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동안 한국 정치판 뒤흔든 ‘안철수 신드롬’ 돌아보니
(서프라이즈 / 내가 꿈꾸는 그곳 / 2011-09-07)
안철수는 포석 하나로 이미 대한민국을 품에 안았다.
50대 5를 포기한 위대함을 그 누가 모를까.
그의 첫 포석에 한국의 정치판이 숨을 죽이고 있다.
그 현장으로 가 볼까.
닷새 동안 대한민국 정치판의 바이러스를 잠재운 <안철수의 무료백신>은 매우 강력했다. 안철수는 닷새 동안 정치판에 불어닥친 태풍의 눈이었으며 정치판이 생전 경험하지 못한 ‘울트라파워 헥토파스칼’의 초강력 태풍 앞에서 숨을 죽이며 그저 하루라도 빨리 태풍권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을 달랐다. 안철수 백신이 겨냥하고 있는 바이러스들이 움츠러들며 자지러질 때 통쾌해하며 정치권이 둔 자충수의 결말이 패착에 이를 것이라는 걸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무림의 고수들이 바둑판 앞에서 돌을 하나둘씩 놓을 때마다 탄식을 하거나 놀라워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지난 닷새 동안 안철수가 깔아 둔 정치적 포석은 이명박 정권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에게 대마를 잡을 희망의 수이자 자칫 돌을 던져야 할 절망의 순간에 ‘정석’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통쾌한 포석이었다. 언뜻 보기에 안철수는 기득권 전부를 후보단일화를 통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돌려준 것 같았다. 그러나 여야를 막론하고 타 후보군에 비해 두 배나 되는 기득권을 버리고 후보단일화를 한다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일이었다. 무림의 고수가 정석과 꼼수가 뭔지 가르쳐준 단 한 번의 포석이라고나 할까. 우선 정석과 꼼수가 뭔지 대략 살펴보기로 한다.
흔히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바둑판 자체가 세상의 모습이며 바둑알은 세상 모든 만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바둑에도 생로병사가 존재한다는 거 ‘동네바둑’ 정도의 실력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바둑에는 정석과 꼼수가 동시에 존재하는데 동네바둑과 무림의 고수로 일컫는 ‘선수’들의 바둑이 보이는 차이점이다. 고수들에게 꼼수는 통하지 않으며 정도라 일컫는 정석만 통하게 되므로 스스로 꼼수로 바둑을 즐기고 있었다면 바둑을 계속 둬야 할건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글쓴이의 작은 경험을 나누며 안철수 백신에 잠시 맛보기로 하는 것이다. 바둑은 반드시 선수가 되어 바둑을 두지 않아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는 게임이다. 오죽하면 ‘뺨을 맞아가며 훈수를 둔다’는 말이 생겼겠나. 비슷한 일이 글쓴이에게 적용될지 까마득히 몰랐던 때가 있었다.
아들넘이 초딩 2학년 때쯤이다. 대략 나의 실력은 동네바둑 6~7급에 해당하는 것이었는 데, 그런 실력(?)은 오래전 형들이나 어른들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일 뿐이었다. 따로 바둑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바둑공부를 따로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로 나 같은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정이 주로 이러하므로 바둑판이 주위에 있으면 거기서 거기인 실력차이 때문에 흑과 백의 돌을 서로 번갈아 가며 두기 일쑤였다. 물론 동네바둑이어서 물려주는 건 기본이고 꼼수가 난무했다. 동네바둑의 가장 큰 특징은 꼼수(암수)로 상대를 속여먹는 것이다. 상대를 속여 낭패하게 만들며 승리하는 쾌감을 맞보며 즐거워하는 게 동네바둑이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게 시련이 닥쳤다.
바둑돌로 오목이나 두며 바둑돌 치기를 즐기던 아들넘이 어느새 고수로 성장하고 있었던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녀석은 최초 아빠 앞에서 까만 돌을 새까맣게 깔고 단수에 걸려들면 신기해하는 한편, 패배에 대한 분노(?)를 느꼈는데 무림의 고수로부터 정석을 사사 받으며 점점 나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새까맣게 깔았던 돌의 수가 점차 줄어들 즈음 녀석은 이미 ‘영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들을 대동하여 친구와 함께 낚시를 떠나 고기를 낚는 재미 따위는 아들넘에게 일찌감치 사라져 가고 있었다. 녀석은 수로 곁 논두렁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두툼한 정석 책을 펴 두고 정석 삼매경에 빠져있는 것이다.
