쩜 그리 착하고 또 착하기만 하던지..
너무 착해서 눈물 날 것 같은 눈이었어요.
당시 이미 40대에 접어든 중년 아저씨였는데, 무슨 아저씨가 저리 맑아 보이는지..
하루 종일 이 동영상을 보고 또 보다가, 그걸로는 부족하여 mp3도 구입하여 밖에서도 듣다가,
갑자기 팬심이 동하여 장국영에 대해 이것저것 폭풍 검색을 하게 되었어요.
그는 1956년 9월 12일에 태어났어요.
네.. 엄마 또래더군요..ㅎㅎ
살아 있었으면 60대.. 죽을 당시에도 40대 후반 아저씨였는데,
10년은 어려보이는 초동안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청춘에서 삶을 끝내버린 것 같아요.
영원히 젊은 남자로만 남아 있는거죠.
10남매 중 막내라 십자라고 불려졌고, 9번째 형이 죽은 날 태어나 가족들은 아홉째의 환생으로 여겼대요.
아버지는 소실을 둘이나 두고 살았고, 그러다 결국 이혼했는데, 부모 형제 모두 그에게 무관심했다고 합니다.
특히 어머니는 그에게 애정을 주지 않아 그는 평생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했다고 해요.
보통 아버지가 밖으로 돌면 엄마와 자식들이 똘똘 뭉치게 되고,
엄마는 아버지로 인해 구멍난 가슴을 자식으로 채우며 자식에게 집착하는 일도 있는데,
장국영의 어머니는 참으로 쿨한 분이었나봐요.. ㅠㅠ..더구나 막둥이는 집안의 귀염둥이인데,
장국영은 귀염받기는 커녕 아무런 존재감도 없고 관심도 못 받는 아이였다는.ㅠㅠ..
문과 오빠였던 그는 수학을 너무 못해 영국가면 수학이 쉽단 말을 듣고 영국유학을 떠나요.
집을 떠나고 싶은 맘도 있었고요. 리즈대학에 진학하지만 아버지 병환으로 귀국해 학업을 중단.
차라리 영국에서 학교를 마치고 의상디자이너로 살았다면 행복했을까...
최소한 이런 결말은 아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ㅠㅠ.
친구 따라 가요제에 나갔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장국영이 당선되고,
한국에서 열리는 가요제에도 두 번이나 참석했더군요. ㅎㅎ 상도 타고..
오랫동안 무명으로 지내다가 모니카란 신나는 노래가 떠서 좀 살만 해 지고..
그러다가 모두가 아는 것 처럼 천녀유혼, 영웅본색 등의 영화가 빵빵 터지면서
아시아의 스타가 되지요.
그 이후 은퇴선언, 캐나다 이민, 다시 복귀, 아비정전, 패왕별희...
만46세에 떠날 때까지 50편이 넘는 영화를 찍었어요. 정말 많이도 찍었더라고요. 정말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살았더군요. 장국영이란 사람은.
저는 그가 노래를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가수인 줄은 몰랐어요.
그는 제 기억 속에 배우로만 남아 있었지, 뮤지션 이미지는 전혀 없었거든요.
그냥 아이돌이 연기도 하듯, 대부분의 홍콩 배우들처럼 노래도 했었나보다 가볍게 생각 했었는데,
정말 많은 노래를 불렀고, 작곡도 하고..
배우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음악인이기도 했었더군요.
그가 가수로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던 그의 마지막 콘서트- 열정-을 보면..
그가 얼마나 훌륭한 가수였는지, 음악에 얼마나 많은 열정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어요.
장 폴 고티에의 몽환적인 의상을 입고나와 엄청난 무대를 보여주지만...
홍콩 기레기들은 그의 산발한 머리와 독특한 의상을 까고 또 깠고,
얼마나 심했던지 고티에가 너무 화가나서 다신 홍콩 배우를 위해 옷을 만들지 않겠다고 했대요.
사실 이분이 만드는 옷은 평범한 사람들이 입으면 돌아이로 보이기 딱 좋은 옷들인데,
우리의 꺼거는 신화속에 나오는 사람처럼 멋지게 소화해 냅니다.
장발하고도 정말 잘 어울렸고요.
그런데 언론에 까이고 또 까이고, 그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은 이 공연이 너무 심하게 욕을 먹으며
많이 좌절했다고 해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려고 했었지만 홍콩 마피아인 삼합회를 비판했던 그에게 아무도 투자를 하지 않고,
겨우겨우 석실이란 사업가가 투자를 했는데 그는 뭘 잘못해서 진짜 석실로 가는..ㅠㅠ..감옥에 가게 되고,
이 영화에 남주로 송승헌을 캐스팅하려고 한국에도 왔었다네요. 그러나 송승헌은 안하겠다고 했고,
어찌 알았는지 몰래 왔었는데도 홍콩 기레기들이 공항까지 나와서, 묻는다는 것이,
송승헌은 어땠나요? 만나보니 어땠어요? 였다는...장국영의 일엔 관심도 없고, 막 떠오른 한류스타에 대한 질문만..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고 해요. ㅠㅠ..
이것저것 하고자 하는 일이 막힌 상태에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자살기도를 하기도 하고...
그러나 기레기들 무서워 정신과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하네요.
실제로 2000년 열정 콘서트 이후 찍힌 사진들을 보면 힘도 없어보이고 눈이 퀭하고..
어쩜 사람이 몇 년만에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는건지...
열정 콘서트 당시의 매혹적인 얼굴, 기자회견 할 때의 자신만만한 모습은 사라지고 없더군요.
그 이후엔 모두가 아는 결말이죠.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그의 모습을 보면 가슴 한 구석이 시리고 아파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삶을 끝내야 했다는 것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 46년간이나 고군분투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낸 사람이,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가다니..
그가 힘겹게 살아낸 세월이, 그가 이룩한 것들이 너무 아깝고 또 아까워요.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해내고, 그렇게 열심히 살고, 그렇게 떠났어야 했는지..ㅠㅠ.
패왕별희를 찍었을 때가 30대 후반.
그는 이미 그 나이에 연기에서 정점을 찍었더군요.
앞으로 그런 배우가 또 나올 수 있을지..
한류스타라는 사람들 중에 예술가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는지..
말 그대로 스타일 뿐, 배우라고 부를 사람도 사실 많지 않지요.
산타가 연기를 잘한다지만, 산타는 그냥 산타일 뿐. 산타짓이나 하고 다니고. 웩.
장국영은 파도파도 미담만 나오는 파파미의 전설.
영화찍을때 아역배우가 그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연기를 잘 못해서
자기 촬영이 없는데도 매일 나가서 아이를 지켜봤다고 해요.
나중에 그 아이를 양자삼아 후원했고요.
양자도 여러 명이고, 좋은 일도 많이 했다는...미담폭격기.
자신을 키워준 유모도 극진히 모셨다는 미담 또한 전해지는데..
정말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얼굴에, 따스한 목소리에,
훌륭한 연기에, 인품까지 갖췄던
아름다운 예술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력있어도 성질 더러워서 주변사람 괴롭게 만드는 예술가들도 많은데,
따스하고 좋은 사람.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대신, 자신을 너무 괴롭게 만들다가,
나중엔 손발이 덜덜 떨려서 통제가 잘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ㅠㅠ..
자살한 사람들은 좋은 곳에 못간다는 말도 있지만,
그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으니, 신께서도 특혜를 베풀어..
부디 그가 평안하기를..기도합니다.
그리고 저도 열심히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이미 30대에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는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제 인생이 부끄러워져서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살고, 꺼거처럼 좋은 사람으로 남도록 노력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