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취했어요
좋은사람들과 기분좋게 마셨더니 천하의 마징간도 취하네요 ㅎㅎ
만난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아이없이 이혼한 13년차 돌싱.
그사람은 이혼 5년차 두딸의 아빠에요
나이는 제가 네살 위구요
(믿거나말거나 외모로는 다들 제가 연하인지 안다는;;;)
모쏠인가 싶을 정도로 여잘 넘 모르고
좋게 말하면 참으로 순수한...요즘 보기 드물게 올곧고 착한 사람입니다
제발 밖에 나가서 호구 노릇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게 제 유일한 바람일 정도로요/
솔직하고 다정다감 다혈질인 저와는 달리
온유한 성품...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모습에 반했네요
첫눈에 좋은사람이란 걸 알아봐서 제가 더 적극적으로 들이댔어요
만날수록 좋고...그사람의 결핍을 반드시 내가 채워줘야겠단 생각으로 가득했죠
모든것이 아이들 위주인 그는 나를 우선으로 둘 여유가 없었고
헤어질때 돌아서 가는 그의 뒷모습은 언제나 쓸쓸함으로 가득했지요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아파트단지에 살았지만
그는 늘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구요
그가 전화를 해야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가 나오라고 해야만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어요
(늘 두딸의 눈치를 보고 아이들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존중한다는 걸 압니다)
첨엔 내가 보낸 톡조차 확인하지 않는 그에게 많이 퍼붓기도 했어요
그는 늘 폰을 진동으로 해놓고 귀가후엔 특히나 잘 보지 않습니다
(이런 남자는 처음이었기에 많이 혼란스럽고 힘들었어요)
날 사랑한다는 그였지만 리액션이 전혀 없었기에 혼자 끙끙 앓기도 하고
눈물 흘린 날도 많았더랬네요
아이들에게 이혼으로 큰 상처를 줬다고 생각하는 그는
내가 그의 삶에 들어가는 걸 부담스러워합니다
아이들에게 두번 상처 줄 수 없다고 늘 얘기하곤 하죠
(사춘기와 초등 저학년의 딸이니 이해합니다)
그런 아빠기에 그는 스스로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가 어린딸들을 부등켜안고 울었을 수많은 밤을 알기에
그간의 아픔을...5년의 그늘을 이제 그만 벗어나길 바랍니다
전 그에게 늘 얘기합니다
난 앞으로 최소 25년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옆에 있을거라고.
(자긴 일찍 죽을거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기에
그런 그가 70살이 될때까진 버텨주겠노라 하는 소립니다)
소소한 삶의 즐거움조차 맘껏 누리지 못하는 그가 넘 안쓰럽고
그런 그에게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그가 누리는 일상의 유일한 즐거움은 후배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 스크린골프를 치고
술한잔으로 마무리하는 시간들입니다
그럴때면 가끔 저를 부르기도 합니다
몇번 만났기에 익숙한 그들은 고맙게도 저를 무척 좋아해줍니다
오늘도 후배들이 제게 전화를 했고
뒷풀이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후배들 모두가 그를 인간적으로도 참으로 존중하고 좋아합니다
밖에선 자기들이 형님 챙기겠다고
안으로 형수님이 우리형님 잘 좀 부탁드린다고.
그러면서 그에겐...형수님 같은분 없다고
형님 만나주는 건 고마운 일이니 잘하시라
그렇게 당부하네요
선하고 착한
그와 내게 든든한 사람들
오늘 유난히
그에게...또 내게 힘이 되어주는 그들이 있어
진심 고맙고 뿌듯합니다
술이 약한 그 대신에 세잔 네잔 연거푸 흑장미 노릇을 했더니
기분좋게 알딸딸 하네요ㅎ
제가 사가지고 간 숙취해소음료로 마무리한 그들과
즐겁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귀가했습니다
지난 10년
내겐 위로와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82.
내가 뽑은 대통령의 오늘 하루 행보를 기쁜마음으로 지켜본 하루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
82에 꼭 한번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제 자신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그에게 꼭 힘이 되어주고 싶네요
그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걸 반드시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조금씩 변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하루하루 더 굳건해지는 제 자신을 다독이려 이 글을 씁니다
취중이라 오타가 많아 수정하다보니 올리는데 오래 걸렸네요ㅋ
편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