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펌글>곽노현 사건 바라보기...함께 읽고 얘기해봐요.

블루 조회수 : 1,178
작성일 : 2011-08-31 14:41:05
어떤 사람이 표상하고 있는 가치를 신뢰하고, 그 가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시간과 마음을, 그리고 당신의 근육을 보탰다면, 당신은 그 사람의 타락에 분노해야 마땅하다. 당신은 당연히 그럴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그 타락을 단정하는 목소리가 내 안에서 나온 내 목소리인지 살펴볼 일이다. 그저 지나가는 확성기에서 무책임하게 반복되는 소리들을 내 목소리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근심해야 한다. 그 타락이 정말 타락인지 아니면 그저 손쉬운 재단인지 우리는 세심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건 그 가치를 공유했던 사람으로서 그 가치와 우리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면서, 그 가치를 표상했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오랜만에 주신부님과 한 시간 남짓 대화했다.

대화 후반부 매개는 곽노현 사건.

구글플러스에선지 트위터에선지 '사람은 버리되, 정책은 지키자' 라는 말을 듣고, 아, 그렇지, 그래야지, 가볍게 마음 속으로 되뇌었는데, 주신부님과 대화하면서 내가 너무 게임 논리로, 전략적으로, 세상을,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버릴 때 버리더라도, 그 사람을 한번이라도 우리는 찬찬히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정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찬찬히 살펴야하지 않을까.

소위 보수의 게임 방식은 딱지 붙이기, 피상화하기다. 거기엔 즉각적인 정서적 공감과 선동은 있지만 인간을 위한 사유는 없다. 세상의 속도는 사유라는 쉼표를 허락하지 않는다. 소위 보수는 그 속도를 더욱 가속화한다. 소위 진보도 그 속도 속에서 휩쓸려간다. 여기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장기판의 졸이나 말이 아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면 여기 정신이 있고, 철학이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이 있고, 욕망이 있고, 또 소망이 있을테다. 그 사람을 졸로, 말로, 포로 바라보기 전에 인간으로, 입체적인 실존으로 바라보는 사유의 호흡이 필요하다.

보수의 틀짓기.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세상의 온갖 현상과 그 현상이 갖는 입체성을 평면화하기. 법 이전에 도덕을 이야기하는 한겨레, 경향, 그리고 소위 진보 몇몇 시민단체들. 문제는 전략적인 관점에서 '보수의 틀짓기'에 빠져 '우리끼리' 분열하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관계, 그 관계의 총합인 사회라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세계, 그래서 다시 모순과 이율배반으로 둘러싸인 '인간'를 바라보는 시선을 단편화하고,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자진해서 포기하는데 있다.

주신부님은 이렇게 말한다, '게임의 속도를 늦춰서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정치적 역학의 틀 속에서 스스로 자진해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가는 즉물화된 반(反)사유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이다. 어떤 인간을 타락으로 단정하기 전에 그 인간의 입체성을 고민어린 사유를 통해 재구성하고, 그저 나와 같은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고민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일이어야 한다. 도덕적인 단죄나 법률적인 판단은 그 이후 일이다.


소위 보수나 진보로 자처하는 이들이 똑같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많은 것을 진영의 논리와 정치적 역학를 고려한 전략과 전술의 눈으로만 사태에 대처하는 것이다.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

진정 '대안'을 추구한다면, 이 현실의 역학을 고려하면서도, 여기서 종종 놓치는 세밀한 삶의 결, 인간의 결을 읽어서 그 안에 깃든 고민과 고뇌로 공감을 확대해야 할 것이 아닌가? 질 때는 지더라도 무언가 다르게 보는 눈을 얻고 져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은연 중에 어떤 '희생의 메카니즘'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희생에 기대어 분노하고, 소위 '더 순결한' 분노와 저항이라는 전략과 전술을 위해서 '희생'을 당연시하거나 눈감지는 않는가? 이 '순결한 가학증'이 세상을 구원할까? 천만에. (출처)

- 주낙현 
IP : 222.251.xxx.253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사랑이여
    '11.8.31 2:56 PM (210.111.xxx.130)

    회의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현 정권 들어서 영상뉴스를 믿으면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곽 교육감 문제...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해줄 것으로 보지만 현 정권에 한결같이 비판적인 박찬종 변호사마저 곽 교육감에 대한 우울한 판단을 내놓으시더군요. 걱정입니다.

  • 2. **
    '11.8.31 3:04 PM (203.249.xxx.25)

    정말 마음에 와 닿는 글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9747 이런글 써도 되나 모르겠어요 5 된다!! 2011/08/31 1,492
9746 공정택 1 선거비용 2011/08/31 1,166
9745 뒤캉 결과 보고!!!! 6 음하하하 2011/08/31 2,827
9744 오늘 짜장면 등을 다시 제자리로.. 2 국어연구원인.. 2011/08/31 1,308
9743 프랑스에 해외 택배 보내려는데 잘 아시는분 ^^ 4 호야맘 2011/08/31 3,837
9742 커피 추천 부탁해요~~~ 1 ... 2011/08/31 1,177
9741 사업자 등록 한 번 거부당하면 다음 번에 힘든가요? 4 걱정 2011/08/31 1,874
9740 주진우 기자 팬카페 4 사월의눈동자.. 2011/08/31 2,948
9739 양배추 잘 썰어지는 채칼 혹시 아세요.. 5 채칼 2011/08/31 2,586
9738 항암 면역요법 교육을 다녀왔어요 1 청주성모꽃마.. 2011/08/31 2,436
9737 알바들이 설치는 이유를 아십니까? 29 ... 2011/08/31 2,037
9736 신세대 맞벌이 며느리들께 물어요 14 신세대 며느.. 2011/08/31 3,372
9735 파절이 맛나게 무치시는분 비율좀 알려주세요.. 9 컴앞대기중 2011/08/31 2,785
9734 나꼼수 곽노현 사건 한장 요약[펌] 62 검찰개혁 2011/08/31 6,483
9733 박경철 "민주당, 나무쓰러졌는데 사과 주울 생각만" 2 세우실 2011/08/31 2,000
9732 서부이촌동 1 질문 2011/08/31 1,405
9731 은행도 주차편리성으로 찾게 되네요. 바꿔요 2011/08/31 1,063
9730 평창동 쪽 아파트 살기 어떤가요?? 2 이사 2011/08/31 4,197
9729 관리자님!! 왜 삭제하십니까?? 15 국제백수 2011/08/31 2,580
9728 새로 제정된 표준어, 꼭 공부해두세요들~!! 4 짜장면! 2011/08/31 1,705
9727 관리자님, 부탁드립니다 1 게시판정화 2011/08/31 1,612
9726 어떤카드가 학원비 할인 많이 받을수 있나요? 4 커피나무 2011/08/31 1,886
9725 기숙학원 환불 2011/08/31 1,303
9724 여대생 성회롱의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부활 2 희망 2011/08/31 1,220
9723 검사결과를 (정액검사) 남편과 같이 듣는게 좋을까요? 2 궁금 2011/08/31 2,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