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 아기 키우면서 맞벌이하는 워킹맘이에요.
아이 어린이집 방학에 맞추어 제가 1주일 휴가를 냈고(월~금) 휴가 끝나는 금요일에 2박 3일 일정으로 지방에 사시는 시부모님이 올라오셨어요.
점심상 집에서 차리기로 했는데, (사실 제가 요리 잘 못해요..ㅎㅎ 집에서는 남편이 거의 전담..) 한식은 어머님이 워낙 베테랑이시니.. 폭립이랑 가지말이쌈밥이랑 무쌈말이, 샐러드, 오이냉국. 이렇게 준비했어요.
일흔 넘으신 분들이라 입맛에 안맞으실 수도 있는데 연신 맛있다, 맛있다, 간도 딱 맞고 고기도 부드럽고 냄새도 안난다. 맨날 가지 사와도 해먹은 게 가지볶음 뿐인데 우리 며느리 이렇게 센스가 있다. 하나하나 손 가는 것만 어떻게 이렇게 준비했니, 맨날 집밥만 먹다가 이렇게 근사한 거 먹으니 너무 좋구나... 연신 칭찬하셔서 오히려 제가 더 부끄러웠어요.
밑반찬할 시간 없어서 깻잎김치를 사다두었는데 (남편이 사온 거라고 말해버렸어요 ㅋㅋ) 아이고 그래 잘했다. 이거 손 많이 가고 나도 만들어봤는데 맛도 없더라. 어디서 샀니, 나도 사다 먹어야겠다. 이러시고요...(사실 어머님 깻잎김치 너무너무 잘하시고 저희가 가져다먹을 때도 많은데...저 민망할까봐 그러신 거 같아요)
주무실 때도 부부침실 내드렸는데 방 갑갑하다시면서 거실에서 굳이 주무시고요. 원래 아버지께서 아침 7시반 정도에 꼭 식사하시는데 저한테 늦게늦게 푹 자고 아침 10시 넘어서 먹자면서... 절대 미리 일어나서 밥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더라고요.
애기가 보통 9시쯤에 일어나는데 제가 옆에 없으면 잠을 잘 안자서... 꼼짝없이 미라 신세로 누워서 귀만 쫑긋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냉장고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려서(시장하신 거 같았어요ㅠㅠ) 8시쯤에 나가서 얼른 밥 하려고 했더니 얼른 다시 주무시는 척 하더라고요...
집에 계시는 내내, 옷장 한번, 서랍 한번, 싱크대장 한번 안 열어보셨어요. 혹시 몰라서 정리 싹 해두었는데 한번을 안 여시더라고요...
솔직히 오시기 전에는 2박 3일동안 어떻게 지내야 하나 걱정되었는데.. 정말 즐겁고 편안하고 유쾌하게 보내고 가셨어요. 내려가시는 길에 기차 앞에서 손 흔드는데 제가 다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내려가실 때 용돈으로 30만원 봉투에 넣어드렸는데 뭐 필요한 거 사라시면서 다시 봉투 하나를 주셨는데..
열어보니 200만원이에요..ㅠㅠ
집에 돌아와서 남편한테 말했어요.
여보, 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가시고 나니 더 잘해드릴걸, 후회만 남는다고....
남편은 별말 없이 고생했어, 이러고 방에 들어갔어요.남편도 생각이 많아보였어요...
결혼 5년차인데 결혼하고 한 번, 아기낳고 한 번, 이번이 딱 3번째 방문이셨는데 1년에 한두번씩이라도 오셨으면, 하는 맘이 들었네요.
주신 돈은 남편이랑 한참 만지작 거리다가 아이 통장에 할머니할아버지라고 써서 입금해주었고요.
나이 들수록, 저렇게 넉넉하고 긍정적이고 여유롭고 넓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늘 다짐케해주시는 분들입니다. 그래서인지 휴가 끝나고 오늘 회사 복귀했는데 하나도 안 피곤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