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없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을 뿐"http://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43910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1988년 4월19일 직접 쓴 <내가 걸어온 길>이 공개됐다.
노무현재단은 1일 노 전 대통령의 65번째 생일을 맞아 이 글을 공개하고 "그가 생을 다해 지키고 실현하려 했던 '사람 사는 세상'의 뜻을 다시금 새겨볼까 한다"며 밝혔다.
<내가 걸어온 길>은 당시 마흔셋의 젊은 정치 초년생이었던 노무현 후보가 민정당 허삼수 후보와의 대결을 앞두고 부산동구 지역주민들에게 보내는 '출사표'형식의 글이다.
글에는 가난으로 인해 쓰리고 아팠던 학창시절, 잘 나가던 변호사에서 재야운동가로 나서게 된 계기, 정치인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된 고민과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가난으로 겪어야만 했던 고생과 설움
글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한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잘 곳이 없던 초겨울 날 학교 교실에서 이틀을 자느라 이를 악물고 얼마나 떨었던지 다음날 이빨이 아파 밥을 한 숟갈도 먹을 수가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이담에 커서 출세를 하면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벗어나 설움도 갚고 나처럼 고생하며 사는 사람을 도와주리라 다짐하곤 했다"고 썼다.
'돈 걱정 없고 굽실거리는 사람 많은' 변호사
그러나 많은 수입과 높은 지위는 노 전 대통령도 흔들리기에 충분했다.
"막상 판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돈 걱정 안 해도 되고 굽실거리는 사람도 많아....정말 살 맛 나는 생활이었다. 출세해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던 어린 시절의 꿈은 사라져 버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글에 나온 대로 "뒷간 갈 때 생각 다르고 나올 때 생각 다르다"는 모습으로 살아가던 노 전 대통령에게 계기가 찾아온다.
부림사건 변론, 삶의 방향을 바꾸다
1981년 이른바 부림사건(1981년 7월 부산에서 청년들이 「역사란 무엇인가」등 사회과학서적을 읽었다 하여, 57일간 불법 감금과 고문으로 조작한 사건)의 변론을 맡게 된 것.
노 전 대통령은 "이 변론이후 나의 이기적인 삶의 껍질이 균열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이웃의 고통이나 권력의 부정부패, 불의는 모른 체하는 것이 상팔자라고 체념하고 살던 나의 삶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대공분실에 끌려가 57일간이나 가족과 연락도 못하고 짐승처럼 지내야 했던 ,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발톱이 새까맣게 죽어버린.....청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죽었던 가슴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뼈 빠지게 일을 해도 겨우 입에 풀칠하기가 고작”인 “핫바지 인생”들이 있는 반면에, “대낮에도 2백만 원짜리 내기골프를 즐기고 그 짓도 힘든 일이라고 사우나탕에 가서 몸 풀고....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이 있는 세상, 이것이 어찌 사람 사는 세상이란 말인가?” 당시의 감정을 여과없이 적었다.
변호사의 지위와 권위 내려놓고 거리투사로...
이 같은 분노는 노 전 대통령을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다.
“1982년부터 요정, 룸싸롱 등 고급 술집에서 발을 끊고....1986년 9월 이후부터는 사건수임을 중단하고 오로지 민주화 운동에만 전념했다”
변호사의 이익과 권위를 포기한 거리의 투사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1987년 2월 3번의 구속 영장 청구, 1987년 6월 6·10대회 때 경찰에 연행, 1987년 9월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의 장례식 참가를 이유로 구속, 1987년 11월에는 변호사 업무정지 명령”등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이렇듯 시련을 겪으면서도 뜨거운 가슴은 식을 줄 몰랐다.
“아내 몰래 호주머니를 몽땅 털어 유인물을 만들고 확성기를 사주고 수배된 청년들과 악수를 하고 헤어지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당하고, 부끄럼 없는 정치인이 되고 싶을 뿐"
노 전 대통령은 <내가 걸어온 길>의 마지막 대목에서 국회의원선거 출마 동기를 말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1987년)에서 패배 한 이후 “야당은 야당대로, 재야는 재야대로 분열”됐던 모습은 노 전 대통령의 고민을 깊게 만들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이 깊어지던 시점에 “마침 통일민주당에서 함께 싸워보자는 제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 노 전 대통령은 “소위 6·29선언 이전 집회와 시위 주동자라는 이유로 나는 유죄를 받았다”며 “국민과 부산시민에게 내가 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심판받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자기 한 몸 기꺼이 내던지는 투쟁을 통해 쟁취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국민을 기만하지 않는 정직하고 공평하고 정의를 목숨처럼 존중하는 당당한 국민의 대변자로서 부끄럼 없는 그런 정치인이 되고 싶을 따름이다”며 <내가 걸어온 길>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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