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늦둥이아들이랑
저녁 다섯시쯤에 밖에 나왔어요.
흐린 회색빛하늘을 살짝 받치고 서있는 나무들사이로
바람이 물결처럼 잔잔히 일렁이는 것을 보고
씽씽카를 타고 동네한바퀴 돌아다닐 생각으로
횡단보도앞에 서있자마자
굵은 빗방울들이 떨어지네요.
엄마, 코위로 한방울 떨어졌어.
오,그래~~ 그럼 집에 가야겠네. 이제 비가 더올텐데.
아니야, 난 이런날이 좋아.
비오는 날, 씽씽카타고 달리면 시원해.
결국
우리는 30분동안 비를 맞으면서
동네한바퀴 돌았어요.
전 두다리로 쫒아가고
아이는 씽씽카 타고 가고.
이슬비노래를 부르면서
저만치 씽씽카에 몸을 실고
멀어져가는 아이의 옷자락이
바람결에 부풀어오르는 모습이
자유로운 영혼같아요.
금새 머리도 옷도 다 젖었지만
홀가분해하는 아이.
집이 가까워질무렵 눈앞에 보이는 산등성이가
번개에 몇번 빛나고 참새들이 오르내리길 반복하는 동안
저녁도 그나마 빛을 잃고 땅거미가 지는 여름날.
그 폭염도 이젠 빛을 잃고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에도 가을이 실렸어요.
며칠전 버스에서 내릴때
미처 챙기지 못했던 아이우산이 더럭 생각나서
눈앞에서 사라진 버스는 이미 없는데
너무 안타까워 잠시 서있었던 그 언젠가도
아무렇지 않아요.
그 우산, 하루전에 샀던 18000원짜리 터닝*카드
아이도 저도 이틀은 버스의자등받이에 달려 떠나갔던
그 우산의 행방을 궁금해했었던 날도 이젠 희미해져가는걸 보면
이제 여름도 정말 종점인가봐요.
잘가요,여름.
너무 뜨겁고 더워서 눈물날정도였어.
아이랑 길을 걸을땐 그 산책이 고행인것만 같았는데
한편으로는 비오는 저녁날
아이와 함께 은행나무밑을 달려 간 오늘,
웬일인지 가슴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