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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병합조약’이 공포된 지 107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일제의 한국 강점’, ‘한일병합’, ‘한일합방’, ‘경술국치’ 등 여러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형식상의 문제일 수는 있으나 분명히 짚어 둘 점이 있습니다.
조약 공포와 동시에 일본 왕의 칙령으로 여러 법령이 공포됩니다. 그 중 제318호는 “한국의 국호를 고쳐 지금부터 조선이라 한다.”였습니다. 이 조문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주권만이 일본 왕에게 양도되었고, ‘국호’는 조선으로 변경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조약상 '한국병합'의 주체는 '일본 왕'이었습니다. 빅토리아가 영국 왕인 동시에 인도 황제였듯, 이 시점에서 한국은 일본의 영토로 편입된 것이 아니라 일왕에 의해 별도의 통치를 받는 독립된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내각은 한국 통치에 간섭하지 못했고, 일왕의 위임을 받은 조선 총독이 입법, 사법, 행정, 군사의 전권(全權)을 행사했습니다. 조선을 별도의 ‘나라’로 남겨 둔 이 칙령은 조선인을 일본 ‘국민’과 동등하게 대접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차별의식의 소산이었습니다. 이 칙령에 따라 조선인은 일본 왕의 통치를 받으면서도 일본 국민은 아닌 어정쩡한 지위, 즉 식민지 노예라는 법적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이전, 한국의 주권은 ‘한국민’이 아니라 한국 황제인 순종에게 있었습니다. ‘한국병합조약’은 순종이 가졌던 주권을 일왕에게 양도하는 형식을 취한 거죠. 한국의 ‘국호’는 조선으로 바뀌었지만, ‘국민과 영토’는 일본에 ‘병합’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은 총독이 일왕을 대리하여 통치하는 ‘별개의 나라’였고, 조선인은 ‘일본인’이 아니었습니다.
1919년의 3.1운동은 이런 상태에서 일어났습니다. 순종이 한국민의 동의 없이 일왕에게 양도한 ‘주권’을 한국민 스스로의 의지로 되찾았음을 내외에 천명한 것이 ‘기미독립선언’입니다. 인민과 영토는 그대로이니, 주권만 회복하면 온전한 국가를 재건할 수 있다는 거였죠.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한 것도,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순종이 주권을 양도해야 할 상대는 일왕이 아니라 대한제국 국민이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봅니다. 실제로 한국민의 ‘일부’는 ‘주권국가’의 국민이거나 군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해마다 삼일절 기념식을 치렀고, 한국민의 자격으로 한국 영토 안에 침입해 온 일본 세력에 맞서 싸웠습니다.
지금도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삼일운동 이후 ‘주권자 의식’을 버리지 않았던 한국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일왕을 한국의 ‘정당하고 유일한 주권자’로 승인하는 것입니다. 건국절 제정론자들은 걸핏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말하지만, 그들이 계승한 ‘정통성’은 ‘일왕의 주권’에만 복종하고 ‘한국민의 주권’은 부인했던 식민지 노예의 정신일 뿐입니다.
98년 전 이라면... 우리는 손에 손에 다 태극기를 들었겠죠 ... 겨울내내 촛불을 들었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