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은근히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요.정확하게는 얼마전이 아니군요.
이제 5살된 아들과 14살된 딸을 둔 43세 엄마예요.
그전엔 얌전한 딸을 키우면서 조금씩 고학년으로 올라가는 동안 점점 제 시간도 늘어나고
도서관에 가서 6권정도의 책을 빌려와 자주 읽을 수도 있었고,
누군가의 소개로 우연히 어린이집에서 돌전의 아기들 두명을 돌보면서 바쁘게 지내던 날도 있었어요.
그때가 참 좋았죠.
혹시 오해하실수도 있으실까봐 어린이집에서의 교사생활은 몇년전에 취득해두었던 보육교사자격증이 있어서 가능했었어요.
그래도 정교사로 들어간게 아니어서 10시부터 4시까지 일하느라 월급은 70만원정도 받았었어요.
그런데도 10년가까이 전업주부로만 지내다가 한달마다 돈이 들어온다는 생각에 참 고맙게 성실히 일했는데
그와중에 주변에서 아직 아들을 바라는 친정엄마및 남편의 뜻대로 덜컥 임신이 되었어요.
요즘은 초산도 많이 늦는 추세라던데
그래도 한편으로는 막상 친정엄마한테도 말해지기가 선뜻 꺼려지더라구요.
조금은 남사스럽기도 했고.
그러다가 , 잠도 못자고 밥도 잘 못먹어가면서 아기를 키워서 14개월쯤 되었을 무렵이니까
초가을 무렵부터는 더 유모차를 끌고 밖엘 나갔어요.
동네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2,3년정도는 흐지부지 연락 끊어졌던 (큰애가 어린이집 다닐때 알게된 엄마)
훈이 엄마를 정면으로 마주쳤어요.
"어! 본인이 낳았어? 그리 젊은 나이도 아니고 이야~나도 모르게 몰래 낳은거야? 그럼 즐겼다는 얘긴데..
가만있자!!아들이야?"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기를 들여다보면서 큰소리로 감탄사를 연발하고 놀라워하는 훈이엄마의 기세에 눌려서
저도 아들이라고 말했어요.
"난 말이야, 자기는 아들 못낳을줄 알았어~딸만 낳을것 같았거든. 그럼 그때 재미좋았던거야? 남편분도 능력있네.능력
자야, 어쩐지 자기 볼때마다 엉덩이가 커지는 것같았는데 속으로 애들은 잘낳겠네 라고 생각했었거든. 근데 애는 언제 키워? 애 키우다가 먼저 늙어버리겠넹."
나이가 저보다 두살 많은데 그 엄마는 말하는 게 너무 옛날 할머니같다는 생각이 늘 들었어요.
그러고보니, 그 엄마랑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도 그게 궁금했어요.
나이가 45세면 그리 늙은 나이라고 볼수도 없는데
왜 말하는게 그리 올드하지?
그리고, 예전에도 길에서 어쩌다 한두번 마주치면 늘 엉덩이가 커진것 같고 팔뚝도 살이 붙어 뚱뚱하다고 했었어요.
그때는 임신도 하지 않았고 키는 160센치정도에 52밖에 나가지 않았을때인데도 그런 말을 잘했었어요.
물론 그 엄마는 그런 저보다 더 말랐었어요. 원래가 마른 체형이었던것 같아요.
속으로 전 미리 걱정을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임신했다고 말하는 순간 속으로 성관계 하는 장면을 떠올릴까?하는 걱정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가 한명 있는데
그 친구는 결벽증이 심한데다가 미술을 전공한 편이어선지 마음도 여리고 성격이 다소 예민한 편이에요.
완벽주의자적 성향도 짙어서 맘에 드는 사람을 못만난것 같기도 하고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임신하는 과정이 싫다고, 결혼식 올리는 사람들 뒷모습 보면서 그날 치르게 될 어떤 일들이 그려진다고
임신했다고 말을 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그 무언가가 자존심상한다는
말을 했었어요.
그런건가봐요.
사실은 말을 안할뿐이지, 그냥 함구할뿐이지..
다 그런 생각 하는가봐요.
그렇게 이해는 하면서도
2,3년만에 아니 어쩌면 더 오랜 세월이 흐른뒤에 우연히 마주친건데도
겨우 그정도의 말밖엔 건네주지 못하는건가.
너무 씁쓸한거에요.
그후로도 그 훈이엄마를 두번은 마주친것 같았는데
저도 더이상은 좋은 감정이 생겨나지 않았어요.
같이 있으면 피하고 싶은 기분이더라구요.
가끔은 사람에게도 예의는 필요한가봐요.
솔직한 게 좋다고는 하지만
민낯을 다 드러내고 입가에 웃음을 띄우고
서슴없이 그런말을 마트에서 하기는 쉽지않은걸텐데요.
왜 그랬을까요.
전 그 훈이엄마한테 나쁘게 기억되지 않은걸로 알거든요.
한번도 똑같은 말로 응수한적이 없었던것은 확실하거든요.
그래서 늦둥이를 다시 키우는 이 더운 여름날,
가끔은 자식도 좋지만 , 나라는 사람을 한번쯤 믿어주고
이해해주는 타인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나보고 싶어요.
오늘 이상한 얘기 쓰면 안되는데
아이가 일찍 잠드니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어서
82님들께라도 털어놓고 싶었어요.
우린 빛나던 20대도 보내고, 아기낳던 순간도 있고
아기를 키우면서 빨래도 널고 저녁이면 가족들을 기다리면서
된장찌개도 끓이면서 바뀌는 계절마다, 손수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