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박경철의 전국순회 토크강연 청춘콘서트, 어제는 제주도를 찾아갔습니다. 저도 청춘콘서트를 쫓아 제주도로 향했는데요, 왕복 항공비를 생각하니 허리가 휘청했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께 제주도의 열기를 전해주고자 과감히 나섰습니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문화적 혜택을 많이 누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국의 어떤 지역보다 청중들의 관심도와 열기가 뜨거웠는데요. 제주시 제주학생문화원 입구에 들어서니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이 깃든 여러 부스 이벤트들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제주도의 특징이 곳곳에 많이 보여서 정말 참신하고 즐거웠습니다. 두 분의 멘토가 무대 위를 걸어나옵니다. 제주학생문화원을 가득 메운 1100여명의 제주 시민들의 뜨거운 박수와 함성이 쏟아집니다. 제주에서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특별한 주제 없이 두 분이 편하게 이런 저런 대담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박경철 : 안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장학생이었을 것 같은데, 대학까지 오면서 좌절이나 두려움을 겪어보신 적 없는가?
- 안철수 : 여기서 반전이 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중간 밖에 못했다. 10년 전에 MBC 성공시대라는 프로에 출연하면서 초등학교 때 공부 못했다고 하니까 PD분이 초등학교에 가서 성적표를 가지고 왔더라. 방송에서 전 국민들이 제 성적표를 보게 되었는데.. 제일 잘 한 것이 우, 미 그리고 체육은 양이었다. 유일하게 수가 하나 있었는데, 제 이름에 수! (웃음)
- 박경철 : 회를 거듭할수록 위트가 장난이 아니다. 학창시절 두드러진 재능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변신의 계기가 무엇인가?
- 안철수 : 초중고 때 공부 잘해서 순탄하게 좋은 의대를 갔다면, 다른 쪽으로는 시선도 안 돌리고 지금도 의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못해서 주위에서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마음대로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었다. 소설책 과학책 동화책 종류별로 닥치는 대로 책을 봤다. 이제까지 평생 읽은 책 중에 절반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읽은 것이다. 이 책들이 밑바탕이 되어서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영향을 미쳤다. 성적순으로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조건이 똑같은 사람도 사회에 나와서 운명을 나뉘게 하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얼마나 창의적인 생각을 하느냐. 둘째, 도전정신이 있느냐. 셋째,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이 있느냐. 즉 넓게 바라보고 다른 분야에 대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느냐.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2~30년 뒤에 더욱 확연히 발전한다.
- 박경철 : 나의 뚜렷한 가치관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나가야 한다. 예를 들면, 열심히 산을 향해 올라갔는데 알고 보니까 더 좋은 산이 옆에 있다. 평생을 두고 이뤄왔던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허망해진다. 다른 사람이 이미 갔던 길로 가면 쉽지만 종속되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가면 힘들지만 나의 길이 된다. 안선생님도 분명히 그런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 안철수 : 한 번도 안정과 전망을 쫓아 결정내려 본 적이 없다. 도움 될 만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다. 안연구소에 전설적인 프로그래머가 있었는데, 안연구소를 그만두고 증권회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덜컥 암 진단을 받았다. 그 사람이 블로그에 이렇게 올렸다. 암 진단을 받으니까 자기가 믿어왔던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더라고... 그 뒤에도 새롭게 깨달은 것을 블로그에 계속 올렸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에 대해... 여러분들도 소중한 것을 항상 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후회하면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일을 택했다. 죽을 때가 되면 무엇이 소중한지 비로소 알게 된다. 죽을 때가 되지 않았더라도 무엇이 소중한지 인식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후회없이 살 수 있다
- 박경철 : 안연구소가 어렵던 시기에 ‘천만불 주겠다’는 인수 제안을 받았다. 그때 돈을 받았다면 지금쯤 그리스 앞바다에 요트 띄우며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러셨는가?
- 안철수 : 초심이 중요하다. 의사를 버리고 이쪽으로 온 것은 이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서 한 것이지 돈을 위해서 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 때 팔았으면 지금 V3 백신은 없다. 백신가격은 엄청 올랐을 것이다. 예를 들면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가장 싼 나라는 우리나라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글이 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비싼 가격에 팔 수가 없다. 저는 돈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민 없이 거절했다. 열심히 일하다보면 초심을 잃을 수 있다.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책을 써가면서 아직도 초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책 대로 살고 있다. 적어 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어려울 때마다 적어 놓은 것을 다시 보면서 방향을 잡아나가면 좋겠다.
