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인걸로 기억하네요. 오랜만에 만난 절친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무렵 제가 김연아의 팬이 되었어요. 뭐 승냥이라 불리는 그런 분들과는 다르게 약간은 차가운 팬이었달까요. 한참을 잡다한 이야기로 지새다가 김연아 이야기가 나왔어요. 마침 tv에서 관련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거든요. 그때 친구의 말이 걸작이었어요.
"자가 tv에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쁜것도 아니고, 잘난 것도 아닌데."
그때만 해도 피겨에 대한 인식이 없었으니 못낫다는 기준은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아니라는 의미였을 겁니다. 그것까지는 뭐 그러려니 했는데, 이쁜지 모르겠다는 말에는 반감이 들었어요. 술도 먹었겠다. 한참을 쏘아줬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제가 그때까지만해도 그 뭐랄까 김연아의 미모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제눈에도 어쩔 때는 절세가인인데 딴 때는 평범한 것 같고, 참 난해한 처자였지요. 한동안 무지 헷깔렸던 경험이 있어요. 물론 저도 생업이 있는지라 늘 그랬던 것은 아니고, 가끔 그랬다는 말입니다. 그러던 중에 오랜동안 묵혀 두었던 인류학 책들을 다시 들여볼 기회가 있었어요. 어떤 책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 중 한책에서 미인의 조건을 밝힌 글귀가 기억에 남았어요.
"미인이란 이목구비가 균현잡힌 사람을 말한다. 문화에 따라 각 요소에 대한 비율상 선호도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면 그게 미인이다."
그 책을 다시 들여다 본지 얼마되지 않아서, 한국 미인도 특별전(이것도 기억이 정확하지 않네요.)인가를 보러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물론 복사본이었겠지만), 이거 정말 연아랑 비슷하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친구랑 술자리를 파한 뒤 거의 5달이 지난 후에 다시 가진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했었어요.
아하, 역시나 이번에도 전과 같은 반응을 보이더군요. 차이가 있다면 그 무렵에는 이미 많은 정보가 제공되어서 그런지 실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어요. 뭐 "마이에미 바이스"나 "고속도로 순찰대" 같은 예전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엑스트라보다 못하다고 하더군요. 그러던 친구가 요즈음에는 아주 김연아가 이쁘다고 광팬이 되었어요. 특히 평창 활동이후에 더 그런 경향을 보여요. 그 친구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저는 그 이유를 김연아가 엄청난 사회적 지위를 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녀 본인이 물론 아름답지만, 아무래도 우리세대는 서양식 미에 대한 선호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비록 조화가 갖추어져 있고, 모든 요소가 균형잡혀 있음에도 그 각각의 비율이 잘난 서구권과는 달라서, 한 쪽으로는 미인으로 여기면서도 다른 쪽으로는 미인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번 명절에 정말 아끼는 조카 아이가 성형관련해서 큰 소동을 일으켰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 아이의 지금 비율이 훌륭하고 나름 미인의 조건을 가졌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친구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어요. 코. 눈. 이마 등 각 부분의 비율을 조정하고 싶어했어요. 나름 연예계를 목표로 두고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지요. 저는 김연아 이후로 저의 세대와는 달리 현 세대는 자신의 외모에 나름의 자신감을 가졌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네요.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