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
역사를 제가 잘 몰라서요
영조 다음이 정조고 중간이 사도세자 잖아요
사도세자는 말 그대로 그렇게 영조가 죽였는데
그런데 어찌 그 아들인 정조가 와이 될수 있었는지
영조에게 다른 아들은 없었나요?
그래서 정조를 죽은 자신의 다른 아들의 아들로 해서 세손으로 만든건가요?
죄송
역사를 제가 잘 몰라서요
영조 다음이 정조고 중간이 사도세자 잖아요
사도세자는 말 그대로 그렇게 영조가 죽였는데
그런데 어찌 그 아들인 정조가 와이 될수 있었는지
영조에게 다른 아들은 없었나요?
그래서 정조를 죽은 자신의 다른 아들의 아들로 해서 세손으로 만든건가요?
영조 - 왕
사도세자 - 세자
정조 - 세손
이렇게 정식 책봉되어 있었어요...
적정자가 아니라 열등감이 많았죠.
그런데 정조를 두고 적자가 아닌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진 않으려 했을거예요.
사도가 왕으로 적합하지 않았다고도 하고
당파들 사이에 희생양이었다는 말도 있고
암튼 사도가 사약이나 그런거먹고 역적이 되면
그 후손인 정조가 왕이 못되니
뒤주라는 고육지책을 쓴거라는 말도 있어요.
적정자 --- 적장자
할배가 어릴 때부터 확실하게 다져놨으니 폐세자되도 전혀 문제없지
영조가 나이가 많았고... 그당시 있는 손자들은 죄다 사도세자의 아들 (사도세자와 후궁사이에 낳은 ....)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려서 일찍 이미 죽은 영조의 큰아들의 양자로 정조를 입적시켜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니게 만들어 왕위에 올렸지요.
일찍 죽어 얼굴도 모르는 큰아버지....가 아버지가 된거에요.
참 눈가리고 아웅~~격인거죠.
범죄인이 된 사도세자의 이들로서는 왕이 될 수없었죠. 그래서 사도세자보다 먼저 요절한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해서 왕좌에 오를 수있었어요. 간단한 검색만 해도 나오는걸요~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즉위식때 첫번째로 내지른 발언이었죠.
(개인적으로 조선사를 통털어 가장 드리마틱하고 비장하고 처절한 절규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조가 선초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2대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은,
자신이 사조세자의 아들임을 강조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고
자신마저 수차례 시해하려 했던 노론세력들을 정치보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됩니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즉위식때 첫번째로 내지른 발언이었죠.
(개인적으로 조선사를 통털어 가장 드리마틱하고 비장하고 처절한 절규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조가 선초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2대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은,
자신이 사조세자의 아들임을 강조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고
자신마저 수차례 시해하려 했던 노론세력들을 정치보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됩니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즉위식때 정조가 첫번째로 내지른 발언이었죠.
(개인적으로 조선사를 통털어 가장 드리마틱하고 비장하고 처절한 절규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조가 선초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2대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은,
자신이 사조세자의 아들임을 강조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고
자신마저 수차례 시해하려 했던 노론세력들을 정치보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됩니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즉위식때 정조가 첫번째로 내지른 발언이었죠.
(개인적으로 조선사를 통털어 가장 드리마틱하고 비장하고 처절한 절규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조가 선초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2대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은,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절치부심 강조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고,
자신마저 수차례 시해하려 했던 노론세력들을 정치보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됩니다.
"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즉위식때 정조가 첫번째로 내지른 발언이었죠.
(개인적으로 조선사를 통털어 가장 드리마틱하고 비장하고 처절한 절규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조가 선초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2대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은,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절치부심 강조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고,
자신마저 수차례 시해하려 했던 노론세력들을 정치보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됩니다.
영조의 장남인 효장세자는 어려서 죽고 사도세자는 영조 본인이 죽였기 때문에 아들이 없었어요.
