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욥.
더블린에서 영어 열공 중인 처자입니다.
일요일 오후에 계획에도 없는 나들이를 했는데
너무 좋아서 82 언니 이모들에게 자랑을 할 겸 ㅋㅋㅋ 쓰는 중이에요.
제 친구 형님 두 분이 신부님들인데, 큰 형 신부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잘 있는거냐고.
당신 친구 부부의 친구가 뉴질랜드에서 와서 다들 저녁 먹으러 가는데
당신이 일이 있고 너무 멀어서 갈 수가 없다고.
그래서 니가 니 여자친구 데리고 가면 좋겠다고.
그쪽에서도 환영한다고 하면서요.
ㅋㅋ 덕분에 신부님 사절단으로 오후에 나갔다 왔어요 ㅎㅎㅎㅎ
제 친구는 더블린에 10년이나 살면서 공부니 실습이니
게다가 저를 생각해서 잡은 직장도 여기고
근데도 도심지에 취미를 못붙였어요.
시내 나가면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돌아와요.
저는 조용한 데서 혼자 지내는 것도 좋아라 하지만
맘먹으면 열심히 돌아다니고 북적거리는 곳이나 먹으러 가는 것도 좋아해요.
할 일 있는데 팽개치고 노는 건 둘 다 못하는 편이고요 ㅎㅎㅎ
제가 배짱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좀 없어욥 ㅋㅋㅋ
이게 제 친구와 저의 공통점이네요 ㅎㅎㅎ
나들이 구성원은
제 친구의 선배이자 큰 형 신부님의 동기인 의사 부부,
그 부부가 봉사하는 수녀원을 통해 대만에서 입양한 꼬마 여자아이 둘,
이 부부의 친구이면서 뉴질랜드에 6년 전 이민간 아주머니와
그 딸 세 명이었어요.
대만 출신 꼬마들은 8살, 6살이었어요. 코카스파니엘 한 마리를 데리고 왔어요.
둘 다 까만 생머리를 찰랑거리면서, 뉴질랜드에서 온 언니들 세 명과 금방 친해져서
다 함께 타잔처럼 날뛰고 소리지르고 잘 놀더라고요.
두 엄마들이 계속 뒤돌아 보거나 뒤로 되돌아 가서 어디에 있나
찾아봐야 했어요.
이 선배는 제 친구와 형들과 다 같은 수도원 학교 출신이이에요.
제 친구가 열 세 살에 그 학교에 입학 하자마자 이 선배는
자기가 활동하는 성가대에 제 친구를 끌어들이고 싶어서 애를 썼는데
제 친구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건 죽어도 못하겠다고 해서 포기했대요 ㅋㅋ
대신에 제 친구는 열 명 정도 밖에 안되는 기도 단체에 들어가서
개근까지 하면서 열심히 활동 (기도)을 했대요. 두 형들은
연극반, 게일릭 풋볼팀 이런거 하면서 원정 경기하러 가고 공연하느라 바빴고!
제 친구는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에 하는 운동시간에만 꼬박꼬박 나가
공을 찼고
나머지 시간에는 외국어 공부에 열정을 ㅎㅎ
매우 bright한 모범생이었다고 하네요 ㅋㅋㅋㅋ
그런데 활발했던 형들은 지금 신부님들이고 제 친구는 저와 함께 있어요.
뭔가요 반전인 듯한 이 기분은 ㅋ
친구의 경건하고 근면성실하고 좀 수줍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증언을 듣는게 깨알 재미였어요.
글렌달록 Glendalough은 더블린에서 남쪽으로 5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에요.
6세기에 세워진 성 케빈의 수도원터가 있는,
웅장한 계곡 사이에 큰 호수 두개가 있는,
그리고 숲속의 산책로와 트래킹 코스가 있는 곳이에요.
