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데자뷰
이해관계와 가치(the interest vs. the value)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던진 승부수에 모두 그에게 조소를 보내며 비아냥 거리는 동안 털린 쪽은 오세훈의 대척점에 서있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다. 이슈는 비교적 간명해 보이는 '무상급식'이지만 양 진영이 달려있는 이해관계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오세훈은 아무도 '무상급식 싫어요'를 외치지 못하고 있던 보수진영에 강력하고도 선명한 인상을 남김으로서 포스트 박근혜의 가장 강위력한 후보로 성큼 떠올랐다. 그가 지고도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대목이다. 모든 정치행위에 정치적 동기가 없을 수 없겠지만, 오세훈의 승부수는 다분히 정치적이고도 이해관계 중심적이었며, 결과적으로 충분히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반면 곽노현 교육감이 추진한 무상급식은 '가치'와 관계된 문제다. 한국과 같이 '사회주의'하면 부들부들 떠는 국가에서 과감히 '무상급식'을 외치고 수구 진영의 집요한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당선된 곽노현은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와는 한 걸음 떨어져 보이는 '가치'라는 터전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그의 행보가 소위 진보진영뿐만 아니라 수구진영(참고로 한국에는 보수진영이 없다. 수구친일극우 세력만 있을뿐..)에서도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진보진영에서는 '전위 전사'로서의 지위이자, 수구진영에는 노무현 만큼이나 미운 털이 박힌 인물이었던 것이다.
오세훈의 이해관계는 '보수'라는 가치의 허울을 썼고, 무지몽매한 보수착각주의자들에게 탄식, 울분, 분노, 회한 등과 함께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든든한 기지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사건은 곽노현에게 터졌다.
우리는 지금의 이 일련의 사태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가치 중립은 한국사회에 독약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조중동연합은 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논조는 뻔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기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노무현을 무조건 지켜야 했을때, 노무현을 내치고 가래침을 뱉었던 한겨레였기에 이번에는 어쩌나 하고 다시 살펴보았다. 그들은 역시 어쩔 수 없는 딱따구리 진보에 불과했다.
아고라를 살펴보았다. 역시 가치중립 혹은 진보연 하는 수많은 딱따구리 새떼들이 공공연히 '진보진영의 이해관계'를 위해 곽노현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왜 역사속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니체의 영겁회귀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것인가.
소크라테스의 저 찬란한 '악법도 법이다'라는 전통과 의연히 골고다 언덕을 십자가를 지고 갔던 예수, 원망하지 말고, 미안해 하지 말라던 노무현 그들이 남겼던 그 족적 속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들이 죽기전날 밤으로 돌아가보자. 소크라테스의 그 깊은 통찰력이 한낱 자신에게 독배를 들이미는 권력의 시녀인 법에게 굴복하라며 '악법도 법이다'라고 외쳤겠는가. 예수가 십자가를 지기전에 수없이 통곡했다지 않는가. '이 독배를 거둘 수 있다면 거두어 달라고..' 노대통령...얼마나 많은 진보연 딱따구리들이 공격해 댔던가. 그 고통에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까.
가치 중립만큼이나 편리한 것이 없다. 문제는 진정한 가치 중립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독한 극단을 달려보아야 하는데, 이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질서가 지배자들의 극단을 용납하되, 피지배자들의 극단은 용납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그 피지배자들이 선택하는 것이 편리한 '가치중립'이다. 소크라테스의 언명을 들먹이며, 예수의 '사랑과 용서'를 팔아대며, 동양 철학의 미덕이라며 '중용'을 내세우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의 가치중립 혹은 '중도'는 국가의 창의적이고도 그야말로 '진보적인' 발전을 갉아먹는 독약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 '가치 중립'을 앞세워 진영이 위태로우니 사퇴하고 혼자서 싸우라고 윽박지르는 것이다.
사람을 지키는 진보, 시민있는 시민사회
근본적으로 가치는 이해관계를 단기간에 이길 수가 없다. 대운하로 대통령이 된 이명박이를 당선시킨 인간들 중에는 대운하 관련, 토목 관련, 건설 관련 주식을 가지고 있던 유권자만 수십만명이었다. 그들의 힘은 2002년 노무현 돌풍을 일으켰던 '가치 돌풍'만큼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은밀한 뒷거래처럼 '돈 돌풍'을 일으키며 경제 대통령이라는 미망 속에 이명박 옹립 현상을 낳았던 거다.
노무현이 말했다. "국민들이 단기적으로는 잘못된 판단도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항상 옳다'라고...
이는 가치에 관계된 문제다. 결국 옳은 가치를 선택하리라는 역사적 경험과 믿음이 노무현의 신념속에 잠재돼 있었던 것이다.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위해 싸웠던 사람을 지켜야 한다. 지금 상황은 정확히 노무현 데자뷰다. 사람을 지키는 것이 진보고 진영논리다. 진영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버리는 것은 수구들이나 하는 짓이다. 시민없는 시민사회라는 것들이 곽노현의 사퇴를 종종 말한다. 그들이 언제 그런 전지 전능함을 부여 받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일단 시민있는 시민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곽노현을 지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대한민국 진보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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