지 애비에게 참 낯선 풍경이었는데 녀석은 정석에 몰두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바둑학원과 책 방에 들러 내공을 쌓는데 충실했다. 같은 또래의 친구가 아빠 곁에서 지렁이 꿰는 법을 배우며 고기잡이에 열중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아들넘이 바둑의 정석에 얼마나 심취했으면 친구가 ‘영감탱이’ 같다며 수군거릴 정도였을까. 나는 아들넘이 너무 기특하여 죽을 맛이었는 데 그 기특함이 애비의 자존심을 팍팍 뭉갤 줄 꿈에도 몰랐다. 주지하다시피 모녀지간과 부자지간이 어떻게 다른지 알 게다. 모녀지간은 서로의 형편을 수평적으로 진지하게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는 데 비해 부자지간은 영원한 라이벌 관계로 수직적 경쟁 관계 내지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게 눈에 띄게 도드라진다. 그 경험을 하필이면 아들넘이 내게 보란 듯이 압박을 가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부터 ‘아빠, 바둑 둬요’라며 시작된 승부의 세계는 아들이고 아빠고 가릴 것 없었다. 이런 게 진검승부였던가. 녀석은 어느덧 아빠의 꼼수를 피해 저만치 깔아둔 포석으로 야금야금 아빠의 영토를 잠식하며 지배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때쯤 나는 녀석에게 생전 처음으로 비굴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돌을 물려가며 아들넘에게 ‘그게 아니다’라며 박박 우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가 심각하여 마침내 바둑판 위의 까만 돌과 하얀 돌을 두 손으로 쓸어담으며 항복의 의미로 녀석의 실력을 인정했다. 굴욕의 순간이었지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었던가.
그때가 아들넘이 초딩 2학년 때였으므로 정석과 꼼수의 차이가 어떤지 단박에 알 수 있지 않나. 그 이후로 녀석은 바둑에 재미가 들려 가끔씩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오늘은 8점 깔아줄게요…. ᄏ” 녀석이 말한 의미가 무엇인지 바둑을 둬 본 사람들은 다 알 게다. 그런 아들을 향해 뭐라 대답해야 하겠나. 10점 깔아달라고 해야겠나. 아니면 질 걸 뻔히 알면서 4점만 깔자고 할 건가. “됐다!!~욘석아 ㅜㅜ” 이 같은 시츄에이션은 동네바둑의 꼼수가 ‘고수의 정석’에 반드시 무너지는 경우의 수 라고나 할까.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주민투표 놀이에 열중하던 한나라당의 오세훈이 보따리를 싼 직후, 이명박 정권의 정치검찰은 즉시 곽노현 교육감 음해 작전에 돌입하는 꼼수를 부렸다. 이유가 무엇이겠나. 저축은행 사기사건에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관여된 의혹이 포착된 게 들통나는 날이면 그들 모두 정치판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며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부정부패 전부가 오세훈이 보따리 싼 날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주지하다시피 오세훈이 보따리를 싸고 쫓겨난 배경에는 그가 단지 주민투표에서 개표도 하지 못하는 25.7% 때문이 아니란 거 다 안다. 오세훈이 보따리를 싼 이유 중에는 이명박 정권이 오세훈 등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 후보들의 당선을 돕기 위해 <천안함 침몰사건을 조작질> 하며 북풍을 일으킨 게 주요 원인이었다. 아울러 천안함 침몰사건을 조작질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4대강 죽이기 사업> 때문이었다. 기억을 되돌려 보면 당시 상황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최대 이슈는 4대강 사업이었으며, 종교 4단체 등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을 통째로 압박할 때였다. 이명박 정권이 맞이한 최대의 위기를 그들은 천안함 침몰사고를 조작질하며 한반도에 전쟁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볼모로 전쟁불사를 외친 6.2지방선거에서 이들 수꼴 무리들은 참패를 당했다. 전쟁과 평화의 등식으로 민주당 등 야권의 압승으로 끝난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의회와 구청 다수는 민주당의 손에 접수된 사건이 천안함 침몰사건 조작질로 일으킨 북풍이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살아남은 오세훈이 식물시장이 된 건 물론이고, 한강르네상스로 포장된 4대강 죽이기 사업의 실체가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었다. 나랏돈을 날치기한 4대강 예산 수십조 원과 서울시 예산 수십조 원 거의 전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팔촌 내지 한나라당 무리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쓰여지고 있던 게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오세훈이 무상급식을 반대한 이유는 딴 데 있었다. 이른바 꼼수였고 시민들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려 이들이 착취한 것과 다름없는 국고낭비 또는 서울시 예산 낭비 등 실정을 감추고 싶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곽노현 교육감 음해 사건은 그 연장선에 불과한 실정을 가리기 위한 조직적 꼼수였을 뿐이다. 