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의견에 묻혀있을 수 있는데도 굳이 보충의견을 달겠다고 고집해 전거(典據)가 불명확하거나 맥락과 동떨어진 인용을 한 안창호 재판관 덕분(?)에 법대(法臺)에 근엄하게 줄지어 앉은 헌법재판관의 교양 수준을 엿볼 수 있었다. 내게는 이것이 흥미로웠다.”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결정문을 쓴 헌법재판관의 얄팍한 교양수준을 꼬집었다. 송 논설위원은 〈안창호 재판관, 격정에 못 미친 교양〉(3월22일자 A30면) 칼럼에서, 안창호 재판관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결정문 보충의견에 인용한 세 가지 구절의 부정확성, 부적합성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안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옛 성현의 말, 플라톤의 국가론, 성경의 아모스서의 한 구절씩을 인용했다.
먼저 ‘과거 정권에서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국가권력의 사유화와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이 더 심했다고 하면서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심판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에서 ‘범금몽은하위정(犯禁蒙恩何爲正)’이라는 ‘옛 성현의 말’을 언급한 안 재판관은 “지도자가 위법한 행위를 했어도 용서한다면 어떻게 백성에게 바르게 하라고 하겠는가”라고 뜻을 풀고 대통령(지도자)의 위법행위를 일반국민보다 더 엄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송 논설위원은 ‘범금몽은하위정(犯禁蒙恩何爲正)’은 옛 성현의 말이 아니라 전거(典據)가 없는 문구라고 지적했다.
“이 말은 지난해 12월 탄핵정국에, 한 신문사의 주필을 지낸 사람이 그 신문에 연재한 글에 중국 춘추전국시대 재상 관중(管仲)의 말로 소개한 것이다. 풀이도 안 재판관과 똑같다. 그러나 관중의 언행을 기록한 관자(管子) 어디를 뒤져도 그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글쓴이에게 전화를 걸어 전거(典據)를 물었으나 회피하는 답변만 들었다.”
근거도 없고 풀이도 틀려…
글쓴이가 전거 밝히기를 회피하자 송 위원은 관자를 완역한 교수에게 자문을 구한다. 교수는 그런 말은 없지만 혹시 다른 문헌에 있을까 하여 중국어 사이트까지 검색하는 수고 끝에 찾지 못했다는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전거 없는 인용구 논란에 “안 재판관이 전거가 불명확해 ‘옛 성현’으로 한 것”이라며 “뜻이 통하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송평인 위원은 풀이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헌법재판소의 해명과 달리 근거도 없고 풀이도 틀린 인용이라는 것이다.
“관자에 범금(犯禁)이란 말은 자주 나온다. 그러나 법가(法家)적 성격이 강한 관자에서 범금은 지도자가 아니라 백성의 위법을 이른다. ‘범금몽은하위정’을 관자의 뜻에 따라 해석하면 ‘백성의 위법을 지도자가 봐주면 어떻게 백성을 바르게 하겠는가’로 전혀 다른 뜻이 된다.”
반(反) 민주주의자 플라톤, 열린사회의 제1의 적
안창호 재판관은 이어 보충의견 결론 부분에서 “통치하는 것이 쟁취의 대상이 되면 이는 동족 간의 내란으로 비화하여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다른 시민들마저 파멸시킨다”는 플라톤의 ‘국가론’ 구절을 인용하며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권력공유형 분권제로의 권력구조 개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언급했다.
송 위원은 “안 재판관이 정치학에서 플라톤의 국가론이 차지하는 위치를 잘 모르는 듯하다”며 이 문구도 맥락에서 크게 어긋난 잘못된 인용이라고 비판했다.
“플라톤은 철인(哲人) 통치 국가를 이상으로 제시한 반(反)민주주의자다. 인용 구절은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등장하는 국가론 7권에 나오는 말로, ‘동굴 밖의 밝은 세상을 보고 온 철인들 대신 어두운 동굴 속에서만 산 백성이 통치를 하겠다고 나서면 국가가 파멸한다’는 뜻이다. …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열린사회의 제1의 적이 플라톤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전체주의 국가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포퍼의 비판은 과장된 면이 있지만 국가론의 정치적 함의가 대개는 불쾌하고 때로는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은 틀림없다.”
안 재판관은 결론 부분에서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아모스 5장 24절)는 성경 구절도 인용했는데, 송 위원은 이에 대해서도 “정교(政敎)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나라의 헌재에서 특정 종교의 경전을 인용한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안창호 재판관이 언급한 인용구들을 하나하나 반박한 송 위원은 영국 사상가이자 의원인 에드먼드 버크를 언급하며 헌재 재판관에게 “읽는다면 관자나 플라톤보다는 버크”를 권했다. 에드먼드 버크는 인도 총독 워런 헤이스팅스를 탄핵소추하는 장문의 글을 남겼고, 미국이 헌법을 만들 때 탄핵 사유에서 ‘실정(失政)’을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배제하고 ‘중대한 범죄와 비행’을 넣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