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앵커여- 어제 추운날씨에 포승줄 묶여 끌려 다니느라 고행하셨습니다.
모진 독감에 걸려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었지만 광화문광장엘 어찌 안 나갈 수가 있나!
다른 주말 보다 좀 늦은 오후 2시쯤 지하철5호선 목동역에서 전철에 몸을 실었다.
마침 경로석 3자리가 비어 있기에 몸도 아프고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몇 역을 지나 5호선과 2호선 환승역인 영등포구청역에 이르자 나보다 몇 살 아래로 보이는 60대 중반쯤으로 되어 보이고 옷차림만 봐도 궁색이 완연하지만 얼굴은 순박해 보이는 남성이 타더니 바로 내 옆에 앉았다.
그 남성이 “이 전철이 광화문 갑니까?”하고 물어왔고,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아주 반갑다는 듯이 “혹시 <박사모>이십니까?”하고 물어왔다.
모든 것이 짐작이 되었다.
시치미 뚝 떼고 “박사모가 뭡니까?”하고 그 남성에게 되물었다.
그랬더니 그 남성이 “광화문광장에 태극기 흔들러 가시는 것 아니십니까?” 하고 물어왔다. 그러면서 자기는 인천 살아서 서울지리나 지하철 노선을 잘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태극기 흔들러 가느냐는 물음에는 대답을 안 하고 “나도 광화문역까지 가니 나를 따라 내리시면 됩니다.”하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광화문역에서 그 남성과 같이 내렸고, 그는 나를 졸졸 따라 왔다.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 동상 중간에 있는 광장 한 복판의 출구로 빠져나왔다.
그 남성을 뒤딸리고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 세월호농성장으로 왔다.
건너편 청계광장 소라탑을 힐끈 바라보니 태극기물결이 일렁였다.
뒤따르는 남성은 광화문광장도 처음 와 보는 것 같았고, 어디가 어딘지 방향감각조차 없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 남성의 어깨를 툭 치며 “혹시 저 건너편을 가시려는 것 아닙니까?”하며 태극기가 어지럽게 흔들리는 소라탑을 가리키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하며 나보고 같이 가지는 손짓을 했다.
“나는 여기 촛불 키러 왔으므로 여기 있을 테니, 당신이나 얼른 저리로 건너가 보십시오!”했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감사합니다.”하고 작별을 했다.
아직 광화문광장에는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이지는 않은 것 같았고, 광장북편에 있는 대형스크린에서는 김제동씨가 예의 그 날카로운 박근혜비판 코미디를 토해내고 있었다.
광장에 오면 항상 하는 버릇대로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나왔나를 대충 파악하기 위해 세종로를 건너 동아일보 사 앞으로 오니 박사모인지 어버이연합인지의 늙은이들이 동아일보사 앞마당을 다 차지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서 간신히 그 틈을 비집고 시청광장까지 가 보았으나 시청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시민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으려나 보다 생각하며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되돌아오니 그 사이에 구름떼 같은 시민들이 몰려나와 광장을 대충 채우고 있었다.
몸살과 감기에 움츠러들었던 몸과 기분이 많은 시민들을 보자 좀 풀리는 듯싶었다.
조금 있자 경찰들이 떼로 몰려나와 광화문 광장과 태평로 남측 편을 양분하면서 두 줄로 늘어섰다.
그때까지도 종로통은 차량이 통행을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지나자 청계광장 소라탑 앞에 있던 태극기물결과 동아일보사 앞 마당을 꽉 채우고 있던 태극기물결이 합류를 하더니 동아일보사 앞 도로로 쏟아져 나와 광화문광장 남측 편에서 U턴을 하여 조선일보사 앞을 지나 대한문 앞 쪽으로 시가행진이 시작되었다.
그런 때 그냥 있지 못하는 게 내 성미다.
얼른 스티로폼 판때기를 하나 주워 즉석에서 써 갈겼다.
“태극기를 욕 되게 하지 마라!, 그 손에는 일장기가 제격이다.” 하고 윗줄에 쓰고 아랫줄에는 “일당 받기 위해 저 짓거리하느니 길거리 널려 있는 박스 줍겠다.”하고 휘갈겼다.
그리고 얼른 도로로 뛰어나가 경찰울타리 뒤에서 악을 쓰며 태극기를 흔들며 지나가는 박사모인지 어버이연합인지의 시위대에게 높이 들어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들이 방송차량 뒤에 바로 촛불들이 포승줄로 온 몸과 양손을 묶은 박근혜와 최순실 그림을 본뜬 손석희앵커를 그렇게 포승지은 판때기를 앞세우고 의기양양해서 “탄핵무효”, “국회해산”, “헌재는 탄핵기각”등의 피켓을 어지럽게 흔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들고 있는 판때기글씨가 혹시라도 자가들을 응원하는 글로 알고 기쁜 표정으로 읽던 늙은이들이 그게 아니자 입에 거품을 물고 달라붙어 판때기를 빼앗으려고 개지랄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의 저지에 막혀 그들이 내 판때기를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런 때 남자보다도 여편네들이 더 극성스럽기 마련이다.
남자들은 욕설을 늘어놓고 눈깔을 부라리지만, 여편네들은 겁도 없이 달려들어 끝까지 판때기를 빼앗으려고 악을 쓰고 있다.
그때 어떤 여편네 하나가 경찰의 포위망이 느슨한 틈을 타고 내게 가래침을 뱉더니 그래도 성이 덜 풀렸는지 그 자리에서 시르락푸르락 하더니 다시 가래침을 뱉으려고 달려들었다.
바로 내가 그러기를 기다리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 여편네가 가래침을 뱉으며 판때기를 향하여 손을 뻗치는 순간 입안 가득한 가래침을 그 여편네의 면상에 물대포를 쏘아대듯 입안 가득한 가래침을 그 못생긴 면상에 “퉤!”하고 뱉어 주었다.
얼마나 통쾌하고 속이 시원하던지!
순간 여편네가 눈을 비비고 얼굴을 닦아대며 송장표정을 지으면서 욕설을 퍼부으며 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갔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게 무슨 짓굿은 장난인가!
그 순간 지하철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인천 산다는 남성이 태극기를 흔들며 지나가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 남성이 어색한 웃음을 짓고 고개를 흔들며 지나갔고, 나는 그 남성을 향하여 손을 흔들어 잘 가라고 배웅을 해 주었다.
서로 반대 입장에서 부딪혔지만 그에 대한 감정은 지금도 나쁘지 않다.
살기가 궁하니 일당 몇 푼에 그러려니 하고 이해한다.
박근혜는 미워해도 그는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고저러고 손 앵커여!
어제 추운 날씨에 그 영혼이 없는 인간들에게 인질로 잡혀 서울 시내를 끌려 다니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당신들의 그 고생이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천하의 명약입니다.
하지만 아직 당신들의 고생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좀더, 좀더 모진 각오로 더 고생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100%민주주의로 당신들의 고생에 보답할 것입니다.
광장에서는 청와대와, 총리공관과, 헌법재판소를 향한 3갈래의 행진이 시작되었지만 온 몸이 쑤시고 아파 도저히 그 행진대열에 끼어 들 수가 없었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지난 밤 혼수상태에 빠지듯이 긴 잠이 들었다 오늘 늦게야 일어나 아직도 휑한 머리에 이 글을 씁니다.
우리 잊지 말고 이번 달 마지막 날 다시 광화문광장에서 만나 촛불 켜 들고 새해를 맞이합시다.
인천사시는 분이여!
그날 또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