더블린 남서쪽인 것 같은데 꽤 높은 지대인지
구릉과 평원과 양떼들을 지나고 자잘한 동네들 모퉁이를 돌아 올라가니
귀가 뻥 뚫렸어요.
차를 주차하고, 호텔과 레스토랑이 있는 복합건물을 지나
수도원 유적 쪽으로 올라갔어요.
수도원 터는 이제 여기저기 들풀 속에 묻힌 채 흩어진 석조 성당들, 계단들,
수도원 입구, 돌담들이 남아있고
그 주위에는 온통 오래된 비석들과 켈트 십자가 석상들로 가득했어요.
외적 침략을 감시하기 위한 감시탑으로 주로 쓰였다는
53미터 높이의 원형 탑이 인상적이었고
성 케빈의 부엌이라고 부르는 돌로 된 오두막 비슷한 작은 건물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요.
오래된 돌벽들 사이를 비집고 핀 들풀들과 비석들을 덮은 이끼 얼룩들은
아일랜드가 비많고 습기 많은 땅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어요.
수도원 터에서 산책로가 이어지는 부근에 바위 무더기가 있었고
한 바위는 넓적한 윗면에 냉면 대접 크기의 구멍이 움푹 패여 있었어요.
제 친구의 설명에 의하면
성 케빈이 있었던 때 어느 날
수도원에서 막일을 하면서 살던 가난한 일꾼의 아내가 쌍둥이를 낳고 죽었대요.
그러나 수도원에는 돈이 없고 마을에서 떨어져 있어서
아이에게 먹일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대요.
그래서 성 케빈이 기도를 드렸더니
매일 새벽, 새끼를 가진 암사슴 한 마리가 숲에서 내려와
그 바위 대접에 자기 젖을 채워주고 갔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걷기 시작한 산책로 주위의 숲속은
습기에 젖은데다가
햇살이 들어 나뭇잎들이 반짝이면서 아른아른거리고 있었는데
그 숲속에 어울리는 동화같은 이야기라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어요.
다른 사람한테서 그 이야기를 들었으면 피식거렸을텐데
자못 따스한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 얼굴을 보니
신비로운 이야기로 가득한 동네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라고 생각했어요.
한편 문제 해결 방법이 참 귀엽다고 느꼈어요.
암소가 한 마리 등장해서 그걸 수도사들이 키워서
아기가 종일 먹고 남을 만큼 우유를 준 것도 아니고
돈 많은 사람이 나타나서 헌금을 왕창 하고 간 것도 아니고
암사슴이 새벽마다 이슬을 밟고 내려와서
살며시 젖을 나눠주고 갔다는 이야기가
제 마음을 따뜻하게 했어요.
사슴 엄마의 마음에 방점을 둔 이야기 같은?
결말은, 그 아기가 수도원에서 잘 자라서 성 케빈의 후계자가 되었대요.
해피엔딩. 사슴 엄마가 아기 젖먹여 키운 보람 있었겠다 싶었어요.
제 상상 속에서 사슴 엄마는 암사슴의 요정으로 이미 변신 ㅋㅋㅋㅋ
호수쪽 산책로를 따라가면 두 개의 호수를 볼 수 있는데
아래 호수를 지나 위쪽 호수로 올라가면
정말 장대한 광경이 펼쳐져요.
넓고 깊은 U자형 골짜기가 나타나고
그 가운데에 호수가 있어서
호수가 아니라 운하 같아요.
트래킹해서 저쪽 반대편으로 올라가면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어
더 절경이라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는 못했어요.
하지만 오후 다섯 시의 햇살이 구름을 뚫고 나와서
왼쪽 골짜기의 일부분을 비추고 있었고
잔물결이 이는 짙은 호수가 저쪽까지 뻗어 있는 걸 오래도록 감상했어요.
저는 추워서 호수에 발을 담글 생각이 절대로 없었지만
다른 관광객들 중 몇몇 사람들과 꼬마들은 그 차가운 물에 맨발로 들어가서
무릎까지 적시면서 놀았어요.
