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김영삼 대통령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습니다.
1997년 12월 18일, 15대 대선 투표일.
그렇다면 국민들은 IMF의 책임을 물어 당시 집권당이던 신한국당(민자당에서 개명)의 이회창 후보 대신에 김대중을 선택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IMF 구제금융은 아직 초기였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채 여전히 신한국당을 지지하던 영남인들은 이회창을 찍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김대중이 당선됐느냐?
당시 신한국당의 경선 과정에서 유력 후보인 이회창을 압박하면서 기세를 올리던 후보가 있었습니다.
그 후보의 이름은 이인제.
이인제는 1차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하고 결선투표까지 치뤘지만 결국 이회창에게 졌습니다.
하지만 이인제는 대선후보 경선 결과에 불복을 선언하고는 신한국당을 탈당, 국민신당의 후보로 15대 대선에 출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인제는 영남권에서 나름의 바람을 일으키며 선전했지만 결국 3위에 머물고 맙니다.
15대 대선 득표율은 김대중 40.3%, 이회창 38.7%, 이인제 19.2%
영남권의 표심을 기반으로 했던 이회창과 이인제의 득표율을 합치면 57.9%
이인제와 표밭을 나눠 가진 덕분에 이회창은 1.6%의 차이로 낙선하게 되고, 김종필과 손을 잡은 DJP 연합으로 충청권의 표를 가져 올 수 있었던 김대중은 기적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