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의 제작과 흥행을 계기로 정부가 투자하는 문화·예술 펀드를 박근혜 정부가 직접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의 진술을 특검이 확보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바탕으로 이뤄진 투자 통제 역시 문체부 자체 판단이 아닌 청와대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8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문체부 직원 ㄱ씨는 최근 특검에서 “정부 안에서 ‘모태펀드 운용을 점검해 <변호인> 같은 영화에 투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검토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출자하고 중소기업청 산하 한국벤처투자에서 관리하는 모태펀드는 국내 영화 제작비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사회비판 성향 영화에 정부 지원이 끊긴 이유로 <변호인>을 언급하는 문화계 인사들의 주장은 있었지만, 정부 차원의 조직적 실행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2013년 12월 개봉한 이 영화는 관객 1137만4861명(2015년 6월 말 기준)이 들면서 한국영화 역대 관객규모 10위를 기록했다. <변호인>은 모태펀드 출자와 민간자금을 합쳐 설립한 펀드에서 35억원을 투자받았다. 총제작비는 75억원이다. 이 덕분에 펀드 투자운용사는 107억2000만원을 회수해 206%의 수익률을 올렸다.
문체부 전·현직 직원들은 특검 조사에서 “<변호인> 흥행 이후 정부 출자 펀드의 영화 투자와 관련해 투자운용사에서 정례적으로 업무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한 직원은 “투자운용사 내 투자심의위원회에 친정부 성향 위원들을 참석시켜 의견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정부 비판 영화에 대한 지원을 제한했다”고 진술했다. 지난달 개봉한 원자력발전소 폭발을 소재로 한 <판도라>와 올해 개봉을 앞둔 5·18민주화운동 소재의 <택시운전사> 등은 제작 단계부터 호평받았지만 정부가 출자한 펀드의 투자 대상에서 제외됐다.
앞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61)과 조현재 전 문체부 1차관(57)은 <변호인>이 흥행하자 공안검사 출신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이 못마땅해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특검은 이날 블랙리스트 작성·활용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60)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57)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