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들어서면서 모든 나라들은 해양으로 연결되었다.
심지어 몽골 초원의 "유연"과 중국 강남의 "송"도 해양을 매개로 접촉하였다.
또한 항해술과 조선술 등 기술이 발전하면서 해양문화가 비약적으로 발달하였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고구려는 항구도시인 평양성을 거점으로 경기만, 요동만, 두만강 하구,
동해 중부 등을 통해서 모든 나라들을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였다.
장수왕은 439년에 군수물자인 800필의 말을 배에 실어 중국 남쪽의 송나라에 보냈다.
북방의 초원에서 자란 크고 날랜 말들을 실은 수십 척의 대선단이 압록강 하구 또는
대동강 하구의 항구를 출항하였을 것이다.
보통 살아 있는 생물, 특히 성격이 예민하고 물을 싫어하며 다루기 힘든 말떼를
대규모로 싣고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를 항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12세기경에 유럽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바이킹조차도 군사 44명에 겨우 군마 2필을
적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구려는 대륙과 한반도의 2/3, 그리고 해양영토로서 동해와 황해의 반 이상을 차지함으로써
초원과 바다를 동시에 가진 국가가 되었고 막강한 해양력으로 북방종족들, 서북지역의 말갈 등과
중국 북부, 중국 남부 지역을 경제적으로 연결해 국제무역을 함으로써 부를 축적하였다.
- 윤명철 교수의 "고구려, 역사에서 미래로" 중에서 발췌함-
이런 지도자가 대한민국에도 나오기를 바래 봅니다.