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파트에서 이십년을 살았어요.
제 인생의 많은 부분을 그 곳에서 보냈죠.
같은 날 이사온 윗집 안주인이 저랑 동갑이었어요.
그래서 친하게 지냈죠.
친하긴 한데 성격이 많이 다르고 서로 바쁜 시기도 있고 해서
아래 윗집 살면서도 일년 가까이 얼굴도 못 본 시절도 있었어요.
저는 마음속에 좀 서운한 점이 있었어요.
저와는 다르게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그 친구는 바쁠 땐 저를 마주쳐도 대면대면 했고
어쩌다 시댁 관련이나 남편 땜에 스트레스 많이 쌓이면 한번씩 찾아와 하소연 하고 가곤 했어요.
그 친구는 결핍이 없는 인생을 살아 와서인지 늘 자신감 있고 본인의 감정에 충실한 편이었고
그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었어요.
구김살 없고, 불쌍한 사람을 도울 줄도 알고, 인색하지 않고.
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살피지 못하고, 본인 위주로 생각하는 면이 있었어요.
나는 친구도 아닌가보다...생각하게 할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몇 달전 제가 오래 살던 그곳을 떠나 이사를 했어요. 한 12킬로 정도 떨어진 곳이죠.
전 그 곳을 잠깐 그리워하긴 했지만 거의 다 잊고 이곳 생활에 적응하고 살고 있어요.
아직 이웃을 한 사람도 사귀진 못했지만 저는 그리 외로움을 타는 편이 아니라 문제 없이요.
그런데 이사 오고 난 뒤에 그 친구한테 자주 연락이 오더군요. 저도 반가웠죠.
이사했다고 휴지랑 세제를 사서 방문도 했었어요. 그때 제가 없어서 허전하다는 말을 했어요.
그래. 우리 가끔 만나자. 해놓고 전 또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는데 오늘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점심을 같이 했어요.
밥 먹고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 친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네가 없으니 너무 허전하다. 난 네가 늘 그자리에 우리 아랫집에 있을 줄 알았다...언제든 문 두드리면 나올 줄 알았다..
나 너무 우울하다... 저도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나 멀리 있지 않아. 지금도 언제든 갈 수 있어.
이제 우리 나이 들어서 새로운 사람 친해 지기도 힘들어.
이러다 왔네요. 제 나이 50 중반입니다. 이제 정말 새로운 친구 사귀는 건 불가능 한 거 같아요.
나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아는 친구. 내 과거와 가족까지 모두 아는 친구.
이런 친구가 정말 소중하다는 걸 새삼 느낀 날입니다.
한 때의 서운함으로 그냥 잊고 지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나의 소심하고 째째했던 마음을 반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