그들은 뻔히 드러나 있는 사실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듯 하고 있었는데 우리 국민들이 그걸 모를 리 있나. 먹고 살기 바빠 관심을 가질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썩어 자빠지고 문드러진 정치판에 환멸 이상의 절망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닷새 동안 한국의 정치판에 불어닥친 ‘안철수 신드롬’은 그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판이었다. 안철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매우 겸손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서울시장직 지지의사를 표명해 준 50% 이상의 사람들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가져다 준 반사이익” 정도의 취지로 답하고 있었다. 누가 안철수를 가리켜 아마추어라 할 수 있나.
관련 포스트를 통해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안철수가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일을 해 왔는지 등에 대해 너무도 잘 안다. 괜히 TV 앞에서 국회의원들이 청문회라는 이름을 빌어 쌩쇼를 연출하며 ‘검증작업’을 벌이는 것과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이틀 전 안철수가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시장 불출마 내지 ‘박원순 단일화’를 공표하기 직전, 일찌감치 떡실신에 이른 한나라당은 황우여 원내 대표를 통해 다시금 주제넘은 발언을 통해 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은 안철수와 박원순의 단일화 과정을 아예 ‘좌파 정치쇼’쯤으로 규정하며 한편으로는 안철수를 검증 하겠다는 주제넘은 뻘짓을 통해 넋이 나간 좀비 흉내를 내며 손사래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 추잡함의 정도는 상상이상이란 거 모를까.
이들은 안 교수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 입장을 명확히 한 만큼 안 교수에 대해 미련을 갖기보다 보수층의 결집을 도모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 따라,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 재산문제 를 비롯한 본격적인 검증 카드를 꺼내 들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웃기는 짬뽕들 아닌가. ‘똥 묻은 개 겨 묻은 봉황 나무라는 격’이라고나 할까. 이들은 극도의 패닉상태에서 “안 원장이 너무 건방지다는 생각도 든다” 며 “‘역사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고 했는데 이번에 좌파라고 선언한 것 아닌가 싶다. 이념적 좌파라기보다는 강남 좌파에 가까운 것 같다” 고 비판했다. 또 “반한나라당 선언은 오히려 잘됐다. 빨리 안 원장을 포기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면서 “어제 한나라당이 완전히 패닉이었는데 이제 기류가 좀 달라졌다” 고 말하며 자위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런 자위는 이어지고 있었다. 한 친박계 아무개는 “IT 전문가라고 해서 정치를 잘하겠느냐” 면서 “안 원장이 뭐가 검증이 됐느냐. 예전 운영하던 회사 내에서도 내분이 있어 몇 분이 물러섰다지 않느냐” 라고 지적하기도 했고, 또 다른 친박계 아무개도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은 금세 사라진다. 정치를 너무 순진하게 보는 것 같다” 고 평가절하하고 나서는 등 안철수 백신의 위력 앞에서 후덜덜 떨며 대책 마련에 고심이었다. 이들이 안철수를 검증해 보겠다는 건 주로 안철수 원장의 재산 문제였다. 참 치졸함 이상의 지저분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관련 기사에서 눈에 띄는 유승민의 발언 하나 더 살펴볼까. 유승민은 “안철수 바람이 분다고 할 때 우리 당은 정책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고 발언하고 있었다. <출처 :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1/09/06/0502000000AKR2011090607230000... >
그들이 처한 상황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구태’ 그 자체 아닌가. 그동안 이명박 정권의 한나라당이 정책적으로 한 일이 뭐가 있나. 4대강 죽이기?… 3년 내내 예산 날치기?… 전직 대통령과 국무총리 죽이기?… 한강르네상스?… 저축은행 사기사건?… 747?… 천안함 침몰사건 조작질?… 좌파척결 전쟁?… 곽노현 교육감 죽이기?… 대략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사건들만 떠올려도 이명박 정권이 우리나라와 국민들에게 지은 죄과는 필설로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 이상의 사악하고 추잡한 모습 이상이다. 금수나 할 짓이지 차마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상이 아니란 말인 데, 이들은 그 죄업을 전혀 모르거나 애써 숨기며 안철수 원장을 향해 검증 운운하고 자빠진 것이다.