- 박경철 : 앞으로 여러분의 시대는 스펙으로 줄을 서서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다. 변화로 상징되는 큰 물결이 토네이도처럼 몰려오고 있다. 전통적인 업종들이 흔들린다. 혁신의 길에서는 스펙경쟁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새로운 시대가 왔을 때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게 여러분의 과제이다. 변화하는 여러분의 시대는 어떨지 이야기를 나눠보자.
- 안철수 : 대기업이 만들 수 있는 일자리 2백만개, 공무원 1백만개, 나머지는 2천만명은 중소기업 또는 창업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니 중소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그러니 2~30대가 모두 대기업과 공무원 쪽으로만 나아가려 한다.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 스펙을 쌓는다. 삼성이 안전적인 직장이 아닐 수 있다. 큰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시야를 다른 곳으로 옮겨라. 제대로 잘 준비만 하면 창업으로 성공할 수 있다. 만약 실패해도 금융사범이 안 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창업하지 말고, 우선 중소기업에서 먼저 2~3년 일해라.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관행, 업무, 사람 즉 인맥을 알 수 있다. 중소기업을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창업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경험한다고 생각해라.
창업에 실패해도 금융사범이 안 될 수 있는 3가지 방법을 알려주겠다.
2. 자신이 잘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들기 보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라.
3. 한꺼번에 하려하지 말고 점진적으로 실행해라.
이렇게 하면 실패확률을 10분의1로 줄일 수 있다. 1번 원칙은 2명 내지 4명이 좋다.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전공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다양한 사람으로 팀이 구성되어야 한다. 악셀과 브레이크 같이 한 사람은 지르는 성격이면, 한 사람은 꼼꼼하게 점검하는 성격이 좋다. 가장 안 좋은 예는 같은 전공에 매일 만나는 술친구끼리, 같은 성격의 사람들끼리 창업하는 것이다.
다양성이 있되, 정말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 같아야 한다. 돈이 중요한지 성취가 중요한지, 주주관계 중심인지, 이해관계 중심인지, 내 인생의 몇 년을 투입할 것인가?..... 등등등 가치관은 같아야 한다. 한꺼번에 헤치우려 하면 나중에 망했을 때 재기하기 힘들다. 최대 절반배팅이다. 1단계에 이룰 수 있는 사람을 뽑고, 2단계 올라가면 더 뽑고, 안되면 다른 방향으로 이렇게 점진적인 방법으로 해나가면 실패해도 크게 망하지 않고 다시 재기할 수 있다.
두 분의 대담이 끝나고 청중들로부터 문자 질문을 받았습니다. 수십 개의 질문들이 쏟아졌는데, 재미있는 질문들이 많아 계속 웃었습니다. ㅋ
- 안철수 : 저는 한 번도 지운 적이 없으니까 알약사장에게 물어보시라.(웃음)
- 안철수 : 8대2도 바꿀 자신은 있다.(웃음)
- 문자질문 : 학창시절 나쁜짓 좀 하셨는지?
- 안철수 : 선생님한테 말 안하고 영화 본 정도가 다다.
- 문자질문: 18살 여고생인 제가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 박경철 : 훌륭한 학생이다. 많은 사람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그 불을 끄기에만 급급하다. 그런데 내 발등의 불만 끄면 왼발에, 머리에, 옷에, 옆에 사람에게 불이 붙는다. 그래서 다 죽는다. 이것보다는 양동이에 모든 사람이 물을 길어서 같이 불씨가 날아오는 곳을 향해 물을 부어라. 개인적인 어떤 것에 분노하지 마라. 공분을 해라. 상대가 분노하거나 내가 상대에게 분노했을 때는 내가 잘못했을 확률이 반반이다. 나의 문제는 아니지만 같이 분노해주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그렇게 됐을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런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나중에 우리나라 지도자가 되면 좋겠네요.
▲ 좌석이 부족해 통로까지 꽉 메운 제주도의 시민들^^
이 외에도 청중들의 몇 가지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대담이 이어지는 2시간 내내 안철수 교수의 썰렁한 농담에 간간히 웃음이 터져나왔고 금새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에는 청춘콘서트를 준비한 봉사자들이 ‘젊은 그대’ 노래에 맞추어 율동을 보여주었는데, “청춘이여 희망을 노래해불게마씸~” 하는 글자판을 보여주더군요. 여기서 또 빵 터졌습니다. 물어보니 “노래래합시다” 는 뜻의 제주도식 존댓말이라고 합니다. 제주도의 지역 특색을 곳곳에 표현한 봉사자들의 정성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이후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