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 이종만을 ‘애국적 기업가’로 평가했고, 자본가로는 유일하게 북한 애국열사릉에 묻혔다는 내용이다.
일제 시기 자본가 지주라면 씨 안남기고 다 죽인 김일성이 그렇게 평가했다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러다 아래 링크 기사를 읽게 됐다.
민족을 위해 100만 원(현재가치론 거의 천 억) 넘게 쓰고, 일제에겐 고작 2000원 바쳤다.
태평양전쟁 때 기업인이 이 정도 푼돈 내고 버틸 수 있었을지도 신기했다.
김병로 허헌 같은 훌륭한 변호사들과 함께 했다는 것도 그렇고, 더구나 김일성에게 높게 평가받은 자본가였던 것을 보면 훌륭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해방 후엔 진짜 악질 친일파를 하나도 못 잡고 놔주더니, 60여년 뒤에는 사소한 허물을 잡고 민족주의 지도자들을 마구 매장한다.
정말 너무 극에서 극으로 오간다.
해방후엔 한없이 무기력했고 70년 뒤엔 너그럼없이 한없이 야박해졌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매장시키면 절대 안 된다.
원치 않게 북한에서 태어나 김일성대를 나오고, 김일성, 김정일 만세를 수없이 불러야 했던 나로서는, 민족이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고뇌가 조금이나마 이해될 것도 같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의자에 앉아 친일파를 가려내는 그 사람들이 만약 일제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아무런 허물없이 떳떳하게 살 자신이 있었을까.
민족 앞에 남긴 공과를 잘 따져서, 해악보단 공을 더 많이 세운 사람은 놔두고, 민족에게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친 인간들만 친일파로 매장시켜도, 그것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앞서 쓴 이종만의 친일을 둘러싼 글이 전혀 제 예상외로 추천 800회가 넘고 150회 넘게 공유됐습니다.
이런 반응은 뭘까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이종만을 친일파로 규정한 민족문제연구소나 임헌영 소장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잘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임 소장이 그렇게 봤다고 해서 제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역사에 대해선 개개인마다 견해와 관용의 폭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죠.
그 관용의 범위는 제가 민족문제연구소보다 훨씬 큰 것 같고, 또 많은 추천은 제 견해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죠.
마찬가지로 저는 임헌영 소장이 남민전 출신이라고 해서 일각에서 주장하듯 그를 빨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살아온 유신 시대에서 지식인들의 고뇌가 어떨지 조금이나마 가늠이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평가함에 있어서 특정인의 견해보다는 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견해와 관용을 모아, 그 중간 지점으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중간 기준으로 우리는 단죄해야 할 사람과 용서해야 할 사람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죠.
지금은 해방 70년이 넘었고,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과거사 청산은 분명 때가 있는 작업이고, 우린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파 규정작업은 대중의 공감대를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일지언정, 우리 민족이 공감한 의견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조율 과정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남쪽도 그렇지만, 북한에서도 아직 미완의 역사적 단죄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체제가 무너진 뒤 우리는 김일성 체제에 부역한 인물들을 어떻게 단죄해야 할까요.
그때 가서 임헌영 소장 같은 사람이 나서서 누구를 친김 부역자로 규정하면 그에 따라 대중도 그를 친김 인물로 단죄해야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 의견도 당연히 아닙니다.
단죄와 관용의 범위는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북한 사람들이 결정해야 하고, 바로 그 과정에 대중이 허용하는 관용과 용서의 범위를 조율하는 작업을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다수가 공감하는 잣대에 따라 김정은 체제에서 인민을 탄압한 자를 단죄해야만이 북한의 역사 청산은 끝나는 것입니다. 그 작업은 한국 사람이나 유엔이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입니다.
저의 바람은 그런 날이 오게 되면 너무 극으로 달리지 않게, 보다 큰 관용으로 처벌의 범위를 정했으면 합니다.
“누구를 용서할 수 없다, 죽여버리자”는 선동보단 “웬만하면 이해하고 함께 가자”는 포용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 그것은 그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