한쪽 구석에는 어떤 아저씨가 이젤을 세워 놓고
막 스케치를 시작하는 중이었어요.
윗 호수와 아랫 호수 중간 쯤에 작은 목조건물이 있어요.
여러가지 팜플렛들을 제공하고
이곳의 야생동물들 박제와 곤충 표본들을 전시해 놓았어요.
한 전시장의 유리 위에 이렇게 씌어져 있었어요.
“이 동물들의 이름이 뭔지 아세요?
이름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건, 이 동물들이 이 세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우리와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 중에 하나라도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우리를 이루는 한 부분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요.
이름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니!
같이 간 제 친구 선배 부인 아주머니는 이 말이 너무나 감동적이라며
두어 번 혼잣말로 되풀이를 하고,
아이들이 들어오자 천천히 한 번 읽어주었어요.
그리고 기억해야겠다면서 이 안내문을 사진 찍었어요.
보통 동물들 박제를 전시하면 만지지 말라고 사방에 팻말이 붙어 있지 않나요?
잘은 모르지만.
여기엔 신기하게도 “이들을 만져보세요.” 라고 써 있어요.
박제는 죽은 동물의 가죽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손을 대기가 망설여졌어요.
친구가 먼저 손을 내밀어서 걔네들 머리와 등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괜찮다고 한 번 해보라고 해서
저도 용기를 내서 여우의 등을 슬쩍 쓰다듬었어요.
털의 감촉이 느껴져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하지만 그냥 박제일 뿐인데도 그냥 보는 것과 달리 만져보는 것 뿐이었는데
그 동물에 대한 느낌이 확 달라졌어요.
여우, 고슴도치, 오소리, 밍크, 족제비, 토끼, 부엉이, 다람쥐,
산양을 쓰다듬어봤어요.
털의 색깔, 길이, 강도 등이 제각각 다르고,
좀 빗자루 귀신처럼 길고 산발인 산양의 길다란 털은 빳빳하고 거칠었어요.
멋지게 말린 큰 뿔을 가지고 있는 그 산양 옆에 안내문이 있었어요.
“산양은 큰 뿔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해치지 않아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산양의 외모만 보고 무섭다고 생각하면
숲속의 산양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봐 붙여놓은 안내문인 것 같았어요 ㅋㅋㅋ
아일랜드는 참 아기자기하게 느껴지고
가랑비에 슬며시 옷이 젖어가듯 정이 드는 곳인가봐요. 날씨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데,
날씨에 비해 사람들이 정서적이고 훨씬 따뜻한 것 같아요.
물론 저와 아일랜드의 가장 큰 연결고리인 제 빨간 머리 친구와 그 가족, 친구들이 있어서
저는 훨씬 빨리 이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지만…
같이 저녁 먹으면서 굉장히 이야기를 재밌게 하던
뉴질랜드로 이민 간 여자분의 뉴질랜드 찬양도 재미있었어요.
저는 아일랜드 바깥의 사람인데 아일랜드에 와서
이 땅의 매력을 발견하는 중이잖아요?
이 분은 아일랜드 더블린 사람인데 뉴질랜드로 이민가서
아일랜드보다 뉴질랜드가 훨씬 나은 점을 백 가지도 더 찾아냈단 말이죠.
아일랜드에 비하면 뉴질랜드는 천국이라면서
인구는 아일랜드와 비슷한데 땅은 네 배 가량 넓고
날씨도 맘에 들고
사람들도 맘에 들고 등등.
저는 아일랜드가 어딜가나 아직 깨끗하고 조용하고 풍광이 좋다고 느꼈는데
이 외향적인 아일랜드 아주머니는 뉴질랜드에 가서 그걸 느끼고 있고 ㅎㅎㅎㅎ
예전에 영어 배우러 런던 근교에 있었을 때
학교에서 만난 스페인이나 이태리 학생들은
유럽이 아닌 호주나 캐나다에 가서 살고 싶어했죠.
