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로 두고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는 안철수의 야권 후보로의 편입 가능성은 99% 불가능해 보인다. 1%의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우선 접어두고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윤여준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윤여준, 내가 아는 한 보수 최고의 지략가이다. 그에게는 늘 ‘합리적’이라는 말이 따라다녔고, 때론 그런 이미지 때문에 보수의 귀퉁이를 맴돌기도 급할 땐 SOS에 따라 다시 사용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진보, 환경 분야의 원로들과도 상당한 친분을 쌓아 같이 활동하기도 하는 것 또한 합리적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윤여준은 김영삼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역임하기 전 차관급만 17년을 했다. 그동안 청와대와 외무부, 행정부, 그리고 안기부까지 상당한 행정경험을 쌓게 된다. 환경부 장관을 끝으로 그동안 쌓아왔던 필드에서의 경험과 뛰어난 정치감각으로 주로 선거캠프의 주요 요직을 담당하게 된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의 주요 선거와 정책에 윤여준이 관여하지 않은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게다가 한나라당의 여의도연구소는 윤여준이 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지금의 연구역량을 가진 제대로 싱크탱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난 보수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윤여준을 꼽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그가 안철수를 선수로 띄우고 있다. 처음 안철수의 기사를 접하고 든 느낌은 오싹하다였다. 박근혜와 윤여준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보수의 이미지가 안철수와 결합하고 있다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겨우 이틀이 지난 지금 더욱 강해지고 있다.
박근혜는 이명박과는 다르게 따뜻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명박이 토목과 천박한 개인주의에 물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박근혜는 따뜻한 국가관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가 말하는 맞춤형 복지라는 것도 같은 이미지 컨셉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그 아이디어의 제공자가 윤여준임은 말할 것도 없다. 윤여준이 이미 여의도연구소 시절부터 말하던 평등과 공정의 다른 버전이 박근혜의 맞춤과 보편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이제 대충 그림이 나온다. 윤여준은 지금 이명박 정부의 꼴통보수 대신, 박근혜의 유연한 보수로의 정치지도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신호탄이 안철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그래서 버릴 수가 없다. 앞으로 전개될 대선 국면에서의 이념지도가 윤여준의 의도대로 짜여가기 시작하고, 그 자리에 우리의 착한(?) 안철수가 이번 서울시장선거 논란의 중심에 서 준다면 다음 대선은 아주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은 괜한 염려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가능성이 훨씬 커보인다. 언론들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철수 돌풍에 이어 3자구도, 그리고 새로운 정당 출현이라는 기사까지 판을 깔아주기 시작했다. 기획된 돌출 출마에 맞춤형 판깔기로 여론을 만들어가고 있다. 참 기막히게 움직이는 것이 역시 권력의 맛을 아는 것들이다.
운여준을 단 둘이 개인적으로 여러 날 만난 적이 있다. 개인 윤여준은 정말 합리적이고 품성이 좋다. 배려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타고난 정치감각을 가진 사람인 것을 의심하기 어렵다. 그런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우리도 이제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제대로 공부하고 피해의식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이회창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는 그렇게 합리적이라는 이미지로 보수에 복무에 왔다. 한 번도 그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안철수, 그는 자기의 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http://moveon21.com/?mid=main2009&category=737&document_srl=742385&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