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초 학부모총회에 가면 봉사활동을 종류별로 제시하고
학부모들이 참여하도록 하잖아요.
사실 그거 참 귀찮고 불편하고, 다른 엄마들도 하기 싫을텐데
모두 다 안하면 누가 할까 싶어 가급적 먼저 손들고 신청하는 편이에요.
직장생활 하지만 최소한의 참여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요.
그런데 제가 봉사활동을 두가지정도 신청하고 난 후 저희반에서 학부모 재능기부
(진로/감성교육) 할 사람을 한명씩 해야하는데 마지막까지 아무도 자원을 안했어요.
선생님이 반톡에 간절하게 올리셨는데 하루가 지나도 엄마들이 답변을 안하시더군요.
선생님께 따로 톡으로 여쭈어 정 할 사람이 없으면 저의 남편이 진로교육을 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교수이고,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편이에요. 저보다 더 열성적이죠.
물론, 남편에게 허락을 받았고요.
시간이 흘러, 저의 남편 순서가 되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송강의를 하였고,
방송강의 끝나고, 마침 그날이 학부모 대표자 회의날이라서 엄마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했다고 해요. 개인적으로 아는 엄마들 중 그 강의를 들은 엄마들이 저에게 톡을 해서
강의가 재미있고 유익했다고 전해주어서 잘 끝났구나 싶었죠.
이게 원래는 1년에 1번만 학생들 대상으로 방송강의를 하면 재능기부로서의 임무는 끝나는겁니다.
그런데 진로교육 프로그램 담당 엄마들이 학부모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을 부탁하게 되면서
남편이 한번정도야 싶어 흔쾌히 응하게 된것인데요,
그 후 진로교육 프로그램 담당하시는 엄마가 남편에게 특강을 한번 더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답니다.
그리고 동시에 교장선생님이 방송강의로 끝내긴 아깝다고 하여 6학년 학생들 전체를 대상으로
2반씩 묶어 총 3시간을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하셨고요.
교장선생님이 특별히 부탁을 하신일이라 거절하기 힘들었던 남편은 오전 스케줄을 다 비우고
6학년 강의를 해주었고, 이틀 뒤 또 오전 스케줄을 비우고 진로교육 프로그램 담당엄마가 부탁한
학부모 대상 강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려고 했었는지 여튼 어느 하나만 선택해서 하기도 뭐하고 거절을 잘 못하는 남편성격상
두번째 학교 행사를 그렇게 지원하게 되었어요.
그날 강의가 끝나고 진로교육 담당 엄마가 남편에게 톡을 보내왔고 남편이 그걸 저에게 캡춰해서 보여줬습니다.
내용은, 강의가 좋았다는것과 하반기에 또 한번 부탁한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남편에게 이미 두차례 진행으로 충분하지 않냐. 학교에 그정도 봉사하는걸로 책임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잠잘 시간도 없어서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오는 사람이 두차례나 오전을 다 비워서 강의를 했는데
또 해달라고 하는것은 좀 과하다. 그리고, 외부 강의를 나가면 한시간에 수백만원을 받는 사람인데,
그런 강의를 매번 무상으로 한다는것도 본인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지 않느냐 라고 했습니다.
물론, 봉사와 금전이 양립할 수 없는 가치라는건 저도 압니다. 전 좋은 일에는 기꺼이 봉사하고 참여하는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대사회에서 전문인의 가치는 결국 돈으로 환산되기 마련이라
같은 곳에서 같은 대상에게 여러번을 그렇게 하는것은 봉사의 개념과는 다르다고 봐요.
남편도 하반기 강의에 대해서는 완곡한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고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남편이 저에게 하는 말이 진로교육 담당자가 톡을 보내왔는데, 지난번 강의가
너무 고마워서 감사를 표하고 싶고,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는겁니다.
(그 엄마 개인의 의견인지, 진로교육팀 전체의 의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순간, 이건 좀 아니다 싶었어요. 물론, 순수한 감사의 의사표현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꾸 이렇게 연락해오는게 불편합니다.
매번 이모티콘과 함께 긴 메세지를 보내오는 것을 보여주는 남편도 좀 밉습니다.
왜, 무엇이 불편한지 이건 너무 복합적인 감정이라
딱 잘라서 말할 수 없지만 이제 그 엄마가 남편에게 그만 연락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거절 의사를 확실히 표하지 않는 남편이 화가납니다.
평소에도 온갖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좋은사람 콤플렉스가 있어서인지
단호하지 못해 스스로도, 저도 불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지금 느낌과 감정, 오버인가요? 솔직히 이런 느낌을 갖는것도 옳은것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구요. 단호하지 못한 남편이 문제라고 지적하셔도 돼요.
저도 모르게 이걸 남녀 프레임으로 엮고 있는것일수도 있고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오버하는 것일수도 있고요.
아아...그냥 좀 어떤 말씀이라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