독일애 한 명도 미국에 가고 싶어했고.
근데 영국에서 영어 배우는데 왜 영국에 살겠다는 애들은 하나도 없었는지 ㅋ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서 온 애들은 떠나고 싶다 이런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았어요.
그냥 이민이라든가 해외 취업이라든가 이런 고민이 없었던 듯…
한 이태리 학생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되어 좋아하면서
가능하면 호주에 정착하고 싶어했어요.
다른 이태리 학생들이 은근히 부러워했던 ㅋㅋ
제 친구의 대학 동창들이 취업이민으로 선호하는 나라 1위는 캐나다래요.
세상은 돌고 도나? 이런 생각도 드네요.
누구나 자신의 삶터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고픈 꿈을 꾸나봐요.
아니면 자신에게 맞는 땅이 있거나.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제가 아일랜드의 땅과 맞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는거죠.
조금 더 알게 되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버스를 타고 아침에 어학원을 가면서 놀란게 있어요.
버스 아랫층에는 짐을 올려두기 위한 칸이 있거든요.
보통 캐리어나 무거운 배낭들을 얹어놔요.
사람이 복닥복닥했는데 큼직한 백팩 두 개가 그 위에서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아랫층 사람들이 거의 다 내리는데 그게 그대로 있더라구요?
근데 이층에서 줄지어 내리던 사람들 중에 두 젊은 남자가
지나가면서 각자 그 백팩을 한 개씩 집어들고 내렸어요.
백팩을 아랫층 짐칸에 버려두고 위층에 올라가 있었단 말이오?????
이태리라면 절대로, 네버 에버! 이런 일은 당연히 있을 수가 없죠 ㅎㅎㅎㅎㅎ
한 번은 제가 탈 버스가 저기서부터 보이길래
늦게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학원 늦을까봐 그 버스 타려고 뛰었어요.
버스가 저를 앞질러 먼저 정거장에 도착해서 한 사람 달랑 태우더니
문을 닫는게 아니겠어요!
엄훠 하는 사이에 문이 다시 열리고 조금 기다리길래
같은 속도로 달려 버스에 뛰어들었어요.
땡큐! 그랬더니 얼굴 붉고 한 덩치하는 운전기사 아저씨가
악동의 미소를 지으며 윙크를…
ㅋㅋㅋㅋ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기사 아저씨에게 땡큐! 하는 것도 신기하고
아저씨들에 따라서 땡큐! 라고 응답해주기도 해요.
버스 타고 내리는 데에 교통카드를 찍으면서 목적지를 신고하거나
현금내고 타는 사람들 영수증 받는 걸 기다리거나
잔돈 없다고 “누구 10유로 바꿔줄 분 없나요?” 라고 아저씨가 소리치면
누군가가 동전을 주섬주섬 꺼내고
정거장에서 어떨 땐 한참 서있기도 해요.
근데도 전부들 말없이 덤덤한 걸 보면 다들 해탈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ㅎㅎㅎ
참고로 독일 시내버스를 탔던 기억으로는
운전사에게 말을 걸지 마시오라고 써있었던가? 운전사를 방해하지 마시오든가?
그렇게 써있었 ㅋㅋㅋㅋㅋㅋ 이 기억이 맞나요? 가물가물 ㅋ
헥헥 다 썼다 ㅋㅋㅋㅋ
어제 오늘 학원 갈 때 놋북 껴안고 나가서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열심히 썼어요 ㅋㅋㅋ
저는 제가 알려지고 제 생활이 알려지고 이런 걸 좋아하지 않아서
인터뷰 이런 건 생각해 본 적 없어요. 해 본 적도 없고요.
그냥 여기 글 올리고, 언니 이모들이 같이 마음 따뜻해해주시면
전 그걸로 만족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