사도세자가 아들 셋을 남기고 갔는데 왕세자비였던 혜경궁 홍씨의 소생인 정조는 영특했지만 후궁의 소생 둘은 행실이 별로 안좋다는 이유로 영조의 눈밖에 나면서 왕권과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던 영조에게 정조처럼 영특한 손자는 핏줄에 대한 자존심의 상징일테니 꼭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을 겁니다.
죄인의 아들이 아닌 먼저 죽은 첫째아들의 양자로 입적해서 왕이 됩니다
정조외에 아들이 있었으나 남편을 버리고 아들을 택한 헤경궁홍씨가 아들은 포기 안하고 영조와 영빈이씨에게 정조를 보냅니다
정조는 왕비의 적정자이기 때문에 출생의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영조는 정조만큼은 지켜주구요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았던 세력들은 정조가 왕이 되는걸 막았어요
그러나 영조가 군사력을 내주고 끝까지 정조를 지켜내고 왕에 올려요
정조가 왕에 올랐을때 본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했다죠
수원행성도ㅈ크게 짓구요
그러니 정조를 내몰고 왕의 자리에서 얼마나 끌어내고 싶었겠어요
조선전기ㅡ세종대왕
후기ㅡ정조가 조선시대 대표 천재인데
세종은 체력이나 무예에서는 약했던 타고난 천재였던 반면
정조는 문무를 다 갖춘 노력형천재였답니다
정조가 조금만 더 살았음 조선후기가 그토록 비참하게 넘어가진 않았을거예요
영조가 2남8녀를 뒀는데 장남인 효장세자는 어려서 죽고 사도세자는 영조 본인이 죽였기 때문에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었어요.
하지만 사도세자가 아들 셋을 남기고 갔네요.
그 중에 왕세자비였던 혜경궁 홍씨의 소생인 정조는 영특했지만 후궁의 소생 둘은 행실이 별로 안좋다는 이유로 영조의 눈밖에 나면서 왕권과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던 영조에게 정조처럼 영특한 손자는 핏줄에 대한 자존심의 상징일테니 꼭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을 겁니다.
영조가 2남8녀를 뒀는데 장남인 효장세자는 어려서 죽고 사도세자는 영조 본인이 죽였기 때문에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었어요.
하지만 사도세자가 아들 넷을 남기고 갔네요.
그 중에 왕세자비였던 혜경궁 홍씨의 소생인 정조는 영특했지만 후궁의 소생들은 행실이 별로 안좋다는 이유로 영조의 눈밖에 나면서 왕권과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던 영조에게 정조처럼 영특한 손자는 핏줄에 대한 자존심의 상징일테니 꼭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을 겁니다.
영조한테 다른 아들이 없었을 뿐 아니라 가까운 왕족 남자도 없었어요 그럴만한게 현종 외아들 숙종 외아들 숙종의 살아남은 두아들이 경종 영조 였으니 몇대째 외아들 그외 왕족이라면 인조가 큰아들 소현세자 혈족은 다 죽였고 남은건 세째아들쪽 혈통 몇은 숙종 역모죄로 죽었고 그외 조귀인아들 숭선군 손자동평군인데 동평군도 장희빈과 엮여 끝이 안좋았죠 흥선대원군이 사도세자 서자 집안 양자로 간거구 원래는 인조 세째아들네 자손이니 얼마나 먼 방계인지 알만하죠
영조후궁 문숙원 인가가 아들 낳으려구 그리 애쓴게 그이유 아들만 낳았음 바로 세자행 이였겠죠
그러니 정조의 정적들도 다른대안이란게 사도세자의 어린 서자들 밖에 없었어요
정조, 댓글들에서 많이배우고 가요
제왕학을 닦고 왕이 된 정조와,
제왕학을 닦을 준비 없이 왕이 된 조선 후기 왕들..
조선이 쓰러진 큰 원인 중 하나였을 듯.
정조가 오래 살았든지,
정조의 큰 아들 문효세자만이라도 어릴 때 죽지 않고
적통을 이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