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임신초기 보내면서 입덧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원래 체기와,그에 수반되는 온갖 것들의 냄새와 모양에 예민해지는 증상을
잘 못 참는 사람인데요....
이게 매일매일 계속되니 정말 매일매일 벌 받는 느낌이에요
저 혼자서 식사를 겨우겨우 마련해 먹으면 속이 뒤틀리구요
그나마 외식이나...남이 해준 걸 먹어야 잘 넘어가더라구요
집안꼴은 폭탄 맞은 것 같은데...임신하고 나니 더러운 것들이 더 눈에 잘 띄는데
손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요.
침대에 고꾸라져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하루는 남편이 왔을 때 제가 너무 힘들어 보였는지 달래길래
그동안 쌓였던 눈물이 막 터지더라구요
당신이나 나나 그닥 원하지 않았던 아가라서 당신한테 뭐라고 잔소리하기도 미안한데,
너무 힘들다. 아파트 창밖 내려다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
속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집안 꼴은 이게 뭔지 모르겠고
난 이제 저녁밥도 부엌일도 할 수가 없을 정도다...(음식 냄새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여기서 이렇게 내가 뭘 할수도 없는데 내가 한국에 가는 게 나은거 아닌지 모르겠다
너무 슬프다...
하고 울었더니
(그동안은 이렇게 표현을 잘 안했어요)
저를 안고 달래주면서
괜찮다고...집안일은 자기(신랑)가 다하면 되지...
괜찮다고 하면서 좋은 말로 달래주더군요
고맙고, 그런 말을 믿었어요.
제가 임신전에는 나름 남편에게 집안일 안 시키고 전업주부로서 제할일을 열심히 한다 주의였거든요...
근데 입덧이 너무 심하니까 도저히 그럴 수가 없더라구요.
그런데 문제는,
제 신랑의 단점이기도 한데,
말만 그렇게 잘해요.
막상 집에 와서 설거지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어도
그릇 한장 씻지 않구요,
와이셔츠 다리미질도 자기가 다 하겠다고 하고서는 한 장도 안 다려서
결국 제가 몸 고꾸리고 다려야 하구요.
그리고 제가 입덧이 심해서 뭘 잘 못 먹다가도
가끔씩 특정 음식-외식으로만 먹을 수 있는 것들(비싼 거 아니에요) 먹고 싶다고 하면
한번도 흔쾌히 그래 우리 마누라 아가도 가졌는데 맛있는거 사줘야지!
이렇게 나서는 적이 없어요.
여기 외식비가 무척 비싸기도 하지만(웬만큼 저렴한 외식을 해도 5만원 정도, 제대로 먹으려면 10만원부터)
월급이 제가 알기로 적은 사람도 아니고,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돈이 아닌가요.
저 임신 전에도 외식하고 싶은 적 정말 많았지만 참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입덧하면 그게 잘 안 되잖아요.
그런데 입덧할때도 외식할때 늘 눈치보고...남편의 내키지 않는 표정 보고 겨우겨우 나가게 되니
정말 서글퍼요. 임신했을땐 먹고 싶은 걸로 서글프게 만들어선 안 되는 거 아닌지..
그러다 어제였어요.
어제는 저녁을 어찌겨우 잘 먹긴했는데,
여전히 속이 불안불안하고 뒤틀려서 가만히 앉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신랑이 제가 앉아있는 거실 큰 테이블을 보고는
"와...정말 집안 꼴 말도 안되게 지저분하다" 그러는 거예요.
사실 신랑이 그거 치우려면 치울 수 있거든요. 치우기 어려운 물건들이 벌려져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저는 그때부터 기분이 좀 상했어요.
그리고 오늘 저녁은 남편이 갓 들어온 직장동료를 집에 데려와 술을 마시고 있네요.
1차로 저도 데리고 나가서 근처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저한테 (생활비로 준 )현금 좀 많이 갖고 나가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는 결국 제가 가지고 온 현금으로 계산을 했어요.
어차피 남편이 벌어다주는 생활비니까 남편이 내든 제가 내든, 할 수도 있는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남편 일에 제 몫의 생활비를 쓰다가 생활비가 빨리 떨어지면
달라고 말을 해야하는데
그게 너무 싫어요. 달라고 하면 시원하게 주는 것도 아니고...농반진반 해가면서
벌써 다 썼냐고, 아껴쓰라고 하면서 뜸을 들이며 주거든요.
안그래도 저는 여기서 살림하면서 제 몫으로는 10원한장 허투루 써본적 없어요.
돈을 너무 못 써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인데...농담이라도 저런 소리 듣는 게 싫거든요.
아무튼,뭐 그랬지만 동료분도 있고 하니까 그냥 저녁값 잘 내고 집에 들어왔어요.
남편은 동료분하고 밖에서 맥주를 한가득 사서 들어오더니
저보고는 들어가서 자라고 하고
계속 술을 푸고 있네요...
솔직히 자기도 스트레스 받겠죠. 자기도 원해서 가진 아기 아닌데, 매일 마누라가 죽상을 하고 있으니 말이죠.
해야될 일도 늘고...
하지만 막상 저를 위해 실생활에서 배려하는 건 별로 없어요.
그래도 아내와 아이가 남편에겐 배려의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남편은 그냥 자기 기분이 더 소중한 사람같아요.
저는 솔직히 지금 인생에 몇 번 없던 위기나 다름이 없거든요. 몸 상태도, 마음 상태도,
게다가 한 생명이 저한테 달려 있으니 제 마음대로 저를 놔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서
더 스트레스를 받아요.
남편도 스트레스는 있겠지만, 그런 저를 이해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지쳤구요...
친정엄마는 좋은일만 생각하라시는데...
저는 모든게 다 혼란스러워요...좋은일이 뭐고 희망적인 게 뭔지 잘 모르게되어버렸어요...
남편마저 의지가 안되고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슬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