언급한바 동네바둑의 가장 큰 문제는 정석이라는 기본기가 안 된 것이며 꼼수로 무장하여 반칙이나 일삼는 게 한계이다. 이명박 정권을 축으로 모여 있는 수꼴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동네바둑 이하의 반칙만 난무하는 정치판이었다. 그런 정치판에 안 교수가 어느 날 우연히(?) 등장하여 국민적 심판(?)에 직면하자, 국민적 멘토였던 안 교수에게 너도나도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안 교수가 수꼴들처럼 누구를 가르치려던 경우 봤나. 국민 누구를 검증해 보겠다며 나선 적 있나. 그는 늘 수평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그 자신부터 언행을 조심스럽게 해 왔다. 뿐만 아니라 그는 CEO의 중책을 수행해 오는 동안 그 자신을 드러내 보인 경우를 찾기 힘들다. 오늘날 정치판에서 지지율에 목숨을 거는(?) 정치인들과 전혀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다.
다행히도 지난 닷새 동안 민주당(문재인)이 안철수 교수에게 보여준 배려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안 교수가 무소속 카드를 매만질 때 한나라당에 어부지리를 주는 무모함에 대해 충고하고 있었으며, 안 교수를 민주당으로 적극 영입해 보려는 시도도 보였다. 다우너 소처럼 보수로 주저앉아 있던 진보의 애처로운 구애 모습이자 진보로 나아가는 진일보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수꼴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 얼마를 공유하거나 동시에 안고 있는 곳이어서 안 교수에 대한 비토도 무시할 수 없었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쓸모없는 당헌·당규의 제도에 얽매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문재인 이사장의 행보는 단연 돋보였다. 아마도 문 이사장은 안 교수의 수를 헤아리며 수담(手談)을 나누고 있지 않았을까.
닷새 동안 대한민국 정치판을 뒤흔들며 개혁을 요구(?)한 안 교수는 그에게 주어진 50대 5의 절대적 기득권을 포기하며 다시 한 번 멘티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한 번 ‘얼떨결에(?) 서울시장 후보 출마론에 휩쓸렸을 뿐이며, 자신을 지지해 준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우리 정치판에 대한 심각한 불신이 자신을 통해 나타났을 뿐’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랬지.
