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에 대학에 들어갔어요.
5월이 되면 학생회관에서는 연례행사로 이른바 '광주 비디오'를 틀어줬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거 잘 몰랐던 우리 세대에서 말하자면 '의식화'가 되는 것은 대부분 이 광주 비디오라고 하는 이들이 많죠.
저는 그런 유형은 아니었지만 광주 비디오를 볼 때 비장했던 심경만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절에는 요즘 같은 큰 대형 화면이 없었구요. 진짜 두툼한 브라운관의 칼라 티비, 아마도 방송반에서 옮겨왔을 그런 작은 화면을 통해 봤었어요, 비디오란 게 아주 잘 사는 애들 집엔 있긴 있었지만 사실은 돌려보는 기계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그런 시기에 제가 본 게 비디오 영상이었는지 필름이었는지도 불분명하네요. 조그만 티비로 봤으니 비디오로 연결해서 봤을 거라고 추정할 뿐입니다.
그런데 보기는 봤으나 뭘 봤는지 확실하지 않아요. 앞자리는 이미 가득 차 있었고 뒷자리에서 겨우 보이는 조그만 화면은 영상이 뭉개지고 소리는 찢어지고 온통 뿌옇고 누렇고 그랬거든요. 학생회 사람들이 설명은 해 주지만 그 영상만으로는 뒷자리의 제게는 충격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학교에만 유달리 화질이 나쁜 게 왔을지도 모르죠. 그 귀하디 귀한 화면을 얼마나 복사를 많이 했으면 그 정도로 가시성이 떨어졌을까요? 택시 운전사의 몇몇 장면은 제가 본 장면이었는지 아니었는지조차 흐릿하군요. ㅠㅠ
제게는 비디오 관람은 상징에 그쳤고, 황석영 이름으로 나온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오히려 비디오가 포착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했었습니다. 지금에야 상상도 못한 기술 발전과 광주 항쟁이 어떤 의미였는지 역사적으로 하나씩 밝혀지고, 폭도 빨갱이로 매도된 이들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서 그런 영상을 얼마든지 마음 놓고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때는 정말 1년에 한번도 어려웠어요. 그 영상을 틀어준 학생회 사람들도 엄청난 비밀작전하듯이 영상회를 했겠지요. 그 장면을 찍은 사람은 직업은 몰라도 외국인이란 얘기는 그때도 들었구요.
그래서 택시 운전사를 보니 감회가 새로운 건 말할 것도 없죠. 그런데 그 원본이 어떤 것이었는지 도무지 찾아볼 길이 없어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 정연주 사장 재임시 제작된 kbs 다큐 '푸른 눈의 목격자'는 그 이후 이야기에 포인트를 두고 있고 화면은 중간중간 나옵니다.
제가 봤던 그 뭉개지고 뿌연 영상은 과연 힌츠페터의 작품이었는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광주 비디오가 버전이 많은 것은 아닐테고 학생들 사이에서 보여진 영상은 바로 그것이라 하니 오리지날이 있을 법도 한테 유튜브 등에선 찾아볼 수 없네요. 사진만 편집한 것, 다큐 영상 등은 있으나 힌츠페터가 독일에서 방영했다는 그 기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나마 Gwangju Massacre(광주 대학살)이란 영상이 제 기억에서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고 여겨집니다만 워낙 원본에 대한 기억 자체가 그렇게 흐린지라...
1987년 문대통령이 노대통령과 함께 부산 카톨릭 센터에서 처음으로 그 영상 틀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짐작컨대 부산이라고 해도 이미 대학가에선 서울, 지방 막론하고 그 이전부터 상영회가 있었을 겁니다. 대학 캠퍼스 이외의 장소에서 시민 대상으로 한 '최초'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걸 최초라고 포장하기는 좀 그렇구요. 문통의 지지자로서 팩트 지적은 제대로 해야 될 것 같아요.
아무튼 혹시 저와 비슷한 연배로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이 계신지 궁금해서 글 올려봤습니다. 만일 오리지널을 볼 수 있다면 어떻게 검색해 보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