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화목하게 사는법.
유화선순하라.는 말씀입니다.
명절 추석을 앞두고 고요한 마음에 문득 떠오르는 작은 생각하나 그려봅니다.
예전에는 어쩌면 그렇게 화가 많았었는지 가족이 모이는 일이 있으면 대부분이 엄숙하거나 침울한 분위기로 마무리 되곤 했었습니다.
유난히 정열이 넘치고 의협심이 강한 아버지, 거기에 한 술 더뜨는 까칠한 성격의 저는 함께 대화를 할 수 없을만큼 성격이 강했습니다. 대화를 할 때마다 큰 소리가 나고 집안이 술렁거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제 저는 인연따라 출가자의 몸이 되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이치를 찾다가 세상이 움직이는 이치를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는 부처님의 한치도 틀림없는 말씀에 귀의 하게 되었습니다.
출가한지 수 년이 지난 이제야 그 틀림없는 이치의 그림을 겨우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화(분노)가 만들어내는 일체의 것은 모두 파괴적이고 자유를 구속합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바른 것을 찾고 옳은 것을 찾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화를 내고 더 시끄러운 소리를 냅니다.
저는 오늘 지난날의 저와 같이 시끄러운 소리와 화를 잘 내시는 분들에게 불가에서 유화선순(柔和善順)이라는 말씀이 가지는 의미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이는 부드럽고 평화롭고 착하고 순수하다는 뜻이지요. 구도자의 공부가 얼마나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하는 이 성품은 예전의 우리 대가족제도 농경사회에서 십수명의 자녀를 키워오신 늙으신 어머니들의 모습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의 말씀들은 티베트 불교의 입보리행론 인욕품에서 인용하였습니다.
[6.1.]
수천 겁을 쌓아 온 보시와
선서께 올린 공양들 모두
선행이라 할 만한 것은 모두
단 한 번의 분노로 무너진다.
[6.2.]
증오만한 죄업이 없으며
인욕만큼 힘든 일이 없으니
그러므로 인내를 기르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수행해야 하리라.
[6.3.]
증오의 독기를 가슴에 품으면
마음의 평화는 경험하기 힘들고
기쁨이나 안락도 얻기가 어려우니
잠은 오지 않고 불안하기 마련이다.
[6.4.]
누군가의 재물과 명성에
의지하여 은혜를 입었던
이들도 [항상] 화만 내는
주인에게는 해치려고 덤비나니
[6.5.]
따라서 친구나 친척도 실망하게 되며
보시로 풀어보려 해도 믿어주지 않으니
다시 말해 화를 내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6.6.]
분노라는 적은 이외에도
많은 고통을 만들어 내나니
누구든 부지런히 화를 가라앉히면
그는 이 생과 내생에서 행복을 [얻으리라.]
[6.7.]
원하지 않는 일을 하거나, 원하는
일에 방해받는 일이 생기게 되면
불만의 먹이는 쌓여만 가고
분노가 자라나 자신을 무너뜨린다.
[6.8.]
따라서 스스로 이 적의
먹이를 제거해야 하나니
이렇게 자신을 해치는 것은
이 적말고 다른 것은 없다.
[6.9]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기뻐하는 마음만은 흔들리지 말아야 하나니
좋아서 하지 않으면 해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어렵고
[이제까지 지어 온] 선업들마저도 위태롭게 된다.
[6.10.]
만일 고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실망할 까닭이 무엇이며
만일 고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렇게 절망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이 세상 어떠한 물건도 어떠한 현상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모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연의 그물에 얽혀 자유롭지 못하게 나타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 아불대사문(我佛大沙門) 상작여시설(常作如時說)- 이 게송을 앗사지 비구에게 듣고 지혜제일 사리불존자가 수다원과를 얻으며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부처님께서 일체에 자유없는 연기법의 진리를 말씀하셨음에도 대통령이 국민을 잘 이끌고, 기업인이 노동자에 감사하고, 가장이 가정을 잘 돌보며, 종교인이 청정한 신행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렇지 않아서 사회가 살기 힘들다고 자꾸만 불만을 키워갑니다.
그들의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의 영향권을 벗어나야 옳겠지만, 우리도 그들도 하나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들속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결국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면서 다른 인연을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벗어나려는 행을 하는 사람은 불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우울한 생각으로 얼마 남았는지 알 수도 없는 스스로의 삶의 시간을 허비할까 두려워 스스로의 일에 더욱 열심히 집중하고 가까운 가족과 이웃에게 기분좋은 바람을 일으키는데 노력합니다. 소중한 인연에 대해 감사하고 기쁘게 해야할 의무에 더욱 충실하려고 혹시나 불평불만이 주변에까지 영향을 끼칠까 염려하며 삶의 순간순간까지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젖먹이 아기를 안은 엄마가 마음의 평정을 더욱 잘 유지하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6.25.]
있을 수 있는 모든 잘못과
여러 가지 형태의 죄업들도
모두 다 조건에서 생기는 것이지
독립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6.26.]
조건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들이라 해도
'생기겠다.'라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생겨난다고 해도 '내가 생기겠다.'는
마음이 따로 있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6.31.]
이렇게 모든 것은 다른 힘으로 [생기나니]
그의 힘이라고 [하지만] 그의 힘은 없다.
이렇게 알고 나면 다 환영과 같은 것이다.
어떠한 사물에도 화낼 [이유는] 없으리라.
[6.33.]
그러므로 [우리의] 적이나 친구가
부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와 같이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여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상과 같은 말씀은 우리를 해롭게 하거나 잘못된 행위를 하는 이들을 마치 고통받는 지옥 중생이나 중병이 걸린 자식처럼 여기는 연민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연기법을 알고 스스로를 돌이킬줄 안다면 스스로의 과보로 생긴 고통을 달게 받으며, 더 이상의 악업을 키우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스스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제 발로 또다른 고통의 굴레로 들어가는 모습은 불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를 보는 스스로는 이 몸과 마음의 있음으로해서 받게 되는 현재의 고통을 달게 받아, 더이상의 고통을 키우지 않기 위해서 바른 법을 구하고 선업을 쌓아가는 출리심을 내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연민심과 출리심을 점차 키워서 그들의 고통까지도 모두 없어지도록 몸과 마음을 다하는 행(보리행;보살행)으로 불국토를 앞당겨야만이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되지 않겠습니까?
인연의 그물로 얽히고 섥혀서 자유없이 나고죽는 이 곳이 사바세계임을 여실히 알고, 자타불이의 연기법에 의지하여(법귀의;法歸依) 부드럽고 평화롭고 착하고 순수하게 삶을 살면, 저절로 자비(보리)행을 실천하게 되고 일체중생이 보리살타인 불국토가 문득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모두 분노와 원한의 씨앗인 불만을 지우기위해 유화선순(柔和善順)한 생각 부드럽고 평화롭고 착하고 순수한 생각으로 세상을 가득채워나가기 위해 정진하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위해 애써야 하겠습니다.
나무 서가모니불 나무 서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서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