안철수 원장 기자회견 전문
“오늘 존중하는 동료이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습니다. 박 변호사는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며 시민 사회를 위해 노력하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하실 분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민심을 쉽게 얻을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게 보여주신 기대 역시 우리사회 리더십에 대한 변화 열망이 자신을 통해 표현된 것이라 생각 합니다. 저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성원해주신 분들을 잊지 않고 사회를 먼저 생각하고 살아가는 정직하고 성실한 삶으로 보답 하겠습니다. 더불어 경쟁으로 살아가는 미래 세대들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
어떤 분들은 안 교수의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국민적 지지라면 안 교수는 서울시장 직뿐만 아니라 그 어떤 직도 잘 수행해 낼 수 있는 사람인데 출마를 포기하는 걸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기성 정치인들이라면 이런 경우 ‘얼씨구나’ 하며 함부로 날뛸 것이다.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올려놓으면 그만일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될 것이나 안 교수는 달랐다. 안 교수가 정치판과 정치인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어 놓은 시간은 불과 닷새밖에 없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는 현실 정치의 높은 벽 앞에서 잠시 망설이기도 했을 것이며, 바둑돌을 만지작거리며 다음 수를 계산하듯 정치판이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는 수를 가늠하고 있었을 법하기도 하다. 안 교수는 최소한 바둑의 정석을 아는 사람이자,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이웃에 미치는 영향 등을 늘 입체적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던 사람 아닌가. 그래서 안 교수가 기자회견장에서 잠시 내비쳤던 얼떨결의 출마 모습이나 미소의 의미 가 대한민국을 포용하는 큰 포석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퍼뜩 드는 것이다. 안 교수가 뜻을 두고 있는 건 현재의 정치구도 속에서 목숨을 걸고(?) 수행해야 할 서울시장직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대한민국을 세계에 올려놓기 위한 대권을 향한 꿈을 키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게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그 첫 시험대가 지난 닷새 동안 우리 사회를 안철수 신드롬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포석으로 간주되며 우리나라 정치판의 개혁 신호탄 같이 여겨진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나락에 빠뜨린 이명박 정권을 참조하면 정치는 개나 소나 다 하는 곳처럼 여겨진다. 사기꾼도 대통령이 될 수 있으며, 오죽하면 행불상수나 홍준표도 한나라당 대표가 될 수 있는 곳이겠나. 굳이 이명박 대통령의 사례를 끄집어 내야겠나. 정치판이 국민적 사기꾼들의 총집합 장소인지 정치인=사기꾼 내지 협잡꾼이라는 등식은 고전이 된 지 오래다. 그런 인간들이 안 교수가 서울시장 출마설에 시달리는(?) 동안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건방지다는 등 검증해 봐야 한다는 등 거의 양아치배 수준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끄집어 낸 일성은 여전히 좌파밖에 모르는 안상수의 전매특허인 ‘좌파’였다. 안 교수를 당장 ‘강남좌파’로 매도하고 나선 것이다. 참 희한한 인간들이자 정치판 모습 아닌가.
※ 포스트에 등장하는 흔하디흔한 풀꽃은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들꽃이다. 눈여겨보면 너무도 아름다운 꽃인 것을….
이런 본색을 다시금 드러낸 것도 안철수 백신의 위력 때문이었으니 민주당 등 야권이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자명해 보인다. 안 교수가 과감하게 버리며 멘티들에게 감동을 선물한 기득권 50대 5 를 그대로 적용하시기 바란다. 그렇게 하면 야권은 서울시장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필승의 깃발을 날릴 것이다. 안 교수가 기자회견에서 “우리사회 리더십에 대한 변화 열망이 자신을 통해 표현된 것” 으로 언급한 것처럼 안 교수의 지지율이 시사하는 바 큰 게 가장 먼저 ‘야권의 변화’라는 거 깊이 반성해야 할 때다. 그는 아직 정치에 입문한 정치인이 아니지만, 우리 정치판 곳곳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정치 9단의 고수이며 정치의 정석을 실현하고 싶은 준비된 미래의 지도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네 정치판은 꼼수가 횡횡하는 동네바둑과 다름없는 곳이어서 ‘우물안의 개구리’ 정도로 보면 될까. 닷새 동안 대한민국 정치판의 바이러스를 잠재운 <안철수의 백신>은 매우 강력했다. 동시에 그의 백신은 매우 따뜻한 온풍를 퍼 나르며 사람들로 하여금 희망에 들뜨게 하고 감동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미래의 정치에 대한 환상을 보았을 것이며 그 환상 속에 맨 먼저 나타난 게 통합된 야권의 모습일 것이다. 또 안 교수가 열정적으로 보살피는 대한민국의 미래상일지도 모른다. 안 교수가 꿈꾸는 세상의 모습은 “사회를 먼저 생각하고 살아가는 정직하고 성실한 삶으로 보답” 하는 정치이다. 이명박 정권이 국민들로부터 송두리째 빼앗아 간 절망의 정치를 회복하는 희망의 정치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꿈꾸시던 ‘사람사는 세상’을 실현하는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이다. 안철수 원장의 ‘통 큰 포석’의 메아리가 너무 크게 들려온다.
내가 꿈꾸는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